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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내가 보는 문단 (抄)-신현림

작성자김정로|작성시간17.10.18|조회수89 목록 댓글 0

너무 젊은 날에 너무 크게 각광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지금까지 매니아 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오직 한길 걸어왔으니까요. 개성적인 제 둘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성공으로 인생이 바뀌긴 했지요. 그전에 제 첫 시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이러기까지 은혜를 준 분들에 대해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어요.

 

(……)

 

   “사람은 자신과 다르면 싫어한다.” 요즘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전지현의 대사였어요. 이것만큼 정확한 인간심리도 없을 겁니다. 싫다는 말은 아프니까, 저마다의 낯가림이라고 할게요.

 

(……)

 

   그런데 제 중년의 시작은 죽음과 같은 시간들로 주욱 이어졌습니다. 결혼과 출산, 이혼, 엄마의 오랜 입원과 소천, 그 힘든 세월의 후일담을 지인에게 들려줬을 때, 신현림 씨가 그렇게 고생을 억수로 한 줄 몰랐네요, 라고 이해해주셨는데, 말로 다할 수 없이 힘들 때 누군가의 안부인사와 손길이 눈물겹게 그립기도 했어요. 작업을 열심히 하면 당연히 누군가가 챙겨줄 줄 알았어요. 제 첫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를 냈을 때 “현림 씨가 S, K, Y대를 나왔으면 벌써 난리였을 거야.”란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을 중년이 되어서야 이해를 했어요. (…)

 

   한국에서 통념을 깨거나 타 분야로 가는 길은 아주 험합니다. 디자인대학원 입학을 3수해서 들어갔어요. 우스갯소리 같지만요. 학비, 모든 생계비, 애 양육비도 홀로 다 해결하면서 그만큼 석사까지 졸업하는데 12년이 걸렸어요. 빚지는 건 죽는 일로 알고 살았고, 집안에 기대기 싫어 더 미치도록 탐구하고 공부했어요. 치열하게 작업하여 기회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작업이 좋으면 다 뛰어넘는다는 저의 신념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

 

   제 시집 나온 출판사의 잡지에서 청탁 오길 10년을 기다렸어요. 이 순진한 사실을 얘기하면 지인들이 웃더군요. 하지만 정말입니다. (…)

   젊은 날에는 시만 잘 쓰면 된다는 것이 통했는데, 나이 들수록 쉽지 않겠구나 싶어, 이게 뭘까? 1~2년 생각했어요. 시모음집을 3권째 낼 때였어요. 도서관에서 시집들을 뒤져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제야 문단을 파악했어요. 젊은 친구들의 알 수도 없는 암호로 가득한 시들. 비슷비슷한 느낌들… 이게 뭘까. 묻는 동안 아, 권력들을 향해 시를 쓰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지금은 당연한 인간심리로 여기며, 다 이해됩니다. (…)

   시인들이 엄청 많아져 6만이며, 한 잡지 안에 1류, 3류 다 뒤섞였다는 것. 이 기묘한 현상이 이미 10년이 지나가고 있음을 뒤늦게 알았어요. 인해전술로 가는 시판은 개판이며, 미래 희망이 없다는 문단 어른들의 말씀까지 들렸어요. 시인이 언제 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만(농담입니다) 아무튼 시인이 많다는 건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일 겁니다.

 

(……)

 

   이제 문단은 마을회관, 동호회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미당문학상은 고대 문학상이죠”라는 문인들을 보았어요. 몇 년 동안 많이 들었어요. 다들 뒷담화일 뿐이고, 앞에서는 티를 낼 수가 없었겠죠. (…)

 

