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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강해설교

잠언서 강해 (51) / "미련한 사람 되지 말라."

작성자김대용|작성시간25.10.19|조회수57 목록 댓글 0

 

+ 제 목 : 잠언서 강해 (51) / "미련한 사람 되지 말라."

+ 본 문 : 잠 언 261- 12(구약성경 p.940)

 

  1.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4.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5.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6.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7.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8.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10.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아멘!

 

+ 서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 찬양하겠습니다. /

 

오늘은 미련한 사람되지 말라.”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잠언에서는, 미련한 사람이란 말을 열두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사람이란? 지혜를 저장하지 않아 지혜가 바닥난 사람을 두고 한 말합니다.

오늘 저는 우리 중에 아무도 여기에 해당하는 분이 없기를 바라고 설교할 것입니다.

아니 우리 중에는 이런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여기고, 지금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본문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니, 이런 사람은 주님도 포기한 사람이 아닐까?

왜냐하면 잠언은 미련함과 게으름을 같이 놓고, 그가 악인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사람은 반드시 망하는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라가 아니라, 이런 미련한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런 사람을 만나면 무슨 대답을 하기도 조심하라. 무슨 소식을 전해주는 것도 조심하라.

무슨 칭찬을 해주기도 조심하라.“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하게 경고한 것은,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 보면, 이런 사람은 절대로 고용도 하지 말라.” 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결혼 전이라면, 이런 사람과 만나 혹 결혼이나 사업을 하지 말며,

이렇게 되지도 말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런 사람을 가까이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너무 흔합니다.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굴까요? 이렇게 정리하면 됩니다. 내면의 성숙이 안 된 사람입니다.

성숙하기를 스스로 멈춘 사람입니다. 내면이 성숙한 어른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아요.

말하고 생각하는 것,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아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어릴 때 어떤 훈육도 없었고, 어른이 돼서도 누군가의 훈육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로 말하자면, 마음 밭이 길가처럼 단단한 밭이요.

땅속에 바위와 자갈이 가득한 밭이요. 가시덤불로 완전히 덮여버린 쓸모없는 밭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 밖에 있습니다만, 어떤 경우에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네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모두 성경에 있는 사람들,

에서, 사울, 나발, 아합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차단합니다. 자기성찰을 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자기성찰을 스스로 차단합니다. 저는 그래서 오늘 이 말씀, 미련한 인생을 두 가지로,

정리해서 전하려고 합니다. 그는 어떤 기회도 차단합니다. 그는 어떤 성찰도 거부합니다.

할 시간도 있고 기회도 있는데, 본인이 안합니다. 아니 어쩌면 하려고 했는데 미룹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기회를 놓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에서 결국 멀어집니다.

 

첫째로, 이렇게 미련한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기회도 차단해 버립니다.

 

오늘 본문 2- 10절까지 봉독하겠습니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너는 서둘러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서,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아멘!

 

미련한 사람은 내면이 어린아이와 같아요. 성숙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합니다.

그래서 가장 문제가 뭔가요? 그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말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숙한가? 미숙한가? 그 차이는 그 입에서 나오는 말로 결정이 됩니다.

미련한 사람은 미숙한 어린아이처럼, 입만 열면 부적절하고 이상한 말을 하는 겁니다.

상황에도 안 맞는 말, 경우에 합당하지 않은 말, 누가 들어도 뭐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람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1절 말씀에 미련한,

사람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영예는 존경입니다.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서 설득이 되고 이해가 되고 존경이 되면, 그분을 신뢰하고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예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은 영예가 어울리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미련한 사람의 말은 그때, 그 상황에 전혀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잠언은 비유법을 많이 씁니다. 한여름에 눈 오는 게 안 어울리는 것처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이 안 어울리는 것처럼, 미련한 사람들은 너무너무 이상한 말을 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2절부터 10절까지 계속 읽어보면,

문제가 다 말입니다. 모두 다 그 미련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이상한 말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미련한 사람은 어떻게 말해요? 까닭 없는 저주라고 했습니다.

맥락도 없이 갑자기 사람들을 비난합니다. 욕하고, 짜증내고, 혼내고 그래요.

? 이 상황에서 이렇게 신경질을 내지? 듣는 사람이 놀라고 당황하는 겁니다.

이렇게 심한 말을 할 상황이 전혀 아닌, 입에서 독하고 심한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엄마가 자녀를 혼내는데 앞뒤도 안 맞고, 혼낼 상황도 아닌데 마구 아이를 잡아요.

이게 까닭 없는 저주입니다. 이런 부모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기도 왜 그런지 몰라요.

