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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 사랑방

[전쟁과 사랑] 32년 만에 밝혀진 아내의 진짜 정체

작성자쉐도우영.|작성시간26.06.13|조회수193 목록 댓글 4

중국 중대장이 일본 여성 전쟁 포로를 차마 죽이지 못해 고향으로 데려가 은둔하며 결혼했다. 32년을 함께한 후에야 알게 된 아내의 정체는 남달랐다.

1945년, 미얀마의 밀림. 당시 류윈다(劉運達)는 중국 원정군의 중대장이었다. 그는 부대원들을 이끌고 일본군 거점을 소탕하던 중 격전 끝에 동굴 하나에서 흰 가운을 입은 일본인 여성 간호사 세 명을 발견했다.

맨 앞에 선 여성이 동료들을 뒤로 감싸며 손에 주사기를 쥐고 있었다. 저항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당시 전쟁 포로 처리 관행에 따르면 일본인 여성 포로는 그 자리에서 처형되는 경우가 많았다. 부대원들도 분노에 차서 동포들의 원수를 갚자고 외쳤고, 연대 본부에서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류윈다는 눈앞의 마르고 여린 여성을 보며 차마 총을 겨눌 수 없었다. 그녀가 쥐고 있던 것은 사람을 죽이는 총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주사기였다. 결국 전쟁에 휩쓸려 온 무고한 사람에 불과했다.

류윈다는 끝내 총구를 내리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먹을 것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 여성이 바로 오미야 시즈코(大宮靜子)였다. 일본 가나자와시 부잣집 딸이었던 그녀는 14세에 군 간호사로 강제 징집되어 전장에서 온갖 어둠을 목격했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차라리 일본으로 돌아가 고통받고 싶지 않았다.

류윈다는 마음이 약해져 그녀을 부대 의무대에 머물게 했고, 그녀가 자신의 의술로 사람을 구하게 했다. 처음에는 부상병들이 그녀를 일러두고 ‘일본 놈’이라고 불렀지만, 오미야 시즈코는 변명하지 않고 문간에 앉아 “나는 병사가 아니라 간호사예요”라고 중얼거렸다.

어느 날 젊은 병사 하나가 쓰러져 위중해졌다. 그녀는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하루 종일 환자를 돌보다 결국 살려냈다. 마을 사람들도 그녀를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시즈코’라고 부르며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다.

함께한 세월이 길어지면서 류윈다와 오미야 시즈코 사이에는 자연스레 마음이 생겼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는 따뜻함은 더욱 특별했다.

이후 일본이 항복하고 부대에서 전쟁 포로 송환을 결정했다. 오미야 시즈코는 단호하게 돌아가지 않겠다며 류윈다의 옷자락을 붙들며 말했다. “당신을 따라가겠어요. 어디든지요.”

1946년, 류윈다는 제대해 오미야 시즈코를 데리고 쓰촨성 바이사진(白沙鎮)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는 그녀에게 중국 이름 ‘모위안후이(莫元惠)’를 지어주고, 밖에서는 흉년을 피해 온 고아라고 둘러댔다.

한때 부잣집 아가씨였던 그녀는 이제 농부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후 32년 동안 ‘모위안후이’는 바이사진에서 모두가 칭찬하는 좋은 며느리가 되었다.

두 사람은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실명이 ‘모위안후이’임만 알 뿐, 그 진짜 정체를 전혀 몰랐다. 다만 밤이 되어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오미야 시즈코는 조용히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일본에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1978년, 대사관 번호판이 달린 지프차 한 대가 바이사진으로 들어섰다. 백발의 일본 노인이 류윈다의 집을 찾아왔다. 마당에서 닭에게 먹이를 주던 ‘모위안후이’를 보자마자 일본어로 “시즈코!”라고 외쳤다.

그 순간, 오미야 시즈코의 손에서 닭 먹이통이 떨어졌다. 그녀는 온몸을 떨었다. 이 노인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 오미야 요시오(大宮義雄)였다. 그는 전쟁 후 섬유 산업으로 성공해 재산 수조 원(100억엔 이상)의 거부가 되었으며, 30년 넘게 딸을 찾고 있었다.

류윈다는 문지방에 쪼그리고 앉아 밤새 담배를 피워 물렸다. 그는 아내가 부유한 생활을 선택해 떠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오미야 시즈코는 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버지를 뵈러 갔다 올게요. 하지만 내 뿌리는 당신 곁에 있어요.”

이후 그녀는 아버지를 보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아버지가 회사 지분을 상속해 주려 하자 백사진의 집이 그리워 얼마 지나지 않아 류윈다를 붙잡고 쓰촨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묻자, 오미야 시즈코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수조 원의 재산이 아니라, 열여섯 살 때 총구 앞에서 건네받았던 그 압축 비스킷과 흙집에서 서로에게 의지했던 그 시간들을 바라는 거예요.”

국경을 초월한 이 부부의 결혼은 끝내 사랑으로 전쟁의 증오를 풀어내며 그 시대의 전설로 남았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실화로, 국내외 여러 매체와 SNS, 책 등을 통해 ‘수조 원 상속을 거부한 일본인 위안부/간호사와 중국인 중대장의 사랑’ 등의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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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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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쉐도우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3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쉐도우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3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오대장 | 작성시간 26.06.13 좋은 사연 입니다.^^
    감사 합니다.^^
    건강 행복 가득한 주말 여시길 바래요.^^
  • 답댓글 작성자쉐도우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3 오대장 
    오대장님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주말 멋지게 보내시고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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