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으로 들어서던 어느날,덜컥 병마가 찾아들어서 그 병상의 심연에서 잠못이루던 한 밤중에...........
한가지 호기심이 자꾸 고개를 쳐들고 밀려들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야? 하나님이 예수님이야???? 그 얼굴 한번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덮는이불을 두손으로 얼굴위로 올려들고 간이 저리게 "잠이들면, 그 얼굴 한번 보여주세요, 그러면 내가 믿겠나이다." 라고 기도하며 잠이들었다.........
이윽고 잿빛옷을 입고 오르막길을 따라가는 몇사람들과 맨앞에, 뒷따르는 사람들과는 키가 머리하나정도는 더있는 노오란 통옷을 입은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노오란 통옷을 입은 사람이 그 얼굴을 내게 돌리는 순간, 저 동쪽끝의 산맥들이 그분의 시야속으로 손쌀같은 속도로 클로즈 업되고, 어느덧,산 정상에 그는 서 있었다, 창공이 예배를 위해 잠시, 멈추는듯 하는 순간.....
온몸이 전율감에 떨며, 난생 처음으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 일깨워 느껴졌다. 무릎을 꿇고 올려보았을때, 그의 얼굴은 사랑과 공의와 심판을 함축한듯 완벽하고 아름다웠으며, 그의 눈은 인간의 모든 근심과 공포를 사르는 빛이었고, 피부는 수세기동안 싱싱한 백장미 꽃잎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일찍이 알수 없었던 영광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시인 괴테는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에서 많은 여건에서 복잡한 세상에서 사물을 통해서 뭔가를 배울수 있다. 그러나 영감은 고독에서만 배울 수 있다." 그렇습니다, 고독과 외로움이 없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꿈은 꿈이요, 비몽사몽간의 희한한 체험이어서 였을까?......여전히 담배는 끊지 못하고 5년의 시간이 흐른뒤 .........
은행 본점 심사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각지점으로부터 30대계열 여신계수보고를 받던날 사무실 의자에 앉았는데, 불현듯 저 기억의 창을 뚫고 출몰하려하고 있는 흙갈색의 얼굴이 있었다....
마침내 신이라 불릴만한 그 얼굴이 내 두뇌를 점유하는 순간 잠시동안 몰아지경의 경지에서 난 굉장한 행복감에 젖었다......
당시 즐겨읽었던 책이 인도의 신비가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것으로부터의 자유>,<자기로부터의 혁명> 등 이었는데.....
나에게는 굉장히 현학적으로 들렸으며 두번의 체험과 함께 담배마저 끊어버리게한 집중에대한 그의 정의를 다시한번 들어보면:
"집중(력)이란,자기의 정신적,심정적 육체적 총력을 기울여서 버릇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한 아주머니가 어린아이 손을 잡고 간디선생님을 방문했습니다... "선생님, 애가 사탕을 워낙 좋아해서 이빨이 다 썩었습니다,
애가 사탕을 먹지않도록 따끔한 말씀이라도 한마디 해주세요." 그래서, 간디선생님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는데..... 일주일뒤에 다시 간디선생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지난번에 어떻게 말씀하셨기에, 애가 여전히 사탕을 입에서 놓지를 않습니까?"
간디선생님이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도 일주일전까지는 단것을 좋아했거든요? 자,이젠, 제가 단것을 끊었습니다. 저 아이도 이젠 사탕을 먹지않을 것입니다, 안심하시고 돌아가십시요.".....
마찬가지로, 우리 주산샘 모두가 집중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여러분 집중하십시요."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네거티브 티칭(negative teaching)은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심을 하였건만 작심3일에 그치면서, 중.장년의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제 주산샘으로 저 교단에 서게되는데 우리새싹들에게 본이 되도록 못된 습관 끊어버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에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