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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김기덕 영화 vs 셰이프 오브 워터

작성자김정로|작성시간18.03.12|조회수170 목록 댓글 0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김기덕 영화 vs 셰이프 오브 워터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김기덕 감독 영화에서 여러 여주인공은 창녀 겸 성녀였다. 남성의 폭력을 견디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몸을 내주어서 자기혐오에 빠진 남성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역할이었다. 성녀/창녀 이분법을 넘어서 그 둘을 합쳐놨으니 파격이라고 찬양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여성을 창녀도 성녀도 아닌, 스스로의 욕망과 고통에 충실한 한 인간으로 보고 싶은 이들에게 김기덕식 여성 묘사는 파격이 아니라 지겨운 성녀/창녀 프레임의 때깔 좋은 변주에 불과했다. 게다가 여성을 그렇게 철저히 타자화·도구화하는 태도가 누군가의 현실 성폭력의 밑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최근 김 감독에 대한 ‘미투’ 고발을 보니 기우가 아니었다.
 
‘나쁜 남자’(왼쪽)와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나쁜 남자’(왼쪽)와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성(性)과 폭력은 우리 인간사의 일부이기에 예술이 그것을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태도와 방식이다. 거의 100년 된 단편소설인 현진건의 ‘불’은 지금 읽어도 신선하고 또 불편하다. 성에 무지한 채 시집을 간 시골 소녀에게 일방적인 부부관계가 어떻게 폭력으로 느껴지는지가 뛰어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여성은 타자화되지 않는다. 이 단편의 불편함은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문학의 특권이자 의무로서 의미 있는 불편함이다. 반면에 다른 여러 한국 문학과 영화는 여성을 타자화하는 진부한 틀은 못 깨면서 그저 폭력적이고 일탈적인 성을 다루는 게 파격과 혁명이라고 착각하곤 했다. 그래서 진보는커녕 퇴행적인 약자 성 착취가 작품 안팎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불편한 성(性)이 진정한 파격과 전복이 되려면 약자가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 좋은 예가 최근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다. 주인공은 연구소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언어장애 여성. 사회적 약자의 조건은 다 갖추고 있지만 자존감이 넘치고 예술을 즐기는 여유가 있다. 그는 연구소에 잡혀온 인어 같은 괴생명체와 정신적·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눈다. 자신처럼 물을 좋아하는 고독한 별종이라는 동질감 외에도 그 괴생명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미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아웃사이더를 예찬한다. 이종간의 성이 불편함을 주지만 의미 있는 파격으로 인한 불편함이다. 이와 달리 파격을 가장한 성착취는 그만 보고 싶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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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김기덕 영화 vs 셰이프 오브 워터



김기덕 각본, 감독. 조재현, 최덕문, 서원, 김정영, 김윤태, 이한위 출연. '나쁜 남자' (2001) / 줄거리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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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Bad Guy

2001 한국 청소년 관람불가

드라마 상영시간 : 100분

개봉일 : 2002-01-11

감독 : 김기덕

출연 : 조재현(한기) 최덕문(명수) more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남자를 만났다.

사창가의 깡패 두목인 한기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대생 선화를 선망의 시선으로 뚫어지게 쳐다본다. 선화는 허름한 한기를 싸늘하게 쏘아보고, 한기는 홧김에 그녀에게 강제로 키스한다. 선화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한 한기는 계략을 꾸며 그녀를 창녀촌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매일 밤 비밀 유리를 통해 밀실 안에 갇혀 있는 그녀를 지켜본다. 절망과 치욕에 길들여지는 그녀를 볼 때마다 한기 역시 지독한 괴로움에 빠져든다. 사랑과 증오, 연민과 절망 속에서 둘은 기묘하게 하나가 되어간다.


씨네21 리뷰 나쁜남자


■ Story

사창가의 깡패인 벙어리 한기(조재현)는 벤치에 앉아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던 여대생 선화(서원)를 보고 조심스레 다가가 옆자리에 앉아 보지만, 그녀로부터 싸늘하고 경멸적인 시선만을 받을 뿐이다. 한기는 남자친구를 만난 선화에게 달려들어 갑작스레 키스를 퍼붓다 지나던 군인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한다. 그는 모종의 계략을 꾸며 선화를 자신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창가로 끌어들인다. 선화가 손님을 받는 창녀방 옆에 자리한 밀실에서 은밀하게 그녀가 몰락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기는 점점 괴로워하게 된다. 한기의 부하 명수(최덕문)에게서 한기의 계략에 대해 알게 된 선화는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한 명수를 이용해 사창가를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 Review

<수취인 불명>(2001)으로 비교적 고른 평가를 이끌어낸 김기덕은 좀더 사회적, 역사적인 공간 속으로 그의 캐릭터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안전한 행보를 계속 유지해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기덕은 그러한 기대를 아주 깨끗이 무시해버린다. 전작들을 통해 인물들을 둘러싼 공간의 풍경화를 그려내는 데 주력했던 김기덕은 이번엔 풍경을 상실한 인물들에 대한 매우 가혹한 초상화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단언컨대 <나쁜 남자>는 김기덕의 영화들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수취인불명>을 넘어선 또 하나의 새로운 도약(혹은 비약)이다.




