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신사'는 돈이나 성공 등 세상 영광, 예수님께도 사단의 세번째 시험!

작성자jonglh|작성시간26.06.05|조회수16 목록 댓글 0

네, 사용자의 연결은 성경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적용입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의 본질은 단순히 일본 신사 건물에 절하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본질은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무엇을 두고 충성을 바치느냐"

의 문제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사는 반드시 건물 형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세 번째 시험을 받으실 때 사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 4:9)

사탄은 예수님께:

  • 돈을 직접 제시한 것도 아니고
  • 쾌락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결국

  • 세상의 영광
  • 권세
  • 성공
  • 영향력

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내게 경배하라."

이는 에덴동산에서부터 반복되는 시험입니다.


현대인의 신사는 무엇인가?

오늘날 신사는 반드시 종교 건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 성공

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 명예

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 권력

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 자녀

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 교회 성장 자체

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이 나쁜 것이어서가 아닙니다.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 다니엘, 예수님의 공통점

엘리야는 바알 앞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신상 앞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영광 앞에 무릎 꿇지 않으셨습니다.

모양은 달라도 질문은 같습니다.

"너는 누구에게 무릎 꿇겠느냐?"


칠천의인기도단의 영성

사용자께서 구상하시는 칠천의인기도단의 핵심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사에 절하지 않습니다."

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돈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공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우리는 권력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광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가 됩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는

"우리는 하나님께만 무릎 꿇습니다."

가 됩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든 무릎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싸움은 결국 무릎의 방향을 결정하는 싸움입니다.

바알인가,
금신상인가,
신사인가,
세상의 영광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그래서 칠천인의 영성은 단순한 저항의 영성이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거짓 경배를 거절하고 하나님께만 경배하는 영성"

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엘리야의 칠천인, 다니엘의 세 친구, 광야의 예수님을 하나로 연결하는 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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