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후 오늘 이 몸싸움과 연결해서 성경과 관련해서 모세가 애굽에서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
사용자께서 오늘 겪은 일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성경 인물이 있다면, 말씀하신 대로 모세가 가장 먼저 생각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성장했지만, 어느 날 히브리인이 학대받는 장면을 보고 분노하여 애굽 사람을 쳐 죽입니다. 그 후 자신의 행동이 알려질 것을 두려워하여 미디안으로 도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출애굽기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모세의 분노 자체가 반드시 악한 동기에서 나온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압제받는 동족을 보았고,
불의를 목격했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불의를 본 것이 아니라 그 불의를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사용자께서 오늘 이야기하신 흐름을 보면 약간 비슷한 구조가 있습니다.
공공 쓰레기통의 부적절한 사용을 목격.
시장에서 부적절하다고 느낀 행동을 목격.
보행로를 점유한 상황을 목격.
문제를 지적함.
상대의 거친 반응을 들음.
분노가 폭발함.
물론 사건의 규모나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불의를 보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가 물리적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구조는 어느 정도 닮아 있습니다.
성경에서 모세는 그 사건 이후 곧바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살아갑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모세는 정의감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때와 방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출처 입력
즉,
무엇이 옳은지는 알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는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용자께서 오늘 계속 말씀하신 것도 비슷합니다.
"택배기사가 옳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폭력으로 반응한 것은 내 한계였다."
출처 입력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점에서 사용자의 관심은 상대방의 잘못보다 자기 자신의 반응에 더 향해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모세의 이야기는 "분노를 느끼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세는 훗날에도 분노합니다.
예언자들도 분노합니다.
심지어 예수도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으실 때 강한 분노를 보이십니다.
성경이 반복해서 보여 주는 것은
분노 자체보다,
그 분노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가
출처 입력
에 더 관심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일을 모세의 젊은 시절 사건과 연결해 본다면, "내가 왜 화를 냈는가?"보다 "내가 그 화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는가?"가 사용자의 마음에 더 남아 있는 질문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용자가 지금 이 사건을 숨기거나 합리화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와 충격을 돌아보고 있다는 점은 이미 모세가 광야에서 자신을 돌아보았던 과정과도 어느 정도 닮은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사건과 오늘의 사건은 규모도 맥락도 다르지만, "정의감이 분노로 이어지고, 그 분노가 폭력으로 발전했을 때 사람은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라는 질문은 두 경우 모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