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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시리즈 설교

“축복 (2) : 열배나 더 나은 축복을 얻으라!”

작성자김대용|작성시간26.06.18|조회수36 목록 댓글 0

 

+ 제 목 : 축복 (2) : 열배나 더 나은 축복을 얻으라!”

+ 본 문 :    다니엘서 114- 21(구약성경 1231)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18 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

19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21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아멘!

 

서로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지난 시간부터 축복시리즈!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축복인 열배나 더 나은 축복을 얻으라!” 는 말씀으로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날마다의 삶이 순풍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자라면서, 가방을 메고 유치원을 입학하고, 적어도 16년을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해야 할 때,

공부를 마치면 남자들은 군대 가고, 직장 잡아야 하고, 짝을 만나 결혼하기까지 힘들게 살아갑니다.

결혼생활은 쉽습니까? 아기를 낳아 키우고, 교육시켜야 하고, 결혼시켜 살림을 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중년의 위기를 겪게 되고, 넘었는가 싶었더니 노년의 외로움과 병듦이 찾아옵니다.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바람이 잔잔해지면 또 다른 태풍이 밀려옵니다.

혹 지금 인생의 강풍 가운데 있습니까? 도대체 지금 여러분이 겪는 인생의 강풍은 무엇입니까?

이걸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그 강풍 가운데서 흔들리는 여러분의 인생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외면하시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 곁에서 눈물 흘리시며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고난을 홀로 겪지 않습니다. 우리의 한숨 소리를 들으시며, 중보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내 인생의 고난의 강풍 앞에서 우리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달려오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타고 오실 배가 없으면, 우리의 생명이 되신 예수님은, 위를 걸어서라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어쩌면 우리의 위기는 강풍이 위기가 아니라, 강풍 앞에서 내 힘을 의지하는 것이 오히려 위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강풍이 나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할 때,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지금 나를 찾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나의 모든 도움은 예수님께로부터 옵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개인으로서는 도덕성을 잘 유지할 수 있다 해도, 비도덕적인 사회에 들어가면 유지 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인간이 세상이라는 병폐 속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누구나 체험하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순수한 열정으로 세상으로 나가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막상 삶의 현장에 나서면, 세상의 구조적인 문제점들과 인간적인 갈등으로 방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울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포기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렇게 말을 합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며, 손바닥으로 거센 강물을 막는 초라함을 느끼게 된다고 말입니다.

하기야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한계를 느끼며, 힘들고 못해먹겠다고 하는 세상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믿음은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해진미로 가득한, 소위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채식을 고집했던 것입니다.

우상에게 드려진 왕의 식물을 거절한 것은, 하나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그리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세상을 거꾸로 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세상을 사는 것 같았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오히려 성공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 방법은 절대 유효합니다. 거꾸로 산 예수쟁이들이 결국은 성공자가 된 간증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결코 만만한 세상이 아니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하나님만 섬김으로, 십 배나 더 나은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열배나 더 받아야 할 첫째는, 믿음의 축복입니다.

 

사실은 오늘 본문 말씀은 다니엘 1장 전체가 본문이어야 하는데, 끝부분만 봉독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이 뜻을 정하였다는 말은 마음을 결정하였다는 뜻입니다. 마음은 전인격을 의미하기 때문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들의 전인격을 다해,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와 순종을 결단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의 음식들이, 레위기 112- 8절 말씀의 율법의 음식 규례에,

어긋나는 부정한 동물의 고기, 또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단을 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유다 왕 여호야김 3년에 바벨론 1차 침입 때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 중 일원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인물이 뛰어나고 지식이 많아서, 일종의 특혜를 받아 바벨론 왕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만일 다니엘이 개인의 명예와 부귀영화에만 집착했다면, 출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의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오직 여호와 신앙이 투철했기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과감히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다는 순교적인 결단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생각과 결단이었습니다.

 

한 교회의 집사님 부부가, 부부동반을 해서 갑자기 지방에 다녀올 일이 생겼습니다.

그 부부는 다섯 살짜리 아들을 누구한테 맡길까 고민하다가, 목사님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다섯 살짜리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기 전에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오셨으니,

기도를 부탁해 볼까? 얘야, 네가 식사기도를 하면 어떻겠니?" 하고 목사님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물음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모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평소에 엄마가 하시던 대로 하면 돼. 간단하게." 그랬더니 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 이 돼지 같은 놈아! 좀 가만히 앉아 처먹지 못해!" 목사님 부부가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답니다.

 

여러분! 가정은 믿음을 세우는 곳입니다. 사람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곳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어딜까요? 바로 식탁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559장은 찬양합니다.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온 가족이 모인 식탁이 살아있는 가정이, 바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비록 음식의 종류가 많지 않아도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다면, 그 식탁은 풍성한 식탁입니다.

그곳에서 사랑과 말씀이 담긴 대화가 오고 간다면, 그 식탁은 주님이 함께 하는 천국의 식탁입니다.

