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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띠 사랑방

대통령을 조종하고, 여배우를 농락하며, 세 명의 아내를 맞이하다

작성자쉐도우영.|작성시간26.06.12|조회수144 목록 댓글 2



대통령을 조종하고, 여배우를 농락하며, 세 명의 아내를 맞이하다:

이 한국 최고의 막장 재벌은 도대체 얼마나 거침없었을까

2009년, 한국의 톱스타 장자연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한국 사회 지도층을 뒤흔드는 거대한 추문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었다.

장자연은 생전 소속사에 의해 강제로 '접대'를 나가야 했고, 한국의 유력 인사들에게 특별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그 기간 동안 그녀는 거의 매일 과중한 스케줄에 시달렸고, 상황은 모든 이를 숨막히게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유서 속,
자신이 서비스했던 인물들의 명단에는 놀랍게도 롯데그룹의 창업주, 한국 최고의 막장 재벌로 불리던 신격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자수성가해서
박정희와 형제처럼 지내며 난색(好色)에 중독되었던 거물은,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겨우 스무 살의 여배우를 농락했다.
이 한 가지 만으로도 그의 오만함과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도덕적 한계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신격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할 뿐, 그의 광기는 사람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다.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전후 복구 특수에 올라타 자수성가한다
신격호는 1921년, 조선 반도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몹시 어려워, 장남이었던 그는 어릴 적부터 온갖 힘든 노동을 도맡아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성인이 된 후, 일제 강점기의 사상적 영향으로 그는 일본 생활을 몹시 동경하게 되었고, 가족의 만류도 뿌리치고 홀로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반드시 출세하겠다는 꿈을 안고서.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옳았다.
그가 일본에서 반공 반독하며
몇 년간 학교를 다닌 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고, 미국이 일본의 정치와 국방을 접수했다.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일본 각지의 대도시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신격호는 사업 기회를 포착했다.

미군들이 '껌'이라는 일상적인 과자를 엄청난 양으로 소비하고 있었으나, 당시 일본에는 이 껌을 제조할 공장이 전무했고, 미군은 자국에서 직접 공수해 와야만 했던 것이다.

신격호는 즉시 껌의 원재료와 제조 기술에 진입 장벽이 있는지 조사했다.
결과적으로 껌은 수지(樹脂)와 각종 향료, 감미료 몇 가지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기호 식품이었고, 기술적 장벽 자체가 없었기에 투자금과 원료만 확보하면 대량 생산도 가능했다.

신격호는 모든 것을 걸고 투자 유치에 뛰어들었으며, 파산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공장을 세웠다.

마침내 하늘도 돕는지, 그는 당시 몇몇 유력 인사들을 설득해 설비를 살 만한 거금을 지원받았고,
공장은 계획대로 가동을 시작했다.

그 후, 미군의 껌 주문으로 그는 인생의 첫 목돈을 손에 쥐었다.
바로 그날, 그는 자신의 과자 회사를 설립했으니, 이것이 훗날 롯데그룹의 전신이 된다.


기꺼이 일본의 '데릴사위'가 되어 롯데그룹을 키우다
이후 신격호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일본 내에서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 상류층과 결속하기 위해 그 사회 특유의 배타성을 정확히 꿰뚫고, 놀랍게도 일본 전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의 조카딸 시게미쓰 하쓰코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시게미쓰 마모루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명한 A급 전범이다.

한때는 왕징웨이 괴뢰 정권 주재 대사를 지냈고, 9·18 만주 사변과 중일전쟁 한복판에도 그가 있었다.

이후 미국의 비호 아래 사형을 간신히 면했고, 전후에는 50년대에 다시금 일본 외무대신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그야말로 정계의 '죽지 않는 올드 보스'였다.

신격호는 시게미쓰 가문과의 혼인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기꺼이 '데릴사위'가 되어 자신의 성을 '시게미쓰'로 바꾸고, 거기에 걸맞은 위압적인 이름 '다케오'까지 지었다.

그의 이 '충성심'을 본 시게미쓰 가문은 결국 이 한국 청년을 받아들여 가문의 일원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바로 이 정략 결혼 덕분에 롯데는 일본 국내의 막대한 사업 자원을 확보했고, 단순한 과자 제조회사에서 다방면을 아우르는 현대적 식품 그룹으로 순식간에 확장될 수 있었다.

