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웃을 돕자는데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사람들이 모였다. 이름만 들어도 따뜻해야 할 자리다. 함께 마음을 모아 위로하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길을 찾자고 시작된 모임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따라붙는다.
좋은 일이라고 말하면서, 약자의 고통을 빌미로 삼으려는 이들이 있다. “도움”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끼워 넣는 것이다. 겉으로는 모두가 선의로 보이지만, 어느 순간 조용히 위험한 제안이 등장한다.
어려운 사연을 널리 알리고 후원금을 모금하자면서, 정작 당사자의 계좌가 아닌 개인의 계좌로 돈을 모으자는 방식이다. 홍보만 하면 금세 모금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일을 서두르자고 한다.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했던 사람으로서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후원금은 1원도 흐트러짐 없이 투명해야 한다.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입출금이 기록되어야 하고, 독립된 계좌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위험한 영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로 포장한다 해도, 불법과 편법이 끼어들면 그것은 더 이상 “돕는 일”이 될 수 없다. 약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법과 양심을 희생시키는 편법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또 어떤 이들은, 남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들어와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신학적 주장에 열을 올린다. 고통받는 사람의 이야기는 점점 뒤로 밀리고, 결국 그 자리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드러내는 시간이 되어 버린다. 돕는다고 모였는데, 정작 도움의 주인공은 사라지고 말만 남는다.
더 안타까운 순간도 있다. 위로의 말 한마디면 충분한 때가 있는데, 조용하다. 사정을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안타깝다고 하면서도, 누구 하나 먼저 나서지 않는다. 그렇게 침묵이 길어지면, 이 모임은 더 이상 “이웃을 돕는 자리”라고 부르기 어렵다. 명분은 남았지만, 마음과 손길은 사라진 자리, 그곳에는 껍데기만 남는다.
이 현실 앞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거창한 일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어려움을 당한 분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직접 만나 식사하며 위로의 대화를 나누었다.
배포용 호소문을 정리하는 일을 도왔고, 상황을 알리는 글을 몇 번 썼다. 그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고맙다는 인사가 과분할 뿐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시 묻게 된다.
“지금 어려운 이웃을 자는데 정말 그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가?”
나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분명히 하기로 했다. 실제로 힘이 되는 일,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에는 성실히 참여하지만, 사람의 사연을 앞세워 내 목적을 달성하지 말자!
겉으로는 선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짓은 하지 말자!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말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러나 그 말이 진실이 되려면, 그 속에 담긴 우리의 태도와 방법도 아름다워야 한다. 고통을 이용하지 않고, 법과 양심을 존중하며, 말보다 실제 손길이 앞서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모였는데, 정작 그 이웃은 뒷전이 되고 각자의 목적만 앞세워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돕는 모임”이 아니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정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도움이라는 이름을 빌려 자신만을 위로하고 있을 뿐인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삶과 존엄이 중심에 서 있을 때만, 그 일은 비로소 “돕는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