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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르트르여 안녕/유인경

작성자김정로|작성시간12.04.25|조회수60 목록 댓글 0


 

 올해는 실존주의 철학자이며 20세기 지성을 대표하는 장 폴 사르트르가 이 지구를 떠난지 30주년이다.
 실존주의 철학이나 프랑스 문학에 대해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이 가을에 나는 실존문학의 거장이 아니라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로서의 사르트르를 추억한다.


“당신은 판단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정의를 큰소리로 비난하지 않았고 칭송받기를 원치 않았기에 영광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당신 자신이 관대함 그 자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관대함을 환기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끊임없이 일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었어요. (중략) 당신은 무관심해지는 것보다는 이용당하고 놀림당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보다는 낙담하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모범이 되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던 한 인간에게는 얼마나 모범적인 삶인가요...”



 그가 사망하기 1년전에 프랑스의 대표적 여류작가인 프랑수와즈 사강은 사르트르의 일흔네번째 생일에 <에고이스트>란 신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이런 내용의 연애편지를 보냈다. 사춘기시절에 처음 읽은 사르트르의 책에 매료되어 30여년을 흠모한 44세의 사강이 처음 사르트르의 글을 만났을 때의 소녀같은 마음으로 쓴 이 편지는 이 가을에 읽기에 더없이 아름답다.


 그 연애편지 공개를 계기로 두 지성은 사르트르가 사망하기까지 1년간 열흘에 한 번 정도 만나 데이트를 즐겼다.
당시 사르트르는 시력을 잃어 식사조차 혼자 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사강은 사르트르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레스토랑으로 모시고 가서 스테이크를 썰어주고 몰래 집에서 감춰간 위스키를 마시며 웃고 떠들며 마지막 추억을 만들었다.


스테이크를 굵게 썰어줬다고 “나에 대한 존경심이 줄어들었다”고 투정하는 일흔네살의 사르트르와 마흔네살의 여류작가는 파리 14구의 레스토랑에서 마치 처음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다정한 대화를 나눴다. 시력상실로 편지를 읽지 못하는 사르트르는 사강이 직접 읽어 녹음한 연애편지를 잠들기 전에 듣는다고 소년처럼 수줍게 고백하기도 했다. 둘은 30년이나 나이 차이가 나지만 생일이 6월 21일로 같아 더욱 깊은 연대의식을 느꼈다. 


 <말>을 비롯, <존재와 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더러운 손> 등의 주옥같은 저서 외에도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사르트르는 엄청난 바람둥이었다. 보부아르 전문가인 미국 래드클리프대학의 헤이젤 로울리 교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다룬 <천국에서 지옥까지>란 책에서 사르트르를 이렇게 묘사했다.


-사르트르라는 사람은 옷도 몇 벌 없고 파이트 하나와 만년필 하나 밖에 없으며 생각하는 거라곤 사색, 글쓰기, 그리고 사랑 밖에 모르는 추하고 왜소한 남자였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사교성과 관용은 전설적이었다. 우습고 장난기 넘치고, 창의적이고 모사에 기막힌 재능이있는 사르트르는 사람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도록 웃겼다. 그는 사람들을 돕고 격려하는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따뜻함과 걸쭉한 입담 못지 않게 심란할 정도로 자족적이었다. ---


 


 사르트르는 죽기 직전까지도 애인들, 그것도 다수의 여성들의 사랑과 질투와 보호와 요구 속에 살았다. 부와 명성을 누렸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주변의 여성들(정말 한심하고 때론 상스럽고 사악한 여성들까지 포함해)에게 다 나줘주었고 밤마다, 아무리 늦게 집에 돌아왔더라도 그녀들에게 안부 전화를 거는 것이 일상이었다. 사랑은 그의 실존의 근원이었으므로.

 사르트르는 사강과의 만남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지 않은 점이라고 했다.


“우리는 마치 기차 역의 플랫 폼에 서 있는 여행자처럼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


 내가 감동한 부분은 이 대목이다. 자신들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는 않는 것!!!!
 이건 보통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친숙한 사이라면 무조건 함께 아는 이들에 대한 공통 화제를 나눠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또 누구라도 반찬 삼아 나쁜 점을 들추고 가십을 교환한다. 아니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대화의 50% 이상이다. 대한민국의 남성 지성인, 명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봤지만 공적인 인터뷰가 아닌 자연스런 대화에서는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들은 드물었다.


 그런데 마치 기차 역의 플랫폼에 서서 처음 만난 여행자처럼,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사람들처럼 문학과 음악, 자연과 음식 등에 대한 대화를 하염없이 나눌 수 있다니... 


 그리고 사르트르는 실명으로 자신의 행복인 글을 읽고 쓰는 일을 못해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시도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나는 평생동안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정말 행복했지. 나는 행복한 남자였고 행복한 저명인사였소. 그런만큼 갑자기 역할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었소. 나는 습관에 의해 계속 행복해했소...”    


 이런 이야기를(그것도 불어로) 속삭이는 사르트르에게서 사강은 그가 눈이 먼 것 도, 일흔네살의 영감이라는 것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고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이란 자서전에서 말했다. 

   물론 사르트르는 실명하기 전에도 사팔뜨기에 키도 작은 추남이었지만 여성들은 그의 탁월한 지성보다는 유머감각에, 소탈함과 하염없이 베푸는 관용에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단다. 더구나 그는 습관에 의해 계속, 항상 행복한 존재가 아닌가.

 
  자신의 골프 실력이나 새로 구입한 자가용과 주상복합 아파트, 극렬히 싫어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에 대한 가십 외에 이스탄불의 골목에 대해, 그리스 신화에 대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든 요리에 대해, 브람스의 음악에 대해 잘난척하지 않고 재미있게 이야기해줄 남자는 없을까. 


  아니 아주 동양적이거나 한국적인 대화도 좋다. 장자의 철학에 대해, 문인화에 나타난 상징성에 대해서도 좋다. 사강이 대화를 나누던 일흔네살의 사르트르보다 더 나이가 많아도 좋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끌어 드리거나 병상 옆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도 좋다....  

 그러다 문득 입장을 바꿔 상대방이 아니라 나를 생각해본다. 과연 내가 그런 현학적이지만 실속없고, 멋지지만 허망한 이야기를 마냥 들어 줄 인내심이 있을까. 들뢰즈나 라캉을 이야기해줘도 5분 후에는 연예인 스캔들, 한심한 한나라당 의원들과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라도 당선을 막고싶은 민주당의 대표 경선자 몇 명, 매스컴에 과대포장된 유명인사에 대한 적나라한 실상 등을 떠들고 싶어질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을 30년전에 지구를 떠난 사르트르 영감이 그립다.

 사강의 작품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녕은 good bye가 아니라 bonjour, 즉 hello나 hi의 의미다. 나는 사르트르에게 안녕이란 인사를 보낸다. 작별 인사가 아니라 안부의 인사다.
 

 “무슈 사르트르, 하늘나라에서도 여전히 행복하신지요. 보부아르, 사강 등 연인들과도 계속 만나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하시겠죠.. 생전엔 그토록 가진 것을 다 나줘주셨는데 천국에선 뭘 나눠주시는지요. 세상엔 당신처럼 못생긴 남자는 많은데 왜 당신처럼 멋진 남자는 드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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