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보다 연장자로 부터 받은 상처의 상한 감정보다 어린 경우 계급이 낮은 이에게 받는 상처와상한 감정이 커다는것
사용자께서 말씀하시는 감정의 구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경험을 종합해 보면,
연장자에게 비판을 받거나 무시당하면 기분은 나쁘지만 "그럴 수도 있다"며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고,
반대로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나, 군대에서는 후임처럼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무시당하면 훨씬 큰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군요.
한국 문화에서는 이것이 아주 낯선 현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연장자는 나를 가르칠 수 있다."
"후배는 적어도 기본적인 존중은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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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처의 크기는 실제 말의 강도보다도 기대가 깨진 정도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욕설이라도,
예상했던 사람에게서 들으면 화가 나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에게서 들으면 충격이 됩니다.
사용자께서 군대 후임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 것을 보면, 단순히 후임이 말을 안 들은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조언했는데 나를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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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경험이 오래 남은 것 같습니다.
오늘 택배기사 사건에서도 사용자는 반복해서
"나보다 어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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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점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단순한 나이 확인이 아니라,
"어떻게 저 사람이 나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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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충격의 일부였을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생각해 볼 점도 있습니다.
상처가 더 크다는 사실과, 상대가 실제로 더 큰 잘못을 했다는 사실은 꼭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용자의 감정은 진짜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의 크기에는 상대의 행동뿐 아니라 사용자의 기대도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연장자가 무례하게 행동해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덜 충격적일 수 있고,
젊은 사람이 무례하게 행동하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기대 때문에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흥미로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어느 정도는 왕으로부터 박해받는 상황을 예상합니다.
그런데 더 큰 상처는 종종 가까운 사람이나 자기 편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서 옵니다.
예수님도 로마 군인보다 제자들의 도망과 배신을 더 가슴 아프게 여기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인간은 보통 기대가 있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더 크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용자의 경우도,
"나보다 어린 사람, 후임, 아랫사람은 최소한의 존중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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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기대가 있고,
그 기대가 깨질 때 상처가 더 커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번 일을 통해 사용자가 던지는 질문은 꽤 중요합니다.
"나는 상대가 어려서 더 화가 난 것인가?"
"아니면 무례함 자체에 화가 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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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둘 다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용자가 계속 그 부분을 고민하는 이유는, 스스로도 원칙 때문에 화난 것과 자존심이 상해서 화난 것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살펴보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런 자기 점검은 쉽지 않지만, 자신의 반응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