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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띠 사랑방

이기려 들지 마라, 잃지 않으면 이긴다

작성자쉐도우영.|작성시간26.06.09|조회수118 목록 댓글 2



[이기려 들지 마라, 잃지 않으면 이긴다]

"비판은 집비둘기와 같다.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 데일 카네기

벌써 십수 년 전 일이다. 작은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던 한 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거래처가 공사 대금 일부를 떼어먹었다는 것이었다. 서류는 깔끔했다. 견적서, 계약서, 카카오톡 대화까지. 누가 봐도 우리가 이기는 사건이었다.

첫 변론기일, 나는 상대방의 주장을 조목조목 깨부쉈다. 상대 대리인이 머뭇거리는 게 보였고, 방청석의 의뢰인은 통쾌한 표정이었다. 그날 우리는 사실상 이겼다. 그런데 복도에서 의뢰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 속이 다 시원합니다. 저 인간, 아주 박살을 내주세요."

나는 그 말이 며칠 동안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대금'을 받으러 온 것이지, 사람을 '박살내러' 온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박살난 사람은 결코 순순히 돈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 기일을 앞두고 나는 전략을 바꿨다. 상대를 더 몰아붙이는 대신, 상대 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사건 우리가 이깁니다. 그런데 끝까지 가면 댁의 의뢰인은 지연이자에 소송비용까지 물게 됩니다.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원금만 받고 깔끔하게 끝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 의뢰인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상대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칼을 빼들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출구를 열어준 것이다. 보름 뒤, 우리는 원금 전액을 받고 합의했다. 판결까지 갔다면 1년은 더 걸렸을 일이었다. 이긴 변론으로 사람을 굴복시켰다면, 나는 통쾌함을 얻고 시간을 잃었을 것이다. 굴복시키지 않았기에, 나는 의뢰인이 원하는 것 — 돈과 시간 — 을 모두 얻었다.

# 비판은 왜 사람을 바꾸지 못하는가

카네기는 책의 첫 장을 '비판하지 말라'로 열었다. 링컨조차 젊은 시절엔 남을 신랄하게 조롱하는 편지를 즐겨 썼지만, 그 편지 한 장 때문에 결투 신청까지 받고 나서 평생 누구도 함부로 비판하지 않았다는 일화와 함께.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은 비판을 받으면 자신을 고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방어한다. 잘못을 지적당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반성'이 아니라 '변명의 설계'다. 그리고 그 변명의 끝에는 당신에 대한 원한이 남는다.

법정은 이 진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다. 30년간 나는, 상대를 완벽하게 논파한 변호사가 사건에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장면을 수없이 봤다. 논리로 이긴 자리에서, 감정은 진다. 그리고 사건은 결국 감정으로 끝난다.

여기에 한국적 변수가 하나 더 붙는다. 체면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틀렸다'고 지적당하는 것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인격의 훼손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람들 앞에서 면이 깎인 상대는, 손해를 보더라도 당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을 명예로 여긴다. 이기려 들수록 일은 꼬인다.

그래서 노련한 어른은 이긴 자리에서도 상대의 퇴로를 열어둔다. 굴복이 아니라 합의로, 망신이 아니라 체면으로 끝나게 한다. 이것은 약함이 아니다. 가장 영리한 강함이다.
/ 이기려 들지 마라. 이기는 것은 한 번의 승부지만, 잃지 않는 것은 평생의 관계다./

논쟁에서 이기고 사람을 잃는 것만큼 어리석은 거래는 없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대신,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얻어라. 그 둘은 거의 언제나 다른 방향에 있다.

오늘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은 순간이 오거든, 먼저 자문하라. "나는 이 사람을 고치고 싶은가, 아니면 이기고 싶은가?" 답이 후자라면, 입을 다무는 편이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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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쉐도우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9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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