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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68. 출 29:1-14 제사장 위임(1)

작성자김영대|작성시간26.06.17|조회수28 목록 댓글 0

https://youtu.be/f2VHcHMCuhY?si=L813bjEzEI60aeG1

 

 

출애굽기 강론 68강

출애굽기 29:1-14

제사장 위임(1)

 

제사장의 옷에 대하여 모든 세부 사항이 계시된 후,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라는 위임식 제사에 대한 말씀이 주어진다. 1-9절은 위임제를 위한 준비, 10-14절은 속죄제의 수소, 15-18절은 번제의 숫양, 19-37절은 화목 제물로 바쳐진 위임제의 숫양에 대한 말씀이다. 제사장 위임제는 레위기 8-9장에서 또 자세하게 묘사된다.

“1 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2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3 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라”(1-3절).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1절)라고 번역한 ‘카한’은 ‘코헨’(제사장, 우두머리 통치자)에서 유래하였는데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다, 제사장으로 섬기다’라는 뜻이다. 즉 제사를 통해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린 수송아지”(1절)는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자들을 위한 속죄제를 위한 제물이고, “숫양 둘”(1절)은 번제와 위임제를 위한 제물이다. “흠 없는”(1절)의 ‘타밈’은 ‘타맘’(왕성하다, 충분하다, 끝마치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완전한, 흠 없는, 건전한, 정상적인, 순결한’이라는 뜻인데 이 땅에 죄가 없는 분으로 언약을 온전히 완성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리고 소제물은 고운 밀가루로 세 종류의 무교병으로 구성된다. 즉 평이하게 화덕에 구운 것, 기름을 섞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것, 구운 후 위에 기름을 발라 만든 것이다. “고운 밀가루”(2절)의 ‘솔레트’는 ‘껍질을 벗긴 곡식 가루’를 의미한다. 즉 죄를 상징하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사람의 계명과 교훈이 섞일 수 없는 순전한 말씀이니 곧 복음을 상징한다. 이것은 껍질을 벗기는 고난을 거치는 것이고 거기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의미이다. 곧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통해 드려지는 것으로 소제물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4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5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정교하게 짠 띠를 띠게 하고 6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거룩한 패를 더하고 7 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4-7절).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4절)라는 표현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스스로 회막 문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지는 직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로 씻기고”(4절)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육이 죽고 살려주심의 은혜를 입은 자가 제사장으로 세워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목욕을 하고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막 문 앞에 데려다가 물로 씻기는 의식을 나타내셨다. 이는 제사장 역시 죄인이기에 말씀으로 씻겨야 할 존재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보여주시는 것이다. 위임식 이후 정례적인 매일의 직무를 위해서는 손발만 씻는다(출 30:19-21).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6-27)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 직무를 맡기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속옷”(기본 예복)과 “겉옷”,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띠”를 띠게 하고 머리에는 “관”을 씌운 후 그 위에 “거룩한 패”를 착용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가운을 입히라는 말이라기보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제사장의 의복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면 아론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고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제사장 에봇에는 판결 흉패가 부착되어 있고 그 주머니에는 우림과 둠밈이 있으니 이는 곧 야훼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 기준은 우림과 둠밈이 보여주듯이 빛이신 하나님께서 온전한 진리의 말씀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판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처음 창조인 육체를 폐하고 새 창조로서 영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옳게 여기고 선하게 여기시는 판결이라는 뜻이다.

“관유”(7절)는 30:22-25에서 그 제조법이 언급된다.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7절)라는 표현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은 제사장의 직분, 즉 기름 부음으로 세워지는 직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기름을 붓는 것은 아래에서 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르고”의 ‘마샤흐’는 ‘기름을 바르다, 기름을 붓다’라는 뜻으로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늘에서 성령의 은혜로 부어지는 기름 부음이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

 

그러므로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는 위임식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을 계시

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머리가 되신다는 뜻이다(엡 1:22, 골 1:18). 또한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영광스러운 교회를 상징한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복이요 영생이라고 선언한다.

 

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8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9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8-9절). 이 말씀은 28:40에서 일반 제사장의 옷을 만들라고 하신 것과 같은 말씀으로 아론의 아들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혀 대제사장이든 일반 제사장이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는 의미이다. “영원한 규례”(9절)가 되게 한다는 것은 영원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는 뜻이다. 그때까지 아론과 그의 아들들, 또한 그의 후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보여주는 계시의 도구로 제사장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정작 진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존재로 제사장이 이어온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권력이 되어 스스로 거룩한 존재로 드러내고 있었다.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마 23:2, 8-10)

 

“10 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할지며 11 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고”(10-11절). 10-14절까지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의 말씀이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속죄제의 제물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10절)한다는 것은 자신을 제물과 일치시키고 하나 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안수함으로 죄를 제물에게 전가하여 그 죽음이 곧 안수한 자의 죽음과 같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제사 제도를 통해 스스로 의인이 되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오늘날 교회 또한 이스라엘의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현실이다. 많은 목사들이 구약의 제사와 오늘날 예배를 동일시하여 마치 자신이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인양 행세한다. 교인들보다 하나님과 더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교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거룩한 존재인 것처럼 드러내고, 목사가 저주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목사를 잘 대접하도록 만든다. 이런 모든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목사만 교인들과 구별된 제사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가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그 피를 네 손가락으로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을지며”(12절). “제단”이란 번제단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희생 제사로 계시한다. 제물의 모든 부분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불에 온전히 타서 재가 되고 연기로 사라진다. 우리의 옛사람은 철저히 하나님의 심판 속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피는 제단 뿔들에 발라지고 제단 밑에 쏟아져서 그 자취를 남긴다. 다시 말해서 죄인이 구원을 얻고 생명을 누리는 것은 순전히 제단 뿔에 발라진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이다.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19-22)

 

“13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 14 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불사르라 이는 속죄제니라”(10-14절). “속죄제”(14절)의 ‘하타트’는 ‘죄, 유죄, 죄의 형벌, 속죄제’라는 뜻이다.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은 번제단에 태운다. 제물의 내장 부분은 짐승에게 살아있음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기에 가장 기름지고 좋은 부위로 칭해진다. 그러기에 사람의 살아있음을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것들로 선하고 훌륭하다고 여기는 인간의 행위를 비유한다. 곧 육의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셔서 육의 것을 모두 태워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으로 속죄제는 완성된다.

그리고 육체로부터 나온 것들, 곧 고기와 가죽과 똥은 진 밖에서 불사른다. 하나님은 죄인의 옛사람, 곧 겉사람을 진 밖으로 내보내어 태우고 버리신다. 이로써 제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 피만이 제단과 그 주위에 제사를 드린 선명한 흔적으로 기억(히, ‘자카르’)된다. 이렇게 함으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속죄제가 드려지지만 동물의 피가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히 10:4).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히 7:11, 26-28)

 

결국 동물의 제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그 죽음 안에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인하는 것이다(20260607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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