시게미쓰 가문의 도움 없이는, 이 한국 청년의 성공 신화는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거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60년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며 한국 내 경제 환경이 회복되자, 한국 정부는 대일 화해를 통해 일본 기업의 자본 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었다.

신격호는 비록 일본 성(姓)으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한국인 신분이었다.

정부는 곧 그를 찾아내 귀국하여 경제 건설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여기서 그는 또다시 기회를 포착했고, 즉시 귀국하여 당시 대통령 박정희와 직접 면담을 가졌다.

박정희는 그의 행동거지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여, 거침없이 전략적 요충지의 주요 호텔 몇 곳을 내어주며 외식업과 관광업을 발전시키도록 했고, 롯데그룹의 각종 사업 인허가를 파격적으로 승인해 주어 당시 재계의 주요 재벌로 급부상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신격호와 롯데그룹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매출은 해마다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사업 규모도 거대해지면서 점차 한국 내 여러 주요 산업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식품 유통에서 화학 제조, 금융 투자에서 미디어·엔터테인먼트에 이르기까지, 롯데는 거의 모든 영역을 뻗어 나갔다.

대한민국 경제 지도 전체에는 롯데라는 낙인이 찍혔고, 신격호 역시 한국 재벌계의 명실상부한 거물 중 하나로 우뚝 섰다.


악행이 자자하고, 말년엔 하늘의 업보를 받다

그러나 권력이 극도로 비대해질수록, 그의 행실 역시 점점 더 막장으로 치달았다.
그는 대대적인 금권 정치를 펼쳐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대가로 정책적 특혜를 받아냈으며, 거대한 유착 관계를 구축해 나갔다.
동시에 경쟁 상대에겐 무자비한 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유망한 신생 기업들이 롯데의 악의적인 공세 앞에 줄줄이 도산했고,
수많은 이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경제적 영역일 뿐, 인품 자체를 논하기엔 이르다.

그의 사적 품성은 그야말로 '하수구'에 빗대야 할 수준이었다.

80년대부터 그의 여성 편력은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다. 롯데그룹 주최 미인 대회 출신의 서미경과 사적으로 관계를 맺어 급기야 아이까지 낳았고,
곧이어 수많은 여배우를 후원했다는 추문이 터져 나왔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결국 서두에 언급했던 장자연 사건까지 터지게 된 것이다.

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파장을 일으켰지만, 그는 자신의 막강한 권력으로 추호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외부 언론의 피상적인 비난 몇 마디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그를 상처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늘의 이치는 순환하고, 업보는 반드시 돌아오는 법.
아마도 하느님도 더는 참을 수 없었을까,
신격호는 말년에 이르러 마침내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발단은 그의 후계 구도였다.
나이가 들면서 그는 가업을 차남 신동빈에게 물려주려 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부터 줄곧 차남이 곁에서 헌신적으로 조언했기에, 그에 대한 애틋함이 더 컸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장남 신동주의 극심한 반발을 샀다.
일본의 전통은 장자 상속이며, 너 신격호라는 인간은 일본 덕에 흥한 놈이 아니냐며, 어떻게 그 오랜 규율을 깨부술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부자 삼대의 난투극이 시작되었다.

먼저 신격호가 장남을 해임하자, 곧이어 차남은 아버지의 측근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차남의 반기를 보자마자 신격호는 그조차 해임하려 들었지만, 신동빈은 바로 모친 시게미쓰 하쓰코와 손잡고 역으로 아버지의 모든 직함을 빼앗아 버렸다.

평생을 미친 듯이 날뛰던 그 늙은이는, 결국 자신의 피붙이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들 부자의 권력 다툼에 롯데 그룹 자체도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한중 관계 악화로 해외 매출이 급감한 데 이어, 박근혜 국정농단 뇌물 사건이 폭발하며 신격호 일가가 그대로 연루되어 한국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었고, 막대한 벌금 폭탄까지 맞닥뜨렸다.

내우외환 속에서 신격호의 정신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수차례 법정에서 추태를 부리며

큰소리로
"나는 롯데의 주인이다!"라고
악을 썼지만, 이제 외부는 그를 그저 정신이 나간 망령난 늙은이로 바라볼 뿐이었다.

2020년, 그는 병상에서 그 파란만장하고도 수치스러운 한평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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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쉐도우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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