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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시리즈 설교

사랑해요. 축복해요. / “예수님을 생각하는 믿음(5)”

작성자김대용|작성시간25.09.28|조회수35 목록 댓글 0

 

+ 제 목 : 사랑해요. 축복해요. / “예수님을 생각하는 믿음(5)”

+ 본 문 :  전 도 서 714(구약성경 p.952)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아멘!

 

지혜자 솔로몬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형통하십니까?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을,

마음껏 즐거워하십시오. 그러나 혹 곤고하십니까? 그렇다면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실패의 원인과 그 실패를 통해서 여러분을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에 대해,

여러분의 인생과 여러분을 지으시고, 여러분을 이끌어 가시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대해,

또 여러분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 그리고 지금 여러분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 깊이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런 곤고한 날을 주셨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그 뜻을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기만 한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그 곤고한 날들을 거두시고, 다시 찬란한 축복의 태양을 여러분에게 비추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뒤돌아보며 깊이 생각하십시오. 곤고한 날에 더욱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곤고한 날을 맞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사람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나 돼지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잡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은, 잠시도 생각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여기 왜 왔지? 이제 뭘 할까? 나는 왜 사나? 저 사람은 누구지?

나를 좋아할까?” 이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사람들은, 뭔가를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냥 저냥 남이 하는 대로,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살아갑니다.

미래 사회의 특징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2F라고 하는데, FashionFeeling입니다.

미래는 생각하는 시대가 아니라, 느끼는 시대라 그 말입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특별히 요즘의 젊은이들을 보십시오. 깊이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그냥 느낍니다.

좋고 싫은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물으면 대답을 전혀 못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을 보면,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좀처럼 책도 읽지 않습니다.

읽어도 신문이나 주간지 정도에서 그칩니다. 그러니 어디서 살아갈 무슨 지혜를 얻고,

명철한 생각이 나오겠습니까? 신앙생활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깊이 생각하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생활도, 주일 대예배 시간에만 슬쩍 흘려 듣고는 그것으로 끝입니다.

목사가 설교한 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아닌지, 말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나는 어떻게 삶을 바꾸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려면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포기하며 살아야 하고, 무엇을 얻어야 할지를, 전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험악한 세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도행전 1711절 말씀입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 정말 그러한가 하고 날마다 성경을,

깊이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주의 깊게 듣는 사람이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들은 후에도 과연 그러한가 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마음을 깊이 하여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살아가는 신령한 지혜자들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아멘!

 

히브리서 31절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아멘! 아멘!

 

여기서 깊이 생각하라.” 는 말은 헬라어로 카타 - 강조. 노에오 - 생각하다.” ,

철저하게 연구하다. 눈을 고정시키다. 마음을 거기에 붙들어 매어 놓다.” 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정신을 다른 데 쓰지 않고, 오직 한 군데에만 집중한다.” 는 뜻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믿음의 형제들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에게 정신을 집중해서 마음을 붙들어 매어 놓는 것입니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일주일 188시간 중에 겨우 한 시간, 그것도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온갖 잡념을 가지고,

주일 낮 예배 한 번 드려 놓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입니다.

머리 속에 온갖 세상 것으로 꽉 차서, 예수님에 대한 생각은 비집고 들어 갈래야,

들어갈 수 없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따금 생각날 때에 하나님, 내게도 복을 주소서.”

하면서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이라 믿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미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정신을 똑바로 가다듬고, 내 온 마음을 끌어다가 예수님께 붙들어 매어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다스리시고, 지배하시도록 나를 묶어 드려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주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은 나의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끌어다가 예수님께 붙들어,

매어 놓으십시오.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온전히 다스리도록 나를 묶어 주 앞에 드리십시오.

그리할 때 주님께서 나를 온전한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은혜의 날개로 인도하십니다.

 

히브리서 31절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아멘! 아멘!

 

이 말씀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두 단어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사도와 대제사장 입니다. 사도란 사명을 지워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 사명을 지워 보내신 사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이 땅에 어떤 모습으로 오셨는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희생과,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내려오신 그 겸손하심과,

우리에게 보여 주신 한없는 용서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그 보혈의 피와 우리를 위해서 참으신, 한없는 인내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며 옳은 말씀이다.” 하고 머리를 끄덕이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그럴듯하다.” 하고 느끼는 것만 가지고도 부족합니다. 가슴으로 뜨겁게 깨달아야 합니다.

