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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 '북한'을 향한 눈물과 '남한'을 향한 회개!

작성자jonglh|작성시간26.06.23|조회수7 목록 댓글 0

칼럼 : 북한을 향한 눈물과 남한을 향한 회개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북한을 위해 기도해 왔다.

그것은 귀한 일이다.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마땅하다.

복음이 자유롭게 전파되기를 기도하는 것도 마땅하다.

그러나 이 기도가 영적 우월감으로 변질될 때 문제가 시작된다.

"우리는 저들보다 낫다."

"우리는 자유롭게 예배한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이사야 8장에서 하나님은 북이스라엘만 책망하지 않으셨다.

남유다도 함께 책망하셨다.

하나님의 시선에는

"저 집"과 "이 집"이 아니라

"두 집"이 있었다.


신앙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박해가 아니라 자만이었다.

교회가 힘이 없을 때보다

교회가 성공했을 때 더 위험했다.

가난할 때보다

풍요로울 때 더 위험했다.

박해받을 때보다

존중받을 때 더 위험했다.


오늘 남한 교회는 많은 은혜를 받았다.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예배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다.

찬양을 자유롭게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자유가 반드시 경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풍요가 반드시 거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교회 건물이 많다고 해서 신앙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도에는 눈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회개가 있어야 한다.

"주님, 저 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주님, 우리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남의 눈 속 티를 보기 전에

자기 눈 속 들보를 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비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두 집을 보고 계신다.

북한도 보시고 남한도 보신다.

세상도 보시고 교회도 보신다.

그리고 묻고 계신다.

"너는 나를 성소로 삼고 있는가?
아니면 걸림돌로 삼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부흥은 북한을 정죄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북한을 위한 눈물과 남한을 위한 회개가 함께 만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다시 성소가 되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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