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 속 인자한 아버지는 어떻게 ‘청주대 지하왕국’의 포식자가 되었나… 카톡 기록 속 역겨운 민낯, 그리고 지하 창고에서 목을 맨 조민기의 비겁한 결말
2018년 3월 9일 오후 4시쯤.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고급 아파트, 지하주차장 옆 외진 창고 안.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차갑고 곰팡내 나는 그 밀폐된 공간에서 한 남자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최고급 맞춤 정장을 입고, TV 화면 속에서 위엄 있는 군주나 자상한 아버지를 연기하던 남자였다.
카메라는 늘 그의 묵직하고 점잖은 미소를 사랑했다.
대중은 그를 품격 있는 중년 배우로 기억했다.
하지만 경찰 소환을 불과 사흘 앞둔 그가 자신에게 선택한 마지막 무대는 화려한 촬영장이 아니었다.
천장에 밧줄 하나가 걸린, 어두운 지하 창고였다.
배우 조민기.
대한민국 미투 운동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역겨우며, 동시에 가장 무책임하게 막을 내린 이 공포극의 주인공.
도대체 무엇이 이 완벽해 보이던 명품 배우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었을까.
아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 화려한 가면 뒤에서 그는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숨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젊은 영혼들을 짓밟은 뒤에야, 자기만의 더럽고 악취 나는 독립 왕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업계의 밑바닥 생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조민기라는 이름 앞에 붙어 있던 화려한 수식어들이 얼마나 정교하게 기획된 위선의 무대였는지 깨닫게 된다.
대중에게 그는 완벽한 지식인이자 예술가였다.
대학 교수.
사진작가.
딸과 함께 예능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하며, 친구처럼 다정한 국민 아버지 이미지까지 얻은 남자.
하지만 그가 교수로 있던 청주대학교 연극학과라는 폐쇄적인 생태계 안에서, 그는 결코 스승만이 아니었다.
그는 절대 권력을 쥔 폭군이자 포식자였다.
스무 살 안팎의 학생들에게, 현역 유명 배우이자 교수인 그를 거스르는 일은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배우가 되고 싶어 모든 것을 걸고 있던 어린 학생들.
학점, 오디션, 추천, 인맥.
그들의 미래는 교수 한 사람의 손끝에 달려 있었다.
조민기는 누구보다 그 끔찍한 권력의 불균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이용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생존 지침처럼 ‘조민기 대처법’이 떠돌았다고 한다.
여학생이 그의 오피스텔에 불려갈 때는 절대 혼자 가지 말 것.
반드시 남학생을 데려가 방패처럼 세울 것.
그래야 그 끈적한 시선과 손길을 겨우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
캐스팅의 기회.
학점.
연예계로 들어갈 수 있는 인맥.
그는 이 모든 것을 가장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미끼로 삼았다.
학생들을 술자리로 불렀고, 오피스텔로 불렀고, 노래방 룸으로 불렀다.
“내 사람이 되어라.”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그 문장 안에는, 입에 담기도 역겨운 성희롱과 추행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연기 지도를 해준다”는 핑계로 신체 접촉을 하는 일은 일상이었다고 폭로됐다.
밤마다 여학생들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들은, 삼류 음란 소설보다도 더 저급했다.
대중 앞에서는 고상한 예술가처럼 카메라 렌즈를 만지던 그 손.
그 손은 뒤에서는 어린 여학생들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문장을 두드리며,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봄.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의 불길이 문화예술계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그가 철옹성처럼 쌓아 올린 지하왕국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첫 폭로가 터졌을 때, 이 점잖은 얼굴의 남자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명백한 루머다.”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가슴을 툭툭 쳤을 뿐인데, 그게 성추행이냐?”
그는 끝까지 뻔뻔하게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가진 권력과 인맥을 동원하면, 과거처럼 이 작고 약한 목소리들을 다시 짓눌러버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져 있었다.
그 역겨운 변명에 분노한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하나둘 실명과 얼굴을 걸고 폭로의 전장에 뛰어들었다.
피해를 호소한 사람들의 수는 빠르게 두 자릿수를 넘어섰다.
그가 보냈다는 노골적이고 저열한 카톡 캡처들이 뉴스 헤드라인을 뒤덮었을 때, 그는 마침내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경찰은 강제추행 등 혐의로 그를 정식 입건했고, 3월 12일 출석 조사를 통보했다.
평생 화려한 조명 아래 살아온 남자.
그가 수백 대의 카메라 앞에서 포토라인에 서고, 공개적으로 무너지는 장면을 떠올렸을 때.
그 수치심과 파멸은, 그의 초라한 자존심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도망쳤다.
자신의 죄를 마주하지 않았다.
피해자들 앞에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죄하지도 않았다.
그는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비겁한 막다른 길을 골랐다.
지하 창고에서 자신의 목에 밧줄을 걸었다.
그가 숨을 거둔 순간, 경찰 수사는 피의자 사망에 따른 공소권 없음으로 강제 종결됐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그림자와 상처 속에 평생 갇혀 살아야 할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가해자가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볼 마지막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뜻이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뻔뻔하게 말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죽었겠냐.”
그 값싼 동정표를 가해자에게 던졌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입을 연 여성들에게는 끔찍한 2차 가해와 모욕을 퍼부었다.
우리는 조민기의 죽음을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유명 배우”
같은 싸구려 감성 문장으로 세탁해서는 안 된다.
그의 52년 인생의 결말은, 권력에 취해 타인의 영혼을 마음대로 짓밟던 한 남자가 자신의 민낯이 완전히 벗겨지자, 죄의 무게를 감당할 용기조차 없이 도망친 비겁한 엔딩이었다.
대중을 속이고, 학생들을 짓밟고,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죽음으로 피해자들의 입까지 영원한 침묵 속에 가두려 한 차가운 포식자.
부디 그곳에서는 당신이 평생 쓰고 다녔던 고상한 가면이 완전히 찢겨나가기를.
당신이 무너뜨린 수많은 젊은 영혼들의 피눈물이, 당신의 등을 영원히 짓누르기를.
그리고 이 지하 창고의 결말이, 아직도 연예계와 대학가 어딘가에 숨어 완벽한 가면을 쓴 채 제2, 제3의 지하왕국을 세우려는 썩은 괴물들의 얼굴에 내리꽂히는 가장 차가운 경고장이 되기를.
잊지못할 8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