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역을 얻기 위해 3.5km 상공에서 뛰어내린 35세 무명 여배우… 차가운 바닷속에 잠긴 정인아와 피 묻은 낙하산
2015년 6월 13일, 전남 고흥군의 푸른 하늘 위.
3.5km 상공에서 경비행기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35세의 한 여배우가 눈앞이 아찔해지는 허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건 결코 아드레날린을 즐기기 위한 익스트림 스포츠가 아니었다.
스크린 위에서 단 한 번이라도 진짜로 빛날 기회를 얻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걸고 뛰어든 처절하고 숨 막히는 오디션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잔인했다.
그녀의 낙하산은 단단한 땅이 아니라 차가운 바다를 향해 떨어졌다.
실종된 지 사흘 만에, 그녀는 낙하산 줄에 몸이 얽힌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 이름조차 많은 사람에게 낯설었던 배우 정인아.
그녀는 그렇게 비극적인 부고 한 줄로, 평생 그토록 갈망했던 스포트라이트를 얻게 됐다.
요즘 어린 세대는 대형 기획사가 입에 떠먹여주는, 이른바 금수저 아이돌 성공 공식에 익숙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연예계에서 아무 배경 없는 무명 배우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벌거벗은 몸으로 피 튀기는 정글을 기어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2008년, 그녀가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로 데뷔했을 때, 아마 순진하게 믿었을 것이다.
자신의 맑고 생기 넘치는 매력이 곧 TV 화면을 가득 채우게 될 거라고.
하지만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자본주의는 낭만적인 꿈을 꾸는 사람에게 단 1g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카메라의 빨간 불은 꺼졌고, 오디션 전화도 소름 끼칠 만큼 끊겼다.
보통의 스타 지망생이라면 이쯤에서 스폰서를 찾아 헤매거나,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이 세계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인아는 독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트니스 트레이너 일을 했고, 미친 듯이 승마, 스쿠버다이빙, 요가 같은 몸을 써야 하는 기술을 배웠다.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프로필 속 특기란에 한 줄이라도 더 적기 위해.
감독들이 자신을 단 한 번이라도 더 봐주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2015년.
하늘이 그녀의 땀방울을 조금은 들어준 듯했다.
새로 준비 중인 영화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해야 하는 역할을 맡을 기회를 잡은 것이다.
사실 그 장면은 대역을 쓰거나, CG로 대충 처리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가난한 기회를 완벽하게 붙잡기 위해, 무려 1년 동안 전남 고흥을 오가며 혹독한 고공 낙하 훈련을 받았다.
죽기 얼마 전, 그녀가 SNS에 올린 사진이 있었다.
스카이다이빙 수료증을 들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그 사진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음이 찢어진다.
그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 얇은 종이 한 장이 자신의 수의가 되고, 목숨을 앗아갈 사형선고가 될 줄은.
그토록 자랑스럽게 스카이다이빙 수료증을 들고 있던, 늦게 피어난 35세의 여배우.
그녀는 출연 확정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따기도 전에, 차가운 바닷속 원혼이 되어버렸다.
6월 16일, 고흥 앞바다에서 그녀의 시신이 인양되고 나서야 대중은 검색창에 미친 듯이 정인아라는 이름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역겹고도 완벽한 비극인가.
그녀가 살아서 숨 쉬고, 피땀을 흘리며 연기를 갈망할 때는 세상이 단 한 번도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았다.
그런데 스카이다이빙 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자극적인 제목이 붙자마자 세상은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안타까운 여배우의 죽음.”
그리고 곧바로 클릭 장사를 시작했다.
우리는 정인아의 35년 인생을 단순히
“위험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불운한 배우”
정도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죽음은 차가운 묘비명이다.
이 기형적이고 피 냄새 나는 한국 연예계 밑바닥에서, 한 사람은 목숨까지 내던지는 극단적인 노력을 해야만 겨우 허공 같은 기회를 붙잡을 가능성이라도 얻는다는 사실을 피투성이로 증명한다.
그날 하늘에서 떨어지던 순간,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잔혹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가장 처절한 마지막 발버둥이었을 것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오디션에 쫓기는 공포도,
“대역 없이 완벽해야 한다”는 잔인한 강박도 없기를.
그토록 날고 싶어 했던 하늘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아름답게 날아다닐 수 있기를.
스크린 밖에서 가장 치열하고 피투성이였던 연기를 해낸 진짜 배우여.
편히 쉬세요.
잊지못할 8090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