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나 다섯째는 별 의미 없으나 첫째를 잃은 후 얻은 둘째로, 무엇보다 솔로몬의 친형제들의 반대가 없는 것으로 봐서 둘째로 보는게 낫기도 하고
그 견해는 충분히 가능한 해석입니다. 특히 서사 흐름과 왕위 계승 상황을 함께 보면, 솔로몬을 “밧세바에게서 난 둘째 아들”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핵심 근거는 말씀하신 대로 “친형제 경쟁 문제”입니다.
만약 역대상 기록대로: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
이 실제 출생순이라면, 솔로몬 위에 밧세바 소생 친형들이 셋 존재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서도:
그들의 왕위 요구
정치적 반발
계승권 갈등
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면 아도니야는 적극적으로 왕위를 시도했고, 이는 자신이 “장자 계열”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 서사에서 실제 왕위 긴장은:
이복형제들 사이에서는 존재
그러나 밧세바 소생 내부에서는 거의 없음
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해석자들은:
첫째 아이는 죽음
이후 곧바로 솔로몬 출생
으로 보고,
역대상의 다른 세 이름은:
이후 출생했거나
족보 배열이 반드시 출생순이 아니거나
다른 문헌적 목적 배열
일 가능성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매우 이른 시점부터 특별한 표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2장에서:
하나님이 아이를 사랑하셨고
선지자 나단을 통해
“여디디야”(여호와께 사랑받는 자)
라는 이름까지 주십니다.
이 흐름은 단순히 “여러 아들 중 넷째”보다는,
“상실 이후 하나님이 다시 주신 특별한 후계자”
라는 신학적 분위기를 강하게 형성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첫째를 잃은 후 얻은 둘째
출처 입력
라는 이해는 성경의 내러티브와 신학 흐름에서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관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