아무튼 이유 없이 화를 많이 냅니다. 오늘 엄마가 왜 이러는지 아이들은 당황합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아빠하고 싸웠나? 엄마가 집에 오시더니 다짜고짜 해댑니다.

왜 숙제 안하니? 게임은 왜 하니? 너희들 때문에 엄마가 속 터져 못살겠어!”

이때 아이들은 죄책감과 노여움이 쌓입니다. 2절 보면, 참새가 떠도는 것 같고,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엄마는 왜 그럴까요? 어린 시절부터 쌓인,

분노와 서러움, 그런데 이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방치했어요. 내면이 성숙할,

기회를 차단하면, 아무데서나 분노가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말이 적당하지 않고 이상해요.

 

오늘 본문 4절과 5절입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이 미련한 사람에게는 무슨 대답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미련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할 때, 대답 한번만 잘못하면,

너 왜 그렇게 얘기해? 내가 무슨 문제가 있다고 그래?” 곧바로 전쟁발발이 됩니다.

그러므로 웬만하면 대답하지 말라는 겁니다. 6절에서는 미련한 사람에게 무슨 소식,

전해줄 때도 조심하고, 무슨 소식을 전해주도록 부탁하는 것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6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미련한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도록 부탁하는 것은, 내 발목을 자르는 것과 같답니다.

폭력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왜요? 이 사람이 소식을 전하면 항상 오해가 발생합니다.

자칫 이간질이 되고, 폭력상황도 벌어지므로 미련한 사람과 대화를 오래하면 손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내면이 성장할 모든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은 어린아이 수준입니다. 어린아이는 맥락을 짚어서 말하는 실력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온다고 말입니다.

결국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의 수준이, 곧 우리 속 사람인 인격의 수준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속 사람은 어릴 적에 자라면서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예민하고, 그 부분만 건드리면 아파하고, 서러워하고, 무서워하고, 견딜 수가 없어 합니다.

그런데 이 내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을 자기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은 교육도 받고, 훈육도 받고, 담도 받고, 사랑도 받아서 자기 내면을,

정돈시켜 성숙해야 합니다. 나이만 먹으면 그 내면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되겠지, 하겠지만, 아닙니다. 그냥 치유가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 오늘 진단해보세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떤 수준인가?

이거 안 배우고, 훈련하지 않고, 그때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말이 흘러나올 수 있을까요?

나이 먹으면 그냥 존경받는 말을 하는 어른이 될까요? 에서는 이삭의 장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권과 장자권을 무시했습니다. 그까짓 하나님의 복 받아서 뭐해?

나발은 자기 소유로 다윗왕의 최측근이 될 수 있었는데, 미련한 말로 하나님의 종,

다윗을 사정없이 문전박대 멸시합니다. 사울은 당대 최고의 선지자 사무엘이 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황금 같은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미련한 인생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미련한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기회도 차단해 버립니다.

 

둘째로, 이렇게 미련한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성찰도 거부해 버립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미련한 인생이 왜 답이 없습니까?

그가 사는 모습이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똑같이 그 미련한 일을 되풀이 합니다.

왜요? 자기 성찰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다퉜어요. 저 사람이 왜 내게 화를 냈지? 아 내가 약속에 늦어서 그렇구나.

다음엔 약속시간 정시에 지켜야지 미련한 사람은 이 성찰이 없어요. 화를 낸 사람도,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지? 저 사람이 늦었을 때 반겨주는 너그러움이 없었구나!

저번에도 화냈는데 이번에 또 화를 냈네, 그래 다음번에는 늦어도 그냥 어서와,

이렇게 말해야지, 난 온유함과 너그러움이 부족하구나.“ 이 성찰이 없는 겁입니다.

 

무책임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무책임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가는 것입니다.

언제 성찰을 시작해야 할까요? 인생에서 무책임으로 큰 사고 나기 전에 시작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너 무책임해!” 라는 비난을 들으면 왜 나만 갖고 그래?”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찰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는 정말 많이 봐줍니다. 하지만 직장가면,

봐주는 법 없습니다. 사정없이 혼나거나 짤립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핑계대고 이리저리, 둘러대는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그것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늘 핑계대로 둘러대는 사람은,

예전부터 그 말을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자기성찰을 안하면, 그 상황만 모면하려 합니다.

 

그래서 미련한 사람은 자기성찰을 안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과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 사람이 교회를 다닙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녀도 성찰이 없으면 진정한 회개를 할까요?

못합니다. 자기성찰이 없다는 것은, 내가 무슨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찰이 없는 사람은, 혹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도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는 말은 너무 늦었다는 속담입니다만, 저는 이렇게 봅니다.