   미당문학상은 10~20년이 지나면 그 이름조차 부끄러운 현실이 될 거라는 얘기도 있을 만치 미당 서정주 시인이 살아서의 친일행위와 군사정부 찬양은 촛불 세대들에게는 용서되기 힘들어질 거란 우려의 말도 있습니다. 여기에다 최근 문학 성추행, 성폭행 뉴스까지 떴습니다. 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촛불혁명에 가려져 그나마 탑뉴스로 등극하지 않아 다행일까요? 문학이 양심의 최전방이고, 시인은 최전방을 지키는 이들일 텐데, 문학의 존재 이유는 이 세상의 절망을 희망으로, 불공평을 공평하게 만들려는 치열한 고뇌이자 행동일 텐데요. 금수저, 흙수저라는 비감스런 현실 비판과 탄식소리에 귀기울여 듣고, 문학만큼은 난세에 시가 무어며, 시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다시금 진지하게 펼쳐져야 할 겁니다. 마을회관, 동호회, 잡지와 출판사 회관의 느낌은 시인들이 많아지면서 자기 식구 챙기는 어쩔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진정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문학예술인으로 남겠다면 편파성, 동호회적 당파성을 깨부수고, 대인배 정신으로 바뀌어야 할 텐데, 노력이 중요하겠죠. 모순 덩어리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노력들이 그립습니다. 그래야 슬픈 이 나라에 큰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요.

 

(……)

 

   어떤 예술도 순수해야만 예술로서 살아납니다. 물질문명과 달리 문화는 순결한 영혼에서 감동을 낳습니다. 실력이 부족하면 괜히 집단에 기대려는 속성이 있는데, 그래 봤자입니다. 계산하는 데 뭔 감동이 있을까요. 언어의 결속에, 행간의 숨결 속에 시인의 영혼 상태는 다 비치고 맙니다. 얼마나 무서운 진실인지요. 자신이든 남을 위해서든 영혼의 쓸모 때문에 시 쓰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겠죠. 그것은 생활이 비루해도 버텨갈 수 있는 힘이 돼 줍니다. 시의 횃불을 가슴에 지피면서 저마다 빛나는 작업으로 한국 시문학이 더욱 풍요롭길 기도합니다. 저도 열심히 작업하면서 모든 분들의 노고와 투쟁을 이 세상 모든 동물과 꽃들과 함께 축복하고 응원하겠습니다. (*)

 

 신현림의 시

                

광합성 없는 나날

 

   신현림

 

달이 달로 보이고,

바람이 바람으로 느껴지고

슬프면 슬프지 않게

햇살 넘치는 삶이 그리워

하루 햇빛 한 시간도 안 되는

끔찍한 반지하 인생

끔찍함마저 끌어안아야 어른이지

울지 않아야 어른인 거지

 

목에 꽉 찬 미세 먼지

어른이라 폼 잡는

인내의 고름 덩이

공장 굴뚝 같은 핏줄에

가득한 슬픈 연기 덩이

 

달이 달로 보이고

구름이 구름으로 느껴지게

햇살 넘치는 하루가 너무나 그리워

 

 

인사동 입구에 술 취한 청년이 쓰러져 있다

 

 

인사동 입구에 술 취한 청년이여

7포세대여

조국은 모든 꿈과 길이 다 막힌 듯하다

경찰이 와도 일어나지 마렴

나도 함께 난파선처럼 쓰러지고 싶었다

 

쓰나미 폐기물까지 수입하는 우리나라

사랑하는 바보 같은 우리나라

하고 싶은 말은 다물어야

입에 풀칠한다는 친구의 말에

아무 말도 못 하는 나

 

언제까지 SNS 곳곳에 자랑질을 하고

나를 삐라처럼 뿌려야 하는지

한 방에 암살해 버리고 싶었다

구질구질하게 숨쉬는 나를

 

그저 한 큐에 터져 버리고 싶었다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1

 

 

서른 번째 생일날에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마흔 번째 생일날에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개구리가 셰익스피어를 이해할 수 없듯이

네가 나를 이해 못 하고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라는 구름 울타리가 있어 자살하지 않았다

 

사람처럼 키스하는 산비둘기 보며

인생이 신기하고 궁금해서 자살하지 않았다

커피 향과 따순 밥이 너무나 맛있어 자살하지 않았고

꽃과 나비와 해와 바람을 선물받고

세상에 진 빚을 갚지 못해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자식을 키워야 해서 자살하지 않았고

쓸쓸한 나와 같은 너를 찾아

슬픔에 목메며

슬픔의 끝장을 보려고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 시집 『반지하 앨리스』(2017. 7)에서

--------------

신현림 / 시인, 사진작가. 1961년 경기도 의왕 출생.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반지하 앨리스』. 영상에세이 『신현림의 미술에서 읽은 시』외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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