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배우 안성기도 죽었다. 세계 최강의 주먹 조지 포먼도 죽었고, 교황 프란치스코도 죽었다. ‘쨍하고 해뜰 날’을 불렀던 송대관은 영원히 해가 뜨지 않는 곳에 잠들었다. 세상을 웃겼던 전유성은 웃음도, 눈물도 없는 세계로 떠났다.
사람은 죽는다. 정확히 말하면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죽는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이다. 그러나 바보만이 그것을 부인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버둥거리다가 한순간에 저세상으로 사라진다.
모임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백 살을 살지 못하면 쪽팔리잖아요.” 장수는 예로부터 인간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하지만 그런 염원을 마치 권리인 양 외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자연의 정령이 왕자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일이 무엇이오?” 왕자가 대답했다. “매일 무수히 많은 존재가 죽음의 집으로 가는데도 인간은 여전히 불멸의 존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부모와 친구, 가족, 이웃들의 죽음을 수없이 지켜보면서도 죽음을 망각한다. 죽으면 멀리 산속 깊은 곳에 묻고, 장의차를 보면 그날 일진이 사납다고 여긴다. 심지어 ‘죽을 사(死)’를 연상한다고 건물 4층을 F층으로 표기할 정도다. 과연 그렇게 해서 단 1초라도 우리의 죽음을 늦출 수 있는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죽음을 부인하기보다는 자주 떠올리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죽음을 직시하면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좀 더 겸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일 죽음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분노, 걱정, 미움 따위를 쉽게 비워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면 인간은 교만해지고 욕심을 부리게 된다.
영국 소설가 에드워드 포스터는 “죽음은 한 인간을 파괴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인간을 구원한다.”라고 했다. 죽음은 ‘삶의 스승’이다. 죽음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배우도 죽고 가수도 죽었다. 이제 곧 당신 차례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 이전에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삶을 위해서 우리는 지금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배연국의 행복한세상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