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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설교말씀

"눈을 높이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라!"

작성자김대용|작성시간26.06.21|조회수56 목록 댓글 0

 

+ 제 목 :  "눈을 높이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라!"

+ 본 문 :   이사야 4025- 31(구약 1014)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우리는 매일매일 밝고, 기쁘고, 즐겁고, 기분 좋은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살이가 우리를 그렇게 밝고, 기쁘고, 즐겁고, 기분 좋은 하루가,

되도록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안팎으로 들리는 소식은 답답한 이야기들뿐입니다.

정치소식도, 경제소식도, 무섭게 들려오는 전쟁의 소식도 모두모두 살벌합니다.

그래서인지 자연히 기분도 우울해지고, 말하기도 싫고, 사람 만나기도 싫고,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텔레비전 뉴스 보기가 싫고, 어쩌다보면 짜증이 납니다.

세상이 하 어수선하니 성경 보기도 싫고, 엎드려 보지만 기도마저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내가 이 정도 수준인가? 자신에게까지 실망이 됩니다.

신앙생활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나라는 사람이 이 정도 수준 밖에 안 되나?

나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 탓, 정치인 탓이나 하고 있는 내가 싫은 것입니다.

그럴 때면 저는 시편 말씀을 읽습니다. 시편을 읽다보면, 거기에는 나보다 몇 십 배,

더 답답한 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참 많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답답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면서 탄식하고,

한숨 쉬고, 신음소리를 토해 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어려움을 딛고,

우뚝 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거기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기록한 선지자는 이사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답답함과 어려움,

가운데서 몸부림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젊은이들은 포로로 끌려가 노예로, 첩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1, 10, 20, 세월이 지나면서, 깊은 패배와 절망 가운데 서 있게 됩니다.

몸부림치며 민족의 해방을 기다렸습니다. 러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끝났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낙담합니다. 더 이상 기도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27절 말씀은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 ”이제는 더 이상 안 된다, 이제는 끝났다.

하나님은 내 사정은 몰라주신다. 이렇게 원통한 일이 쌓여 가는데도 하나님도,

알아주시지 않으신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깊은 실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며, 말씀을 전하는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마저도, 이대로 이 민족의 역사는 접어야 한다는 깊은 실망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이사야 40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노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이 사함받았느니라.”

사랑하는 자녀가 아파 울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찢어지겠습니까?

쓰러져 있는 하나님의 종, 실망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네가 어찌하여” “네가 어찌하여”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 자녀 된 백성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안타까워하시는 부르짖음입니다.(40:21,28)

그러나 절망 가운데 힘들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자신들이 당한 문제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먼저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하지,

아니하시며, 곤비하지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시며,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분이시다.“ 아멘! 여러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영원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밀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힘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날마다 힘을 주시는 하나님!” 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어 걸어가고, 달려가고, 상한 날개를 치유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알려주시면서, 계속해서 강조해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6절입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것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창조 신앙 입니다. 구속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하나님 백성으로 부르시며, 돌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의 나의 주인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이요.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는 주인 됨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힘을 더하여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새 힘을 공급하사, 우리를 치유하시고,

일으켜 세우시고, 걷게 하시고, 날게 하시고, 지치고 쓰러지지 않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너희는 내 백성이라.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내가 너희를 위해 내 아들을 보내리라. 그는 네가 범한 모든 죄악을 담당하실 것이며,

너희의 아픔을 다 짊어지고, 그가 대신 징벌을 받을 것이니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 “너는 나를 버려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너는 나를 잊어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내 아들이라.“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모습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 “하나님을,

기다리라!” “야웨 하나님을 바라라!“ 이렇게 우리에게 힘주시는 하나님을 앙망하고,

간절히 바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렇게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너희가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설 수 있다면, 너희는 서게 되리라.“

내가 너를 돕기 위해 다 준비되었다. 그러므로 너는 나를 바라보아라!” 아멘입니까?

하나님은 간절하게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을 찾으며 삽시다.

