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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띠 사랑방

한국 영화의 영원한 ‘앙팡 테리블’ 하길종의 피 묻은 청춘

작성자쉐도우영.|작성시간26.06.05|조회수128 목록 댓글 2

1975년 유신정권의 차가운 검열실, 천재 감독의 필름은 가위로 난도질당했다… 한국 영화의 영원한 ‘앙팡 테리블’ 하길종의 피 묻은 청춘

1975년, 살벌한 유신정권 시절.

어두컴컴한 검열실 안에서 가위를 든 공무원들이 한 천재 감독의 필름을 무참히 해체하고 있었다.

무려 30분이 잘려나갔다.

영화의 척추가 통째로 뽑혀나갔고, 시대의 아픈 곳을 찌르던 반항적인 대사들은 강제로 침묵당했다.

서른대의 젊은 감독은 자신이 며칠 밤을 새워 낳은 분신 같은 작품이 쓰레기통으로 처박히는 장면을 그저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켰고, 매일 밤 싸구려 소주를 물처럼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그는 오만한 천재였다.

카메라 렌즈 하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었던 남자였다.

하지만 그가 정면으로 들이받은 것은 총칼로 무장한 야만의 시대였다.

한국 영화계의 영원한 앙팡 테리블,
무서운 아이이자 문제적 천재였던 하길종.

그의 피 끓는 거대한 서사는 그렇게 잘려나간 필름 조각들과 함께 천천히 죽어갔다.

지금의 넷플릭스 세대에게 하길종이라는 이름은 매우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봉준호와 박찬욱이 칸과 오스카를 밟고 올라서기 수십 년 전, 이 척박한 땅에는 이미 하길종이라는 충격적인 천재가 존재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와 UCLA에서 영화를 공부한 그는, 1970년대 충무로에 갑자기 떨어진 외계인 같은 존재였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세련된 문법을 몸에 두르고 돌아온 그는, 1972년 데뷔작 《화분》에서 충격적인 동성애적 암시와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은유를 던졌다.

그 한 방에 충무로의 보수적인 늙은 고집쟁이들은 말 그대로 턱이 빠졌다.

당시 대중 역시 지나치게 앞서간 그의 미학을 소화하지 못했고, 흥행은 참패했다.

하지만 하길종은 애초에 타협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맹수였다.

그의 미친 천재성이 진짜로 폭발한 것은 1975년이었다.

한국 청춘영화의 영원한 성전이자, 가장 슬픈 희극이라 불리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

장발 단속을 피해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리는 대학생들.
맥주를 들이켜며 시대의 우울을 토해내는 청춘들.
그리고 마치 운명을 받아들인 듯 입영열차에 오르는 주인공의 텅 빈 눈빛.

한국 대중은 그 억눌린 낭만에 미친 듯 열광했다.

하지만 권력자들의 눈에 이 영화는 체제를 조롱하는 위험한 선전물일 뿐이었다.

경찰과 검열 당국은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영화는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심지어 영화에 삽입된 송창식의 명곡 〈왜 불러〉와 〈고래사냥〉까지 금지곡으로 묶이는 황당한 촌극이 벌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천재가 야만의 시대와 맞닥뜨렸을 때, 대체 어떻게 버텨야 하는가.

누군가는 권력 앞에 고개를 숙이고, 찬양 영화나 찍으며 돈을 벌었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부숴버리고 이 세계를 떠났다.

하지만 하길종은 어느 길도 택하지 않았다.

영화에 미친 이 남자에게 카메라는 곧 호흡기였다.

그런데 검열이라는 족쇄는 매일 그의 뇌세포를 짓밟고 있었다.

친자식 같은 작품이 난도질당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그 치명적인 무력감을 술로 마비시켰다.

가슴속에 쌓인 분노와 알코올.

그것은 그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갉아먹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1979년 2월 28일.

영화 《병태와 영자》를 막 끝내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던 38세의 거장은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그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말문이 막히고 잔인한 블랙코미디였다.

왜냐하면 그가 떠난 지 불과 8개월 뒤.

그가 온몸으로 혐오하고, 부딪치고, 맞서 싸웠던 유신 독재의 심장,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버텼다면.

단 8개월만 더 살았다면.

그는 그 미친 검열의 시대가 무너지는 장면을 자기 눈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길종이 떠난 뒤, 한국 영화계는 갑자기 기억이라도 되찾은 듯 그를 신화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

정말 역겹도록 익숙한 장면이다.

그가 살아 숨 쉬며 피를 토하듯 싸우고 있을 때는, 검열의 자로 그의 목을 조였다.

그러다 그가 죽고 나서야, 안전하게 전설이라는 액자 안에 넣어 모셔두었다.

이것이야말로 이 사회의 얄팍한 얼굴이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단순한 과로사나 알코올로 인한 병사로 가볍게 포장해서는 안 된다.

하길종의 38년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었다.

그것은 사상의 자유를 억누르는 폭력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한 예술가의 영혼을 산 채로 질식시키고, 끝내 그의 육체적 호흡마저 끊어놓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낡은 스크린 속 《바보들의 행진》을 볼 때마다, 그 유쾌한 캠퍼스 로맨스 뒤에 숨은 차가운 진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가장 위대한 예술은 때로, 한 천재가 자신의 생명력을 맷돌에 던져 갈아 넣으며 시대의 폭력에 맞선 피 묻은 기록이라는 것을.

부디 그곳에서는 잘려나간 필름도,
생각을 검열하는 꼰대 공무원도 없기를.

당신의 머릿속에 있던 그 날카롭고 오만한 장면들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기를.

편히 쉬세요.

한국 영화계에서 영원히 늙지 않을,
무서운 아이여.

잊지못할 8090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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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쉐도우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5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쉐도우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5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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