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네플릭스 애니메이션 케데헌의 성공 이후, 넷플릭스에서 무당 등이 출연하는 운명의 시간이 제작 방송되었고 시즌2도 나온 것을 아는데, 이제 사주보는 것은 한국 예능에 단골로 나옴. 기독교인들을 의식한다면 나올 수 없는 컨텐츠들이 이젠 영화에서 과감하게 예능 애니 드라마로 확장되고 있음.
사용자께서 말씀하신 현상은 실제로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 대중문화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에서 과거에는 주로 공포물이나 민속 소재로 등장하던
무당
굿
사주
운명
귀신
조상신
신내림
등이 이제는 훨씬 일상적이고 친숙한 소재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특히 연예인들이 예능에서
사주를 보고
궁합을 보고
올해 운세를 묻고
신년 운세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거의 하나의 예능 공식처럼 되었습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1980~90년대만 해도 방송사는 상대적으로 종교적 민감성을 많이 의식했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인구 비중과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최근에는
"사주 보는 것은 문화다."
"재미로 보는 것이다."
"전통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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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인식이 훨씬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제작자들도 예전보다 부담 없이 이런 소재를 사용합니다.
이사야 8장의 관점에서 보면 재미있는 역설이 있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도 미래가 불안했습니다.
전쟁이 다가오고
국제정세가 흔들리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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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그때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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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반문했습니다.
즉 문제의 본질은 무당이라는 직업 자체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어디서 해결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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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습니다.
한편 문화 현상을 볼 때는 또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대중문화가 반드시 특정 종교를 공격하려고 그런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작자들은
신비한 이야기
운명 이야기
초자연적 이야기
가 대중의 흥미를 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류 역사 전체를 봐도 사람들은 늘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죽음 이후를 궁금해 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소재는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다만 기독교 신학의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지적하신 긴장감이 분명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 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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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다른 영적 통로를 통해 미래를 알려고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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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8장을 기준으로 본다면, 설령 사회가 그것을 오락이나 문화로 소비하더라도 신자는
"나는 불안과 미래의 문제를 어디에 가지고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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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스스로 점검하게 됩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상황은 이사야 시대와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앗수르의 위협 때문에 불안했고,
오늘날 사람들은 경제, 취업, 건강, 노후, 인간관계 때문에 불안합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의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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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무당이나 사주 자체를 넘어, 인간이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최종적으로 무엇을 신뢰하고 누구에게 답을 구하는가를 묻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