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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띠 사랑방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작성자쉐도우영.|작성시간26.06.08|조회수133 목록 댓글 2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있다.
주먹'이라고 하면 조폭이나 단순한 싸움꾼, 깡패를 떠올리기 쉽다.

벌교의 주먹은 일제의 불의에 맞서 분노를 터트렸던 민족의 주먹’이자 정의의 주먹이었다.

머슴살이하던 ​안규홍이 벌교 소화다리 근처를 지나갈 때의 일이다.

​일본 순사가 말 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조선 아낙네를 희롱하고 무도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 군경의 만행에 다들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있을 때, 안규홍 선생이 참지 못하고 걸어 나갔다.

​그는 단숨에 일본 순사를 말 아래로 끌어내린 뒤 강력한 주먹 한 방으로 때려눕혀 버렸다.이때 일본 순사가 다리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이때부터 일제에 기죽지 않는 벌교 사람들의 기개와 안규홍의 매운 주먹을 기리며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퍼지게 되었다.

안규홍은 머슴 출신으로서 구한말 호남 의병을 이끈 대단히 독보적이고 특이한 인물이다.

​안규홍(安圭洪, 1879~1911) 선생은 보성군 문덕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어린 시절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였다.전라도 사투리로 머슴살이를 담살이라고 불렀다.

​그는 보성군 파청면의 부유한 선비였던 박제현의 집에서 담살이를 했다.​신분은 머슴이었지만 체격이 당당하고 힘이 장사였으며, 의리 있고 영리하여 동네 청년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당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보성에서도 의병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일제의 보복이 두려워 대장 자리를 서로 양보하며 주저하고 있었다.

​이때 머슴이었던 안규홍이 벌떡 일어났다.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양반과 상놈이 어디 있느냐! 내가 대장을 맡을 테니 나를 따르라!"

​그가 의병장을 맡겠다고 선언하자, 놀랍게도 그가 머슴살이를 하던 집의 주인인 박제현을 비롯해 지역의 양반과 유생들이 그의 아래로 들어가 부하가 되기를 자처했다.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 조선에서 머슴이 대장이 되고 양반들이 지휘를 받는 의병 부대가 탄생한 것은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안규홍 의병장은 보성을 중심으로 장흥, 강진, 순천 등 전남 일대에서 맹활약했다.

그의 부대는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지형을 잘 알고 신출귀몰한 전술을 펼쳐 일제 군경을 공포에 떨게 했다.

자신이 머슴살이를 하던 파청 부근에서 일본군 수송대를 기습해 대승을 거두었다.

머슴 출신이었기에 민중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민가에 절대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군율을 세워, 백성들로부터 '우리 군대'라는 칭송을 받았다.

​일제의 악명 높은 '남한대토벌작전(1909년)'으로 호남 의병 전체가 고립되었다.안규홍 의병장은 부하들을 대피시키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결국 일제에 체포되었다.

대구형무소로 이송된 그는 끝까지 일제의 회유를 거부하고 1911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국하셨다.

​그의 고향인 보성에는 현재 안규홍 의병장의 기념탑과 동상이 세워져 있어 애국심과 용기를 기리고 있다.

머슴출신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안규홍 의병장의 가장 빛나는 3대 대첩이 있다.

​1. 파청 대첩 (1908년 4월)

​안규홍 의병장 이름을 일제와 전국에 널리 알린 가장 결정적이고 위대한 승리였다. '파청'은 현재 보성군 보성읍 대치리 파청마을 인근 고개이다.

​일본군 순사 사단과 수송대가 보성을 지나간다는 첩보를 입수한 안규홍 의병장은 파청 고개의 험준한 지형에 군사를 매복시켰다.

​일본군이 고개 깊숙이 들어왔을 때 일제히 기습 사격을 퍼부었다. 일본군은 대패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부대장과 순사, 군인 등 수십 명을 사살하고, 수많은 총기와 군용 물자를 노획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자신이 머슴살이를 하던 동네 바로 앞마당에서 거둔 승리였으며, 이 사건으로 "벌교 주먹 안담살이가 떴다"며 호남 일대의 포수들과 청년들이 안규홍 의병대로 구름처럼 몰려드는 계기가 되었다.

​2. 진산 대첩 (1908년 7월)

​현재 보성군 군학리(득량면) 인근의 '진산(甑山)'에서 벌어진 전투로, 안규홍 의병대의 전술적 천재성이 돋보인 대첩이다.

​일본군이 안규홍 의병대를 잡기 위해 대규모 수비대를 투입해 압박해 오자, 안규홍 의병장은 진산의 험한 암벽과 숲속에 군사를 숨겼다.

​일본군이 수색을 위해 산으로 진입하자, 미리 준비해 둔 바위와 굴려 내릴 나무들을 한꺼번에 떨어뜨리며 기습적인 총격을 가했다. 지형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한 일본군은 아비규환에 빠졌다.

​일본군 기마병과 보병 수십 명을 사살하고 말과 군수품을 노획했다. 일본군 조정은 "안규홍 부대는 정규군 수준의 전술을 구사한다"며 경악했다.

​3. 원봉 대첩 (1909년 3월)

​현재 보성군 화천리 인근의 원봉(圓峰)에서 벌어진 전투로, 안규홍 의병대 후반기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승전이다.

일제가 안규홍 의병대를 토벌하기 위해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경비대를 대거 파견했다.

무기의 열세를 인정한 안규홍 의병장은 정면 대결을 피하고, 일본군을 원봉의 깊은 계곡 안으로 유인했다. 일본군이 사방이 막힌 분지에 도달했을 때 상단에서 포위 사격을 감행했다.

지휘관을 포함한 일본군 다수를 전멸시켰으며, 의병대의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적의 화력을 빼앗는데 성공했다.

안규홍의 의병대가 이처럼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보성과 벌교 일대 백성들의 완벽한 밀정 역할 덕분이었다. 일본군이 움직이면 동네 주민들이 먼저 안규홍 장군에게 정보를 전달했고, 머슴 출신 대장은 그 지형을 귀신같이 이용해 적의 허를 찔렀다.

​양반 출신 의병장들이 화력과 정면 대결을 고집하다 패했던 것과 달리, 안담살이 안규홍 장군은 가장 민중적인 유격전으로 보성 산천을 일제의 무덤으로 만든 진짜 '전쟁의 귀재'였다.

사진은 보성군 벌교읍 선근공원에 있는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의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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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쉐도우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8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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