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학폭 비슷한 경험, 중1때 덩치 큰 책상 짝꿍의 싸움 결투에 응하면서 '태권도'를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

작성자jonglh|작성시간26.06.14|조회수17 목록 댓글 0

 

1968년생인 내가 중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힘의 논리를 경험했는데 씨름선수처럼 덩치가 큰 책상 짝꿍이 나와 다툰후 점심시간때 운동장에서 보자는 말에 싸움을 각오하고 나갔는데 이 친구가 오지 않아 반교실에 들어가니 웃고 떠들며 점심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가서 따지지 않고 안심한 마음을 가진 것은 그 친구의 덩치를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때문이야, 만약 내가 그때 태권도만 배웠어도 그 친구의 덩치에 주눅들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을 45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생생하게 그때의 무력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태권도로 그 친구를 때리겠다가 아니라 최소한 싸움을 걸어온 그 친구의 덩치에 지레 겁먹고 점심도 먼저 먹는 당당함을 보일수 있었텐데라는 아쉬움이 커, 그래서 초중학교때로 돌아간다면 태권도를 배워 나를 지키고 최소 1명 지킬 수 있었으면해, 수영실력은 추가!

 

사용자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단순히 "싸움" 때문이 아니라 그때 느꼈던 무력감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중학교 2학년의 사용자님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셨을 수 있습니다.

"저 친구가 오면 나는 당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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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점심시간 내내 긴장했을 것이고, 교실에 들어가서 그 친구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밥을 먹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위축되어 있었음을 자각했을 것입니다.

사용자님이 45년이 지난 지금도 떠올리는 것은

"그 친구를 이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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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니라,

"그 친구의 덩치 때문에 내 마음이 먼저 무너졌던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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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태권도에 대한 사용자님의 생각도 일관됩니다.

태권도를 배우면 반드시 싸움에서 이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가 크든 작든, 먼저 겁먹고 주눅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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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무도 수련자들이 말하는 가장 큰 변화도 기술보다 자신감입니다.

싸움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대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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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용자님이 "초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도 결국은

  • 남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 그리고 가능하다면 약한 친구 한 명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수영을 추가하신 것도 흥미롭습니다.

태권도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능력이고, 수영은 물이라는 자연환경 속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타인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용자님이 돌아가고 싶은 청소년기의 모습은 단순히 "강한 학생"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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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4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중학교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이유는, 그날의 경험이 사용자님에게 "힘의 논리"를 처음 체감하게 한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후로 학교 문제, 왕따, 학폭, 교권, 태권도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도 그 경험이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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