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what kind of wondrous dreams are embracing my senses, that have not, like sea-foam, vanished into desolate Nothingness?
Dreams, that with each passing hour, each passing day, bloom fairer, and with their heavenly tidings roam blissfully through my heart!
Dreams which, like holy rays of light sink into the soul, there to paint an eternal image: forgiving all, thinking of only one.
Dreams which, when the Spring sun kisses the blossoms from the snow, so that into unsuspected bliss they greet the new day,
so that they grow, so that they bloom, and dreaming, bestow their fragrance, these dreams gently glow and fade on your breast, and then sink into the grave.
말해주오, 어떤 기이한 꿈이 내 마음 감싸 안고 있는지 꿈은 해파의 포말 같은 비참한 무의미로 소멸되지 않는구나
꿈은 흐르는 시간 속에, 스쳐가는 날들 속에 무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꿈은 천상의 소식을 알리며 기쁨에 넘쳐 내 마음을 관류한다!
꿈은 신성한 빛 줄기처럼 영혼 속으로 침잠하여, 영원한 상을 아로새긴다. 일체의 용서와 유일의 사고!
꿈은 봄날의 태양이 눈 속에 핀 꽃들에게 입맞추듯, 뜻밖의 기쁨이 되어 새 날을 반겨준다.
꿈은 자라나고 꽃피우고 꿈결같은 향기로움 뿜어내니, 조용히 작열하다 그대 가슴에 이울어간다. 그리고 무덤 속으로 주저앉는다.
오페라 로엔그린이 초연된 이듬해인 1851년(38세) 뉘른베르크의 전설을 깊이 연구한 바그너는 지그프리트, 발퀴레, 라인의 황금(黃金), 신들의 황혼(黃昏)의 순으로 극시(劇詩)를 써서 이들을 한 묶음으로 하여 니벨룽겐의 반지 라는제목을 달았다, 사람이 불우(不遇)할때는 하는 일마다 잘 안되는 법이다, 이 무렵 바그너는 늘 신병(身病)이 잦아서 고통울 겪었으며, 게다가 아내 민나와의 애정에도 깊은 균열(龜裂)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유 분방한 바그너와 평범한 가정부인인 민나와의 사이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맞지 않았다, 결혼한 이래 이루 형언키 어려운 고통을 함께 나눈 두 사람이기는 했지만, 바그너의 명성이 높아지고 그가 창작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자 그 균열은 점점 심해졌다,
1852년(39세)의 어느 날, 바그너는 쮜리히의 부유한 실크 상인 오토 베젠동크(Otto Wesendonk) 부처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특히 베젠동크 부인 마틸데(Mathilde)는 바그너의 인간과 예술을 깊이 이해했고, 가난한 바그너 에게 이것 저것 뒷바라지를 잘 해 주었다, 바그너는 베젠동크 부처의 원조를 받아 가면서 1854년부터 1857년에 걸쳐 라인의 황금, 발퀴레등을 완성했고, 지그프리트도 2막까지 썼다. 바그너가 베젠동크 부처가 세워 준 조그만 집에 이사가서 살게 된 것은 이「지그프리트」를 작곡 중인 1857년(44세) 4월의 일이었다
이 집은 베젠동크의 저택 바로 옆에 세워졌기 때문에,바그너와 마틸데는 갑자기 접근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틸데의
호의는 열렬할 사랑으로까지 발전하고 말았다. 아내 민나는 아주 질투심이 강했으므로, 그녀의 히스테리는 점점 더
바그너의 마음을 마틸데에게 접근시키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이렇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 속에서 태어난
것이관능(官能)과 환락(歡樂)의 이야기 트리스탄과 이졸데 의 극시였고, 마틸데의 시에다 곡을 붙인 비젠동크에 의한
5개의 시이다,그러니까 이 두 작품은 바그너와 마틸데의 사랑의 기념비(記念碑)라고 할 수 있다, 베젠동크는 아내 마틸데와 바그너와의 관계를 진작 알고 있었지만, 아무 때고 시간이 해결하리라는 관대한 태도로 임해 왔다, 그러나 그 관용(寬容)에도 한계가 있었다, 1858년(45세) 여름에 드디어 바그너는 그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원고를 안고, 우선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가서 작곡을 시작했다, 그 뒤 다시 스위스로돌아와서 경치 좋은 명승지 뤼쩨른에서 이 걸작을 완성했다, 1859년(46세) 여름의 일이다,
바그너는 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곧 파리에서 상연하려고 동분서주 했지만, 실현을 보지 못했다, 그 대신 메테르니히 공작부인의 주선으로 오페라 탄호이저가 상연되었다, 이것이 주지하는 바와 같이 탄호이저의 파리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