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책임을 타자에게 전가하지 않는 법]
바람이 불어 꽃이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내 삶을 뒤흔든 외풍 때문에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졌고, 매정한 바람 탓에 소중한 인연이 비껴갔다고 생각했을 때, 원망은 달콤한 도피처였다.
외부의 존재를 탓하는 동안은 내 안의 결핍이나 유약함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일은, 어쩌면 슬픔의 진짜 원인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는 지독한 방어기제였는지도 모른다.
조지훈의 시구,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라는 한 줄을 가만히 읊조리며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시인의 담담한 고백은 슬픔의 책임을 타자에게 전가하지 않는 고독한 성숙의 언어다.
꽃이 지는 것은 바람의 잔인함 때문이 아니라, 피어난 존재가 언젠가는 도달해야 할 스스로의 온전한 운명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바람은 그저 숨어 있던 계절의 변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계기였을 뿐, 낙화는 생명이 태어날 때부터 품고 있던 본질적인 순리였다.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스스로를 비워내는 낙화의 수용을 보며, 상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조용히 되돌아보게 된다.
타인을 향한 거친 원망을 거두고 내 앞에 놓인 소멸을 겸허히 껴안을 때, 비로소 마음속 소모적인 비탄이 멈추고 고요한 영토가 열린다.
모든 상실은 언제나 불시에 당도하는 외풍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 내면에서 오래전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필연의 완성일지도 모른다.
꽃은 제 몸을 떨구어 대지를 적심으로써 비로소 열매라는 다음 세대의 계절을 준비한다.
지금 내 안의 어떤 소중한 부분이 바스러지고 있다면, 그것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향기를 채우기 위한 필연적인 비워냄의 과정이 아닐까.
지나간 바람을 저주하느라 눈앞에 다가오는 열매의 계절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나지막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조우성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