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는 것은 좋기는 하지만
상대방을 속속들이 알고 나서야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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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처지와 입장과 문화적 행태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는 배려란
자기의 처지와 입장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상대방의 처지와 입장과 문화적 행태로 보고 행하는
그러한 자기중심적 배려가 되어버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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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문제는
그러한 사람이 그러한 자기중심적 행동을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굳게 믿고
그런 행위를 자행하는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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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식의 배려는 진정한 배려가 아니라
도리어 상대방에게 고충을 안겨주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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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처지와 입장과 그 식사에서의 문화는
접시에 수프를 담아놓고 혀로 핢아먹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러나 까마귀는 긴 부리로 집어서 먹는 것이
까마귀의 처지와 입장과 그 식사에서의 문화에서 당연하다.
그러한 여우가 까마귀를 초청해서 대접하면서
접시에 수프를 담아놓고 먹으라고 권하면서
자기딴은 최선의 배려를 베풀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배려에 있어서 정말 난센스에 해당하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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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이런 '난센스적 배려'가 너무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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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식으로 배려라는 것을 해놓고
자기가 필요한 때
당연히 갚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런 정도가 되면
배려라는 것이 차라리 토색같은 게 된다.
《이 깊이 있는 글의 출처는 법정 스님의 수필이나 일반적인 인문학 에세이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책에 따라 까마귀로 변형)>를 모티브로 한 철학적 비평문입니다.
문맥상 이 글은 신영복 교수의 저서(예: 《담론》 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유》)나, 혹은 법정 스님이 생전에 강조하셨던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의 글들과 맥을 같이 합니다. 특히 상대방의 입장을 주관적으로 재단하는 ‘자기중심적 배려’의 위험성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명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