 

이사야 선지자는 청명한 가을 하늘을 훠이 훠이 날갯짓하며 비상하는,

독수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힘을 잃고 절망 가운데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31절 말씀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은 창공을 날아오르는, 독수리와 같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은 성령님께서 일으키시는 성령의 바람을 타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은 성령님께서 일으키시는 영적 파도를 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은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의 눈을 성령으로 불타고 있어, 그의 가슴은 뜨겁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의 심장에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열망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강한 용사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예배의 자리에 나왔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 앞에서 기운찬 영혼의 소유자들로,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는 삶이 되기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결심해야 할 것이,

있다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날아오르기 비상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풀어 버리라!”

벗어 버리라!” 무엇을 풀어버리고, 무엇을 벗어버려야 합니까? 패배주의입니다.

불신앙입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사주팔자 따지는 운명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이것들을 떨쳐 내버려야만 우리는 높이 높이 비상할 수 있습니다. 패배주의, 불신앙,

부정적인 사고방식, 사주팔자, 운명론적인 사고방식, 이런 것들에게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결단코 창공을 비상하는 독수리와 같은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런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대해 말씀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앙망하므로 높이높이 비상하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불신앙을 벗어버리고, 죄의 쇠사슬을 풀어버리며, 부정적인 생각도 던져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앙망하므로 높이 높이 비상하는 멋진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단순히 벗어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덧입어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28절입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아멘! 그렇습니다. 풀어버려야 할 것, 벗어버려야 할 것도 있지만,

반드시 덧입어야 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옷이 있습니다. 아무리 답답해도,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이 신뢰와 믿음의 옷을 입고 설 것을 성경은 요청합니다.

암담한 상황 가운데서도 이사야는, 지금 믿음의 옷을 입고 일어나 굳건히 서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 확신이 그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절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한다는 약속을 믿고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부르고 의지하면, 비록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나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믿음이 그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비록 형편은 어려웠지만 찬송합니다. 나는 지금 상황이 어려워도,

살아 계신 나의 하나님 때문에 찬송하며 살리라.“ - 그는 찬송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가 어려울 때도 신뢰와 믿음으로 옷 입고 산다면,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어도 찬송의 옷을 입고 살아가면 반드시 승리할 줄 믿습니다.

 

어떤 신앙 좋은 집사님이 혼자 등산갔다가 실종하여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다가 천만다행으로 벼랑에 있는 나무줄기 하나를 겨우 잡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나뭇가지를 붙잡았지만, 5, 10분이 지나면서 손에 힘이 빠집니다.

위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구해주기를 기다리다가,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 살려! 그 위에 누가 없나요?” 그러나 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위에 누가 없나요? 나 좀 끌어 올려 주세요.”

계속 소리를 질러 기진맥진해 질 즈음에, 희미한 소리가 벼랑 끝에서 들려왔습니다.

내가 위에 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다. 나는 지금 네가,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감격한 그 집사님은 오 하나님 제가,

얼마나 충성해 왔는지 아시죠? 저를 구해주십시오.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네가 살고 싶으냐? 내 말대로 하면 살 수 있다. 내게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느냐?”

하나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씀만 하시면,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손을 놓아라.” 깜짝 놀란 김 집사는,

안 됩니다. 이것을 놓으면 죽습니다.” “나만 믿고 그 손을 놓아라. 그러면 살 것이다.”

이때 집사님은 위를 향해 다시 소리칩니다. 그 위에 하나님 말고 다른 분은 없나요?”

견디다 못한 집사님, 결국 손에 힘이 빠져 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고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떨어졌는데, 1m 밑이 바로 바닥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어려운 때도 신뢰와 믿음의 옷을 입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신뢰와 믿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의 좋으신,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확신한다면, 어려움의 한가운데서도 찬송의 옷을 입고 삽시다.

그렇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초점 맞추기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은,

일어설 수 있습니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면 반드시 일어설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여호와 앙망의 삶을 사는 자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31절 말씀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선포하신 말씀, 하나님의 회복과 부흥을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일어서게 하시고,

날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상한 날개로는 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습니다.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 영혼의 소유자로 일어서도록,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십니다.

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해 주시는 나의 상한 날개가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지금 하나님 앞에 그것들을 열거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내려 놓으십시오.

여호와 라파!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아무리 상한 심령, 상한 가정, 상한 인생,

상한 몸이라도 이 시간 나는 너를 치유하겠노라!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도 나는 너를,

치유하여 독수리 같이 훠이훠이 날아오르는 강건함을 주노라!“ 할렐루야! 믿습니까?

