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비교를 하자면, 성경의 이사야 8장에 나오는 범주와 현대 한국의 무속을 연결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합니다.
즉 한국의 전통적인 무당은 단순히 공연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 신이 내린다고 주장하거나
- 영적 존재와 소통한다고 하거나
- 점을 보거나
- 미래를 예측하거나
- 길흉화복을 말하거나
- 굿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성경의 용어로 말하는
- 신접한 자(영매, medium)
- 점술가·주술사 계열의 사람
의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성경의 범주와 현대 한국 종교문화의 범주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한국의 무속은 오랜 세월 독자적으로 발전한 전통 신앙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는 다른 현상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는 대체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영적 존재나 점술을 통해 미래와 운명을 알려고 하는 행위
를 이사야 8장 19절이 비판하는 대상과 유사하게 봅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 설교자들이 이 구절을 설명할 때
현대의 예로
- 무당
- 점집
- 사주
- 강신술
- 영매 행위
등을 언급하곤 합니다.
이사야 8장의 핵심은 특정 직업을 분석하는 데 있지 않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는 질문에 있습니다.
즉 문제의 핵심은
-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는가
- 누구를 최종 권위로 삼는가
- 미래에 대한 불안을 누구에게 맡기는가
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라고 묻고,
곧이어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르라"(8:20)
고 권면합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사야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해답을 영매나 점술에서 찾지 말고 하나님과 그 말씀에서 찾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