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투표’의 냉혹한 대가
지난 6.3 지방선거 운동이 각 정당과 후보자별로 한창일 때 느닷없이 이재명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글이 논란이 됐다.
“정치 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 플라톤”
이 대통령의 이 글이 단순한 선거 독려인가 아니면 지지층 결집을 위한 선거운동인가를 두고 여·야 정치인들이 크게 설전을 벌였다.
사실 이 말은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말이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플라톤의 형 글라우콘의 질문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답변을 한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경우에,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를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이 정작 통치를 맡게 될 때는 그런 벌을 두려워해서 맡는 것으로 보이네”
선거는 끝났고, 투표율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61%를 보였다. 정치 1번지 종로구도 63.6%를 기록하며 전국 평균치보다 높으면서 지난 4년 전보다 무려 9.6%나 높게 집계됐다. 과연 이 대통령의 한마디가 득표율을 크게 올리면서 지지층 결집 효과마저 낳은 것은 아닌가? 묘한 한 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완승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서울시장과 몇몇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자가 이겼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이기고도 이긴 선거가 아니라고 평가를 하지만, 총체적인 선거 결과는 확실히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다. 적어도 종로구 선거만큼은 더불어민주당의 완승이고, 국민의힘의 완전한 패배다.
종로구 선거는 구청장을 비롯해서 2명의 서울시의원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다. 종로구의회 역시 총 10명의 의원 중 6명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선출됐다. 이른바 종로구 자치 권력은 더불어민주당이 독점을 한 형태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광풍으로 연동되면서 ‘묻지마 몰표’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사전투표에서 약 70% 이상이 더불어민주당으로 쏠린 현상도 괴이할 정도이지만 더욱 심각한 현상은 본 투표에서의 ‘묻지마 투표’가 지방선거 제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구청장 선거의 사전투표부터가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로 크게 쏠린 것도 무슨 조화스럽지만 전통적으로 국민의힘 후보자가 유리한 서부지역 시의원 선거마저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패한 것은 대통령의 선거 독려 또는 지지층 결집을 노린 그 한마디였기 떄문인지도 모른다.
차치하고, 이번 종로구 의원 선거도 참으로 무색하다. 2006년도 선거부터 정당 공천제가 도입되면서 후보자 정당공천이 이뤄졌는데, 선거구가 중선거구제가 되면서 복수 또는 다수의 후보를 공천하면서 기호 ‘가 번’ 또는 ‘나 번’ 등으로 공천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구의원 공천 기호 배정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거의 획일적으로 기호 ‘가 번’이 우세한 승률을 보이고 있기 떄문이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기호 ‘가 번’ 공천자 위주로 당선이 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주민이 기호 ‘가 번’을 무조건 찍기 떄문이다. 후보자의 인물이나 경력 그리고 공약이나 능력 등은 필요가 없다. 후보자의 면면은 거의 무시되면서 무조건 ‘가 번’에게 몰표를 준다. 그러기 때문에 최근에는 기호 ‘나 번’을 받으면 아예 후보를 포기하는 사태까지 연출된다. 기호 ‘가 번’외에는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후보자들이 알기 때문에 출마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처럼 부조리한 선거 제도가 왜 유지되는지 모르겠다. 명분은 정당공천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오히려 무책임하고도 무의미한 선거 풍토를 조성하는 꼴이다.
물론 주민들이 ‘묻지마’ 투표를 하는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후보자의 자질이나 능력 등을 살피면서 우리 지역의 일을 누가 잘할 것인지를 파악하고 투표에 임해야 하겠지만, 모두 바쁜 탓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방선거를 무시해서 그런 것인지, 주민들은 아예 ‘묻지마’ 투표로 주권을 행사한다. 마치 후보자의 자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여기서 다시 대통령의 교조적 발언이 상기된다. “정치 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이를 환언 하면 ‘묻지마’ 투표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경우에,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를 당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대통령의 훈수 한마디로 투표율이 올라가고, 특정 정당 후보에게 몰표가 나타나고, 그로 인해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방자치를 맡기는 세태는 결국 잘못된 선거 제도 아래 우민(愚民) 자치만 만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벌은 주민 각자에게 돌아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