우리들의 가정 식탁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고, 경험되는 곳이라면 영적으로 풍성한 식탁입니다.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풍성한 식탁이 있는 그곳이 바로 한간의 초가일지라도 낙원입니다.

 

다니엘은 어려서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믿음의 철저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받고 성장하였기에, 그 어떤 세상 유혹과도 타협하지 않는,

믿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바벨론 같은 영적 유혹이 있는 세상이지만,

다니엘처럼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자녀들을 교육하여, 믿음 충만한 성도와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와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열 배의 믿음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 열배나 더 받아야 할 두 번째는, 얼굴의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아멘!

 

다니엘과 세 친구는 열흘 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만을 먹고 물만 마셨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소년들은 왕의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열흘 후에 비교해 보니,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바벨론의 소년들보다 더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좋아보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 짓지 않기 위해서, 신앙에 목숨을 건 다니엘과 세 친구의 승리하였습니다.

특별히 얼굴이란? 단지 신체의 일부분에 속하는, 겉으로 보이는 얼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외적인 전체 모습을 포함합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온 몸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은, 궁극적으로 건강하고 존귀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얼굴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삶 전체가 아름답고 윤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망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스크루지 영감과 같습니다.

심술궂은 스크루지는 만나는 모든 사람과 물건을 이용해 한 푼이라도 더 쥐어짜내려고만 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가지는 야망이라는 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망하게 하는 나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어주는 야망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품거나 마귀가 품게 하는 것은 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야망을 실천하며 사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습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야망이 하나님의 섭리와 일치하는 삶은 풍요로우며, 야망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야망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찾으면, 올바른 마음과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야망 중에서, 재고해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야망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마귀에게서 왔는지 냉정하고 솔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가정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추구하고 있는 야망들을 분명하게 검토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우리의 욕심과 야망 때문에,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되는 하나님과 신앙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더러운 우상을 섬기게 되고, 교만하게 됩니다.

저주와 멸망의 삶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과 신앙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 는 신앙고백을 하였던 여호수아처럼 당당하게,

오직 믿음으로만 살면, 저와 여러분이 소원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복을 주십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상황 속에서 생명을 걸고 채소를 먹고 물을 마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얼굴과 건강과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2026년 올해도 하나님께서 열 배나 더 나은 아름다움과 윤택함의 복을 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 열배나 더 받아야 할 세 번째는, 지혜의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아멘!

 

지혜와 총명은 개인의 지혜를 말하기보다, 국정 전반의 지식이나 판단 능력을 의미합니다.

박수와 술객은 마술사나 점성술사를 말하는데, 바벨론 국정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지혜자들입니다.

'십 배' 는 박수와 술객에 비교하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지혜가 더 탁월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가진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이기 때문에, 세상 지혜보다 탁월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 해결할 수 있는 응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상적인 지혜를 가리켜, 잠시 있다가 없어질 관원의 지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없어지지 아니할 지혜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헬라인들이 아무리 지혜를 추구했어도, 십자가의 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고전 1:25)

그래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지혜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떠난 지혜는 없습니다. 미련과 멸망과 지옥입니다. 하나님만 신뢰함이 지혜이고 축복입니다.

 

린다 밀로우의 만족이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엘라는 아이들과 함께 남편을 따라, 52년 동안 아프리카의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친숙했던 모든 것과 고향, 친구들을 떠났습니다. 아프리카 시골의 타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전기, 에어컨, 현대식 편의 시설들은,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난 그녀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습니다.

어떤 날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더워서, 온도계를 실내로 들여와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섭씨 49도를 넘기면 온도계가 고장이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평한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엘라는 땀방울이 몸을 타고 흐르며, 곰팡내 나는 습한 공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엘라의 딸 미미는 어머니의 낡은 일기장에서 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첫째로, 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 심지어 무더운 날씨조차도, 나는 불평하지 않겠다.

둘째로, 여기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환경이나, 다른 장소에 있는 나의 모습을 그리지 않겠다.

셋째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거나 하는 일에 대한 나의 몫을,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겠다.

넷째로, '이것 혹은 저것이 지금과 조금 달랐더라면' 라고도 가정하여 비교하지도 않겠다.

다섯 번째로, '내일' 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내게 속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

 

비밀은 그녀의 다섯 째 말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을 영원에 고정돼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라봤습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모든 미래는,

하나님의 강하신 팔 안에 든든히 놓여 있기 때문에, 힘든 오늘의 삶에서도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엘라는 아프리카 선교사로서 영원에 집중했고, 그것이 그녀를 내적인 만족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에게 나의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진짜 지혜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이나 세상이나 그밖에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므로,

십 배나 나은 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십 배나 더 나은 지혜와,

축복을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지혜와 축복을 받기 원하신다면,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위험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오직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신뢰합시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고 부러워하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신뢰하므로,

열배나 더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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