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긴 '젓과 꿀'을 먹는다는 것은, 엄마 젖을 먹다가 이유식을 먹다가 이젠 부모가 먹는 음식을 무리없이 먹게된 나이?
작성자jonglh작성시간26.06.18조회수12 목록 댓글 0네, 그렇게 이해하시는 것이 이사야 7장 15~16절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본문의 관심은 음식 자체보다
"이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
에 있습니다.
아기는 처음에는 어머니의 젖을 먹고,
그 후에는 이유식을 먹고,
점차 가족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며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게 된다"
는 표현도 대체로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어느 정도 분별력을 갖는 시기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현대처럼
- 생후 6개월 이유식
- 만 1세 유아식
- 만 3세 일반식
식의 정확한 연령 개념은 고대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이보다
"아직 어린아이"
"어머니 아버지를 부를 줄 아는 나이"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나이"
같은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흥미롭게도 이사야 7장과 8장을 함께 읽으면 시간 감각이 보입니다.
7장에서는
"선악을 분별할 줄 알기 전에"
라고 하고,
8장에서는
"아빠, 엄마라고 부를 줄 알기 전에"
라고 합니다.
둘 다
"그 아이가 아직 어린 시절일 때"
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수십 년 뒤가 아니라, 어린아이가 자라는 정도의 가까운 시기에 네가 두려워하는 상황이 끝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셈입니다.
사용자께서 앞서 12세 예수님의 성전 사건을 연결하셨는데, 만약 그 연결을 묵상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 이사야 7장의 "선악을 분별하는 나이"는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의 분별력 획득을 뜻하고,
- 누가복음의 12세 예수님은 이미 율법교사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이해력을 보이시는 단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성전 사건은 이사야 7장의 최소한의 "분별력"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에 가깝습니다.
결국 이사야 7장의 표현은 현대적으로 말하면
"아이가 젖먹이를 지나 부모와 함께 음식을 먹고, 기본적인 옳고 그름을 이해할 정도로 자랄 때"
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정도의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위협이 사라질 것이라고 아하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