소 한 마리 잃고 외양간 고치면, 그 사람 정말 잘한 겁니다. 대부분 소를 잃고도,

외양간 안 고쳐요. 그래서 미련한 인생은 소 잃고 외양간 안 고치고 계속 소를 잃어요.

 

생각해보면 사울 왕, 아합 왕은 참 딱한 사람들입니다. 사울에게는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있었고, 아합 왕에게도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그 곁에 오래 있었습니다.

여러분 곁에 사무엘이나 엘리야가, 여러분 인생 멘토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일 하나님의 지혜와 옳은 길을 알려 줄텐데, 그러면 여러분 내면과 영혼이 잘 될텐데!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 사도를 만납니다. 삭개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고넬료의 멘토에 대한 갈망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만나게 하십니다.

삭개오의 멘통에 대한 갈망을 보시고,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 그의 집에 유하십니다.

인생에 성장할 기회를 찾기 원하신다면, 이런 갈망의 기도를 시작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내게 길을 보여주세요. 주님! 내 자녀들에게 인생의 참 스승 - 멘토를 만나게,

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성장할 기회, 내 자녀들이 성장할 기회를 주님이 주십니다.

 

그런데 딱한 상황이 오늘 본문 12절에 나옵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자신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해요?

나는 지혜롭게 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에는, 자기 주변사람들이 모두 어리석어요.

자기 판단이 최고에요. 내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내가 어리석을까? 아니야 없어!

그럴 가능성은 없어. 나같이 상황에 적절하고, 사리에 맞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혹 일을 잘못하거나 말을 잘못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리면, 그 사람 주변에,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함께 생각하고 나누었던 잠언 본문이 뭐라고 우리를 가르치십니까?

이런 사람을 보면 가능하면 멀리해라! 이런 사람에게는 대답도, 대응도 조심해라.

무슨 소식을 전해줄 때도 조심하고, 무슨 소식을 전하는 부탁도 조심해라. 왜요?

어떤 상황도 일을 그르치니까. 어떤 상황도 결국 다툼이나 갈등으로 이어지니까.“

 

저는 살면서 두 가지 아이러니를 발견합니다. 첫째 아이러니는 이겁니다.

사람들은 어릴 적 가정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미숙 때문입니다.

부모로 인하여 자녀들이 받는 상처는 사실상 너무나 많을 정도입니다. 이중성, 방치,

차별, 이랬다저랬다 함, 무원칙, 무관심, 무대응, 폭언, 폭력, 고집, 강압, 등 너무 많습니다.

울면서 하소연을 합니다. 아프고 힘들어요. 우리 엄마가 조금만 지혜롭고 성숙했다면!”

너무 너무 아쉬워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모의 미숙함으로 힘들었다고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미숙한 그대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자기 문제가 무엇인지를,

성찰하며 고치고 변화되어 성숙하게 살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부모의 미숙함을,

뼈아프게 겪었다는 것을 알면서, 본인은 지금 미숙한 상태 그대로 머물러 사는 것입니다.

 

둘째 아이러니는 이겁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상처를 받습니다.

먼저 믿은 교인들이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 중직자들의 미숙한 모습에 시험 듭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사실은 그래요.

교회 안에 위선, 맹신, 광신, 비합리적 강요, 이중성, 등 너무 많습니다.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비난합니다. 그리고 떠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미숙한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왜 이러냐고 괴로워하면서, 정작 본인도 그 상태에 있는 겁니다.

교회 안에 있어도 제대로 신앙을 배우지 않아요. 숙한 신앙 그대로, 누군가를 섬기는,

그 일에 낯설고 미숙한 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뭡니까? 내가 부모인데 성숙을,

멈추고 미숙한 수준으로 있으면, 내 자녀들에게 원치 않는 상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교회를 다니는데, 신앙성숙을 멈추고 내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처럼 그냥 있으면,

내 뒤에 오는 교회 안의 후배들에게, 내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저는 미련한 사람의 두 가지 문제를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교회에,

한 명도 없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배울 기회가 있으면 붙잡고,

자기 성찰을 시작하시면 됩니다. 사울과 아합은 사무엘과 엘리야가 곁에 있었지만,

배울 기회, 깨달을 기회, 변화될 기회, 성숙할 기회를 차단합니다. 멀리 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런 사울의 집, 아합의 집을 끊어버리셨습니다. 사울은 시기와 열등감,

문제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거부하고 이세벨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세요. 오늘 이 잠언, 이 말씀을 붙들고 애썼다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미련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기회를 차단하고 모든 성찰을 차단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돌아서서 다시 시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기 우리부터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철저하게 자기 성찰을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두모두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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