단순한 지식은 머리로 깨우칠 수 있지만, 참된 진리는 가슴으로 뜨겁게 받아야 합니다.

차가운 이성만으로는 진실을 만날 수 없고, 무릎 꿇어 엎드리며 가슴찢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 제사장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에 빠진 우리 인생 사이에서,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는 중재자입니다.

본래 우리 인간이 죄를 지으면, 그 죄 값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대속의 제물인 예수님을 대신 죽여, 용서받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이 대속물인 양이나 소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제사장은 그 사람 대신, 양이든 소든 잡아서 피를 흘려야 그 사람은 용서를 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 레위기에 나오는, 죄를 지은 사람들의 속죄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속죄의 제사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 바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서 양이나,

소를 잡아서 바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높이 매다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용서를 우리에게 선물하셨습니.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

제물이자, 동시에 대제사장이신 것입니다. 망 선고 아래 있던 우리에게 생명을,

되찾아 주신 우리 예수님, 직접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피를 뿌려 우리를 살려 주신,

대속 제물이자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었던 것과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종종 단순한 종교적인 행사로,

흐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종교의식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의 신앙생활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고,

언제나 자신들의 삶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감격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렸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을 섬겼고,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감격하여 찬양했고, 그 감격 때문에 기꺼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봉사는 오늘의 우리처럼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눈치로 일하지도 않았습니다.

칭찬을 위해서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랑 때문에 믿었고, 살았고, 그 사랑에 감격해서 죽었습니다.

 

핍박을 받던 초대교회 당시에 한 위대한 순교자는, 배교하라는 유혹의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한평생 그분을 섬겼고, 그분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셨거늘 내가 어찌 내 안에 계신 나의 왕, 나의 주님을 욕하고 배신할 수 있으리오.“

또 순교자였던 사보나롤라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들이 원한다면 나를 죽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신 예수님은, 때어 놓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서 835절부터 39절 말씀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아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앙의 사도가 되십니다.

생명의 뿌리이십니다. 믿음 나라인 천국의 예루살렘성 성주이자, 개척자이십니다.

또한 자신의 사랑의 피를 뿌려, 믿음의 왕국을 여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모르면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신앙의 첫걸음도 내디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뿌리이자, 줄기이자, 열매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오늘날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일서 512절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음속에 없는,

사람은 영생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선포하는 복음이요. 진리입니다.

사람이 얼마만큼 착하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진실하냐? 그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착하고 진실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후의 삶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기 전의,

선행은 도토리 키재기일 뿐입니다. 오십보백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님과 생명을 언제나 하나로 묶었습니다. 예수 생명! 예수님을 깊이 생각합시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납시다. 예수님을 향해 우리 시선을 집중시킵시다.

 

어거스틴이 신앙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며 고민하던 때에,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천국 문 앞에 이르렀을 때에 천국의 문지기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어거스틴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내가 보니, 당신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오. 당신 머리속에는 예수님의 말씀은 별로 없고,

철학자 시세로의 사상과 철학으로만 꽉 차 있군요. 당신은 철학자일는지는 모르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니오.“ - 깜짝 놀라 꿈에서 깬 어거스틴은 굳게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렇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답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만 전념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전히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에만 전념하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으로만 충만해지기를 선포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

 

온전한 희망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선포합니다. 오직 십자가를 붙들고 가슴으로 뜨겁게 그 의미를 깨우치는,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기도하는 무릎으로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심령의,

눈을 크게 떠서 주님을 만나 뵙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어떤 이의 글에서 옮겨 봅니다. 예수님의 왕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의 십자가를 진 사람은 적습니다. 그와 함께 기뻐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분을 대신해 슬픔을 당하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빵을 쪼개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따랐으나,

그분이 쓴 잔을 마실 때 그를 따른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가슴 깊이,

가슴 뜨겁게 느끼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찬양 / 주만 바라볼찌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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