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신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갑작스러운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내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가해자와 보험사에서 받은 보상금은 총 약 4억 원.
저는 그 돈을 전부 장모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8년 뒤, 장모님은 그 돈을 다시 제게 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3년 동안 연애했고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혼자 힘으로 자란 외동딸이었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예단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장모님은 말했습니다.
“형식만 갖추면 된다. 결국 다 너희 둘의 것이니까.”
큰 요구도 없었고, 결혼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웨딩촬영을 하고, 예식장을 예약하고, 청첩장을 돌리고…
평범하고 행복한 예비부부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결혼식 사흘 전, 우리는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혼인관계증명서를 받아 들고 서로를 보며 웃었습니다.
“이제 진짜 부부네.”
그 말을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차로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차량이 우리 오토바이를 들이받았습니다.
그 이후의 기억은 없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내는 끝내 버티지 못했다고.
장모님은 병실 밖에서 무너져 있었다고.
혼인신고를 한 지 몇 시간.
결혼식까지 단 사흘.
그런데 저는 이미 아내의 남편이자, 동시에 남겨진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뒤,
가해자 측과 보험사에서 보상금이 지급됐습니다.
제 몫과 유가족 위자료가 나뉘어 있었지만,
저는 전부 장모님께 드렸습니다.
외동딸을 먼저 보낸 어머니에게
남은 건 그 돈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모시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뒤로 저는 자주 장모님을 찾아갔습니다.
혼자 계시면 더 힘드실까 봐서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친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으니까요.
소개팅 제안이 몇 번 있었지만,
“장모님을 계속 돌봐야 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내가 떠난 지 3년쯤 지났을 때,
한 유치원 교사를 소개받았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전 장모님을 계속 모셔야 합니다.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여기까지 하죠.”
그녀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반년 후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저와 함께 장모님을 모셨습니다.
장모님은 많이 놀라셨습니다.
재혼한 며느리가 자신을 함께 돌봐줄 줄은 몰랐다며.
장모님이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치료비는 모두 저희 부부가 부담했습니다.
단 한 번도 장모님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머니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아들과 며느리가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이야.”
아내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을 세심하게 챙겼고,
저는 병원 일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사고 후 8년이 지나,
장모님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 직전, 장모님은 통장 하나를 제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그 안에는 그때의 4억 원 보상금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집까지 모두 제 이름으로 남겨두셨습니다.
“넌 사위가 아니라… 내 아들이다.”
그 말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저와 아내는 장례를 치른 뒤,
장모님을 먼저 떠난 딸 곁에 모셨습니다.
이제야,
엄마와 딸이 다시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작성자님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문학임을 보여줍니다.
아내와의 짧았던 인연을 평생의 의리로 갚아내신 그 마음이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제 장모님도 딸 곁에서 편히 쉬고 계실 테니, 작성자님께서도 이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현재 곁에 계신 아내분과 함께 온전한 평안과 행복을 누리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