우리가 미처 마음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한기가 선화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는 최초의 파열의 순간을 보여준 영화는, 창녀방의 거울이 깨지고 선화와 한기가 다시 얼굴을 맞대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야말로 숨가쁘게 따라간다. 화해의 악수는 청할지언정 구원을 향한 어떠한 초월적 지향도 절대 내비치지 않는 김기덕은 밀실에 앉아 라이터를 켜고 자신의 얼굴을 거울 너머의 선화에게 보여주는 한기의 모습을 통해 아주 섬뜩한 성화(聖畵)를 그려낸다. 여기엔 체념이 아닌 방식으로, 어쩌면 증오를 통해 긍정되는 추악함의 현현이 있다.


사창가의 깡패 한기는 제목 그대로 ‘나쁜 남자’이지만 이러한 명명의 대립항으로 존재하는 것은 ‘착한 남자’도 혹은 ‘착한 여자’도 아니다. 전복과 위반의 즐거움은 선악의 경계를 나누고 이를 허물어뜨리는 데서 오는 것이지만 김기덕은 이런 식의 놀이에는 빠져들지 않는다. <나쁜 남자>에서 악은 그 대립항을 상실함으로써 사실상 명명 불가능한 것이 된다. 만일 그러한 대립항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 속물근성일 것이다. 에곤 실레의 누드화에 관심을 갖는 선화, 어떻게든 선화를 이끌고 여관으로 들어가려다 막상 그녀가 몸을 허락하자 이유를 캐묻는 선화의 애인, 선화가 창녀가 된 데 대해 자신의 책임 운운하며 속죄를 얻으려 하는 한기의 부하 명수의 행위는 차가운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 보도자료에 실린 연출의 변, ‘너무 검어서 흰 것이 때처럼 느껴지는…’이라는 말은 이러한 해석하에서라면 아주 흥미로운 언급이 된다. 


또한 한기의 계략에 속아 사창가로 끌려들어간 여대생 선화의 인생은 쉽사리 ‘타락’이라 규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쁜 남자>에서 육체의 더럽혀짐이나 고통 등은 모종의 상승이나 속죄 혹은 정화를 위한 과정으로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직적인 이동의 표상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삶은 고통스럽더라도 감내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며 벗어버려야 할 것도 아니다. 단적으로 더러워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나쁜 남자>가 관객과 평자들을 경악시키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김기덕은 가톨릭적인 강박관념을 정확하게 거꾸로 뒤집어놓는다. <섬>(2000)의 마지막 부분을 연상시키는 <나쁜 남자>의 당혹스러운 결말은 김기덕의 영화에서 이제 환상마저도 도피가 되지 못하고 생의 더러움을 모방하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징표일 것이다.




김기덕의 이전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나쁜 남자> 또한 세련된 모던 영화의 전략으로 관객의 입맛을 끌어당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영화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아직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게 만든다(대신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보답한다). 하지만 위험한 작가주의와 센세이션 사이에서 벌이는 줄다리기는 김기덕을 다시 한번 우리의 품안에 안착시키려는 섣부른 시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선화가 바닷가에서 찾아낸 찢어진 사진을 두고 벌이는 운명의 퍼즐 맞추기가 식상한 것이라고 말하기 전에, 김기덕의 영화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잃어버린 조각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우리는 김기덕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꿰어맞춘 조각 사이, 그 텅 빈 구멍 위로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왜 거울 너머로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보이는가? 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


김기덕 영화와 처음 조우하는 관객을 위해


익은, 그러나 낯선



한편의 영화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는 도중에 이미 다음 작품에 돌입하곤 하는 무서운 작업 속도와 최근 국제영화제에서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김기덕의 영화들은 아직 우리나라 관객에게 그저 제목만 들어서 알고 있는 작품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의 일곱 번째 영화 <나쁜 남자>를 통해 처음으로 김기덕의 세계에 들어가게 될 관객의 경우, 이 영화가 그동안의 세간의 상투적인 평가- 엽기적이다, 성적 학대로 가득하다, 비약과 작위성으로 넘쳐난다, 상징이 도식적이고 진부하다 등등의 하나마나한 말들- 를 수긍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인지 혹은 도전적으로 좀더 폭넓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인지가 사뭇 궁금하다.



