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떳떳한 사람은 마치 겸손한 것 같고, 가장 현명한 사람은 겉으로는 아둔해 보이며, 가장 말 잘하는 사람은 마치 말더듬이처럼 보인다.”
사마의라고 하면 빈틈없는 책략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최후의 승리자라는 베일에 가려진 그의 삶은 의외로 1등과 거리가 멀었다.
형제 중 먼저 주목받은 건 형인 ‘사마랑’이다. ‘사마랑’은 12살에 경서 시험에 합격했고, 20살에 조조의 부름을 받아 조정에 입사해 연주자사까지 올랐다.
반면 사마의는 시작이 늦었다. 23살에 출사할 기회가 있었지만 병을 핑계로 거절했고, 3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사람들은 몸값을 높이기 위해 때를 기다렸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최염이 사마랑에게 “넌 동생에게 미치지 못한다”라고 평가한 일화는 유명하다. 반면 이 평가에 사마랑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마랑쯤 되는 사람이 단순히 자존심 때문에 좀스럽게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사마의는 이때부터 ‘귀한 것은 감추어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기 형을 상대로도 말이다.
사마의는 형인 사마랑이 죽고, 자신과 가까운 사이였던 조비가 세자로 임명되면서부터 활약하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둘 다 같은 해인 217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마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피했다. 촉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 ‘등록망촉’ 일화에서도, 손권과 손을 잡아 관우를 치자는 계책을 낼 때도 선배들을 앞에 내세웠다.
조비와 가까웠던 진군, 오질, 주삭, 사마의를 가리켜 조위사우라고 부른다. 이들 중 가장 기세등등했던 건 오질이었다. 오질은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래서인지 뽐내기를 좋아하고 귀족 자제들만 가려서 어울렸다고 한다. 그는 머리가 좋아 조비의 핵심 참모 역할을 했는데 이때 조식의 브레인인 양수에게 한방 먹인 일화가 유명하다. 반면 사마의는 이 둘에 비해 딱히 세자 쟁탈전에 기여했다는 기록이 없다.
조비가 황제가 되자 오질의 오만함은 극에 달했다. 유주의 자사였던 최림(‘대기만성’ 일화의 주인공이다)이 뻣뻣하게 군다는 이유로 좌천시킬 만큼 월권이 심했다. 조위사우들과도 사이가 나빴다. 주삭과는 공개석상에서 욕설을 주고받을 정도였고 진군을 고발하기도 했다. 다만 사마의와는 사이가 원만했는지 자기 딸을 내어 주어 사돈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조비는 막상 죽을 때가 되자 진군과 사마의에게 뒷일을 맡겼다. 자기가 부리기에는 좋았지만 후사를 맡기기에는 그 인망이 걱정됐던 탓이다. 오질은 얼마 안 가 죽었는데, 사람들이 시호를 ‘추할 추(醜)’ 자를 써서 ‘추후’라 했다. 사마의의 장남과 결혼했던 오질의 딸도 곧 파혼당했다.
일생의 라이벌이었던 제갈량과의 대결에서도 사마의의 신중함은 돋보인다. 제갈량이 아녀자의 옷을 보내 도발했지만 그저 웃을 뿐이었다. 백성들이 죽은 제갈량이 살아 있는 사마의를 도망가게 했다고 조롱해도 “난 산 자를 헤아릴 수는 있지만 죽은 자를 헤아리지는 못한다”며 흘려넘겼다.
제갈량을 꺾은 뒤 사마의는 최고직인 태위에 올랐다. 이쯤이면 경계심이 무너질 법도 한데 사마의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때 기록을 보면 사마의는 벼슬이 올라갈수록 더욱 겸손하고 공손하게 처신했다고 한다. 한 번은 고향인 온현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 잔치를 열었는데, 이때 부른 노래가 다음과 같았다.
“공이 이루어진 것을 고한 뒤 관직을 사양하고, 노인으로 여생을 보내며 처벌을 기다리겠노라.”
조상과 대결할 때 사마의가 보여준 기만책은 잘 알려져 있다. 239년, 조예가 죽자 조상과 사마의가 국정을 맡았다. 조상과 그 일파는 사마의를 두려워해 실권을 빼앗았는데, 사마의는 병이 걸린 척 연기하며 때를 기다렸다. 자기 아들보다도 어린 낙하산에게 핍박당하는 것을 참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의는 산송장 같은 늙은이를 연기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가 난을 일으킨 것이 249년이니까 무려 10년을 참고 기다린 셈이다. 아내 장춘화가 죽은 뒤 집에 틀어박혀 치매 연기를 한 것만 따져도 2년 2개월이나 된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많다. 남들에게 재주를 뽐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남의 재주를 시기하고 경계하는 것 역시 사람의 심리다.
무대 위에 오르면 당장은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 앞에 드러난 사람은 자칫하면 위태로워지기 십상이다. 빛에 휩싸여 스스로를 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는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사마랑은 아직 쟁쟁한 호족들이 건재할 때 데뷔해 주자사에 그쳤고, 양수와 오질은 너무 일찍 무대에 오른 결과 자멸하고 말았다. 조상은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오른 탓에 일가가 멸족당했다.
하지만 사마의는 달랐다. 서둘러 나서지 않고 스스로를 수양하며 때를 기다렸다. 20대에는 영광을 쫓는 대신 내공을 쌓았고, 30대에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모든 공로를 상사에게 돌렸다. 40대에는 주변을 둘러보며 무리를 모았고,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전면에 나섰지만 그때도 스스로를 연마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사마의를 가리켜 낭고상이라고 한다. 나는 그게 후대의 창작일 거라고 확신한다. 그가 눈을 희번덕거리고 다녔다면 결코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무서운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다니지 않는다. 얼굴은 맑고 말은 바르며 항상 미소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진짜 무서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줄 알고,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져줄 줄 안다. 회의 자리에서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마지막에 가서야 입을 열기 마련이며, 개싸움이 나면 십중팔구 시끄럽게 짖는 쪽이 지게 되어 있다.
진서는 사마의를 가리켜 마음이 깊어 헤아리기 어려웠으며, 능히 남을 포용할 줄 알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새가 날개를 감추듯 자신의 재주를 감추었다고 묘사했다. 지혜로운 자는 사소한 손해에 집착하지 않으며 초조함이 없기 때문에 재능을 뽐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지 잘난 척해서 느끼는 순간의 쾌감이 아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늑대 같은 모습의 사마의는 후대의 창작이다. 오히려 삼국지연의 속 유비의 이미지가 실제 사마의에 가까웠을 것이다. 타고난 지능은 양수와 오질이 사마의보다 높았다. 하지만 인생의 승부는 아이큐로 갈리는 게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타고난 재주는 50보 100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