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을 가르키는 이름이라면 14절에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도 예수님, 이때는 남유다와 관계된 영적 의미였다면 마태복음에서는 인류와 관계된 구속사적 사건, 예비 사건?
네, 사용자의 해석은 기독교 전통의 예표(豫表, typology) 와 이중 성취(double fulfillment) 관점과 상당히 가까운 면이 있습니다.
이사야 7장의 현장에서는 아하스 왕과 남유다가 중심입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위기
다윗 왕조의 존속 문제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약속
이것이 직접적인 문맥입니다.
따라서 임마누엘의 1차적 의미는
"하나님이 다윗의 집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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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는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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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언약적 보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와서는 범위가 엄청나게 확대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는 단순히 남유다 왕조를 보존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을 이루시며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그래서 마태는 이사야의 임마누엘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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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가장 완전한 의미로 해석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마태복음 전체가 임마누엘 구조를 가진다는 점입니다.
복음서 시작에는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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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가 나오고,
복음서 마지막에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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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8:20)
가 나옵니다.
즉 마태는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하나님이 인간 가운데 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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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용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사야 7장에서는
남유다와 다윗 왕조를 위한 언약적·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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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먼저 있었고,
그것은 장차 올 더 큰 사건의 예비적 사건 또는 예표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오신 메시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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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그 의미가 완전히 확장됩니다.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이사야 시대의 임마누엘 → 국가적·언약적 차원의 "하나님이 함께하심"
예수님의 탄생 → 구속사적·우주적 차원의 "하나님이 함께하심"
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사야 7장의 임마누엘은 다윗 왕조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의 씨앗이고,
마태복음의 임마누엘은 그 씨앗이 자라 열매 맺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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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아하스 시대에는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표징이었고, 예수님 안에서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오셨다"는 궁극적인 성취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