극중의 사창가 거리 한편에 자리한 성도극장이라는 이름의 동시상영관에서는 3편의 영화가 상영중이다. <나쁜 남자> 또한 기꺼이 동시상영을 감행하면서 김기덕의 이전 영화들의 릴을 순서없이 번갈아가며 영사기에 걸어놓는다. 일단 조재현이 연기한 한기의 캐릭터에는 <악어>(1996)와 <야생동물 보호구역>(1997), 그리고 <섬>(2000)에서 그가 맡아 연기한 인물들과 <파란 대문>(1998)에서의 진아 기둥서방의 모습이 한데 얽혀 있다. 한기에 의해 창녀가 되는 선화는 <섬>에서 희진의 질투에 의해 발목에 오토바이가 매달린 채 수장되었던 다방 레지로 출연한 바 있는 서원이 맡아 연기했다. 그외 <파란 대문>의 새장 여인숙과 포항의 바닷가가 다시 한번 등장하는가 하면, 몰래 선화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는 한기의 모습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핍쇼를 보던 홍산의 모습을 환기시킨다. 의외의 사물이 돌연히 흉기로 변하는 것까지도 매우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단순한 반복이나 변주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김기덕은 스스로의 작품들을 다시 끌어들이면서도 거기에서 이질적인 화해와 낭만성, 판타지, 질투와 복수의 감정 등을 모조리 갈아내어 <나쁜 남자>를 좀더 섬뜩하게 벼려진 칼날처럼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감성적인 것을 통해 지성까지도 자극하는 <나쁜 남자>는 그 모든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진정 중요한 영화이다.

감독

출연

씨네21


셰이프오브워터 줄거리

* <셰이프오브워터>는 어떤 작품 *
기예르모델토로 감독의 전작을 보면 대부분 현실세계의 평범한 영화는 없습니다. 판타지 SF위주의 영화들이죠. <셰이프오브워터> 역시 시대는 60년대 냉전시대에 등장한 희귀한 괴물이 외적인 모양보다 내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그내면을 보는게 관람 포인트 입니다.
지금 이 영화가 얼마나 주목받는 영화냐면 골든글로브 최다부문 노미네이트, 영국아카데미 최다부문 노미네이트, 미국 아카데미 최다부문노미네이트등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내역과 앞으로 펼쳐질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된것만봐도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알수 있죠. 거기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는건 관객과 평단에 고른 지지를 받았다는것도 알수 있습니다.





* 영화의 관람포인트 *
영화는 재미있는 영화지만 어떻게 보면 괴물남자와 연약한 장애여성의 유치한패턴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러면 영화를 어떤 관점으로 봐야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은유적인, 상징적인 포인트들이 꽤 많이 숨어 있습니다. 그 포인트를 잡아내면서 보면 더 재미있게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사실 너무 많은 숨겨진 뜻이 많아서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잡아내자면 어마어마 합니다. 단 한컷도 버릴장면이 없거든요. 자세한건 아래 영화를 설명하면서 중요포인트를 하나씩 숫자로 집어가겠지만 그외에도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 "셰이프오브워터 - 사랑의모양"의 의미는? *
"물이라는건 담는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뀐다. 동그란 그릇에 담으면 동그란모양,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물은 네모난모양이 된다. 사랑도 그런거 같다. 사랑의 형태가 한가지만 있는게 아니고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 따라 사랑의 모양이 결정될뿐 사랑이라는 본질은 같다."
라고 기예르모델토로 감독은 영화 제목의 의미를 덧붙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사랑의모양"이라고 원제를 잘 풀이해줬습니다. 물의 모양과 사랑의 모양은 같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될려나요.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영화의 상당수는 그 '괴물'로 인해 안락했던 공동체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을 그린다. 이야기의 끝에서 영웅에 의해 괴물은 퇴치되고 공동체는 평화를 되찾는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정반대의 구도에 토대한다. 폭력적인 것은 타락한 세상이고 박해받는 것은 순수한 괴생명체다.


유사한 설정도 감독이 다르면 출연진에서 결말까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이티'의 스티븐 스필버그는 소년 배우 헨리 토마스를 캐스팅해 괴생명체를 고향으로 안전하게 떠나보내는 우정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내며 성장담에 방점을 찍는다. '킹콩'의 피터 잭슨은 나오미 왓츠를 캐스팅해 미녀와 야수 스타일의 이야기를 거대한 활극에 섞어 다룬 끝에 괴생명체를 제거함으로써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여운을 극대화한다. 


(중략)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바탕에 깔아둔 '판의 미로'와 '악마의 등뼈'에서 보듯,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세계는 판타지 요소가 강하면서도 그 배경의 시공간적 설정이 매우 구체적이다.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에선 1962년의 미국 볼티모어가 배경이 되는데,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국과 소련 간의 핵전쟁 공포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항공우주연구센터가 주무대로 등장한다. 비현실적인 판타지 장르의 영화를 만들면서도 델 토로는 왜 전쟁과 관련된 역사 속의 구체적 시공간을 굳이 선택하는 걸까. 그건 폭력의 카오스가 팽배한 현실이 오히려 동화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중략)


'셰이프 오브 워터'는 대중적인 화법을 지녔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달리 다가오는 다채로운 면모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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