 

미국의 가스펠송 가수인 피터 빌흔이라는 사람이 아이오와주에 있는 포트 메디슨,

교도소에서 전도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날개가 상한 새는 날 수 없다.“ ,

찬양을 불렀습니다. 집회를 마친 후 젊은 죄수 한사람이 울먹이면서 물었습니다.

날개가 상한 새는 영영히 날 수 없는 것입니까?” 슬픈 얼굴로 묻는 청년의 질문에,

뭐라도 적당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아무 대답도 못해주고 떠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그의 질문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날개가 상한 새는 다시 날 수가,

없습니까?“ 하면서 슬퍼하던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며 노래를 다시 지었습니다.

그가 그때 작곡한 노래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로 가면 어떤 죄도 용서받게 됩니다.

예수님께 맡기면 실패한 과거도 새롭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에 그대를 맡기십시오.

그대의 날개는 다시 새로워지고, 높이 높이 푸른 하늘을 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는 옛날의 노래는 부르지 않고, 이 찬양만을 불렀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뉴욕 YMCA의 한 행사에서 그 노래를 다시 불렀습니다. 행사가 마친 후,

미군 대령 한사람이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20년 전에 상한 날개를 치유하면 다시,

날 수 있다는 당신의 찬양을 듣고 새사람이 된, 바로 그 사람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상한 날개로는 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한 날개를 치유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날개를 치유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 말씀하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여러분! 살다보면 내가 만난 고난의 통증은 하나님도 모르실거야.” 할 정도로,

극한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온 몸의 힘은 바닥을 드러 낼 때,

갑자기 내 자신의 심장이 멈춘 듯 하며, 정신은 혼미해지고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참을 수 있습니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통증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하심은, 하루가 천년 같은 삶의 무게로 우리를 누릅니다.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력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더 나빠지고,

하나님은 찾을수록 더 멀리 숨어 계시는 듯합니다. 이제까지 그래도 버티고m

기다린 것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외면하시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 흔들립니다. 기도도 잘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연단이라고 말합니다.

크고 귀하게 쓰실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그 말에 조금도 힘이 되지 않습니다.

안 쓰셔도 좋으니 제발 고난의 무게와 통증의 깊이를 가볍게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지금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내일은 나아지고 달라지고 좋아진다는 확신만 있다면,

얼마든지 견디고 기쁘게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미래와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길은 다 열리는데 나의 길만 닫힐 때, 차마 소리 못 내고 울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되는데 나만 안 될 때, 다른 사람들은 다 건강한데 나만 아플 때,

다른 사람들은 다 풀리는데, 나만 묶일 때 우리는 극도의 혼란과 절망에 잠기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포로공동체를 품고 말씀을 전하다가 쓰러져 있는,

하나님의 종 이사야가 그러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오늘 절망 가운데 둘러 싸여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아픔 안다. 그 아픔 가운데서 나를 앙망하라.” 여러분! 앙망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바다는 넓고 풍랑은 일어나는데 나의 배가 너무 작습니까? 험한 세상을,

날갯짓 해가기에는 날개가 너무 작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앙망하고,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 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아멘! 아멘!(123:1-3).

 

주님,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는, 아무리 뛰어도 고단치 않는 힘을 주소서!

우리에게! 거듭 거듭 태어나게 사랑으로 태어나게 축복하소서. 주님을 섬기는,

우리 생애가 싱싱한 기쁨의 축제로 피어날 젊고 날랜 슬기, 닳지 않는 새 힘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기운찬 영혼의 소유자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바로 이 마음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우뚝 서있는 사람은,

독수리와 같이 기운찬 영혼의 소유자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한 가지,

바로 이 결심을 굳게 하시고, 이 예배를 마치는 시간 이 전을 나가셔야 합니다.

하나님! 이제 하나님만을 앙망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높이 날아오르는,

영혼의 소유자로 살아가겠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나의 상처 입은 날개가 아니라,

치유 받고, 새 힘 얻어, 높이높이 날아오르는 영혼의 소유자로 살아가겠습니다.“

 

+ 찬양합시다. /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 자국 난 그 손길 눈물 닦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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