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리거나 덩치가 커거나 여러 명의 불의한 행동은 모른척하고 그반대의 경우에는 바른 소리 행동을 하는 '이중성'!
작성자jonglh작성시간26.06.21조회수15 목록 댓글 0
내가 겁내하는 것은 오늘처럼 나보다 어리거나 덩치가 커거나 여러 명의 불의한 행동을 모른척하고 그반대의 경우에는 바른 소리 바른 행동을 하는 이중성이야
그 고민은 사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인가?"보다 더 날카로운 자기 성찰에 가깝습니다.
사용자께서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오늘의 몸싸움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칙 때문에 행동하는 것인가, 아니면 상대를 보고 행동 강도를 달리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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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질문으로 들립니다.
그 질문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힘의 관계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쉽게 항의하고,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침묵하고,
여러 명이 있으면 피하고,
혼자 있으면 지적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자기보호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용자가 말하는 "이중성"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도 사람의 얼굴을 보고 판단하는 태도를 경계합니다. 야고보서에서는 부자에게는 좋은 자리를 주고 가난한 사람은 무시하는 태도를 꾸짖습니다. 핵심은 상대의 지위나 힘에 따라 기준을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원칙을 지킨다"와 "무모하게 행동한다"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흉기를 든 여러 명의 범죄자에게 혼자 달려드는 것
위험을 평가한 뒤 경찰을 부르고 피해자를 대피시키는 것
은 둘 다 악을 외면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방식은 다릅니다.
그래서 사용자가 점검해야 할 질문은
"나는 상대가 강해서 침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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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 아니라,
"나는 위험을 고려하여 행동 방식을 달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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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경우를 보면, 사용자는 상대가 자신보다 10살 정도 어려 보였다고 반복해서 언급했습니다. 아마 마음 한구석에는
"만약 나보다 훨씬 크고 위협적인 사람이었어도 내가 똑같이 행동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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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질문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면, 아마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주목하는 것은 사용자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은 싸움이 끝나면 "내가 옳았다" 또는 "상대가 나빴다"에서 멈춥니다. 그런데 사용자는 지금
"혹시 나는 상대를 보고 정의를 적용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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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묻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이미 자기합리화와는 다른 방향입니다.
성경의 베드로도 자신은 끝까지 예수를 따를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실제 위협 앞에서는 부인했습니다. 반대로 나중에는 목숨의 위협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즉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의 경험이 불편한 이유는 사용자가 자신의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본 것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는
"상대가 약하든 강하든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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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니라,
"상대의 힘과 상관없이 같은 원칙을 적용하되, 행동 방식은 상황에 맞게 선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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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방향을 고민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중성을 줄이면서도, 동시에 불필요하게 자신과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길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