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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71. 출 29:38-46 매일의 번제

작성자김영대|작성시간26.06.21|조회수3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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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71강

출애굽기 29:38-46

매일의 번제

 

이제 하나님께서 매일의 번제를 말씀하신다. 이른바 “상번제”(민 28:6)에 대한 말씀이다. 제사를 드리려면 제사장이 필요하다. 직접 제물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도 죽지 않는다. 제사장은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거룩한 존재로 구별되었는가? 제사장 직분은 먼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졌으며 레위인들은 후에 저들을 보조하도록 지시된다. 이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각 가정에서 선출된 맏아들들을 대신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출 13: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 3:12)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인으로 하여금 제사 직무에 종사하게 한 것은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제사직에 참여하는 것이 되었다, 다만 그 사역이 간접적 성격을 띠고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질적으로 모두가 제사장이었다. 또한 이런 점에서 제사장 나라였다. 제사장 나라였다는 것은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이다(출 19:6).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죄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매일의 번제를 말씀하셨다.

“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38절). “매일”의 ‘욤 타미드’는 ‘욤’은 ‘날, 낮’이라는 뜻이고 ‘타미드’는 ‘영속적인, 계속, 매일의, 끊임없이’라는 뜻이다.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를 번제단 위에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의 방법은 39절 이하에서 언급된다.

“39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 40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더할지며 41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39-41절).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바치고 나머지 한 마리를 저녁에 바쳤다. 이때 떡과 포도주를 함께 드렸다.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40절)라고 하였는데 “에바”는 없는 표현이다. 즉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과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이다(“힌”은 약 3.6ℓ정도이다). “고운 밀가루”란 껍질을 벗겨내고 곱게 빻아 가루를 만드는 것이고, “찧은 기름”이란 곡물을 으깨어 짜낸 것으로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즉 십분의 일로 완전한 10의 대표로서 하나와 사분의 일로 넷의 하나는 완전한 진리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언약을 성취하실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곧 소제물 자체도 온전한 진리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죽음으로 언약을 성취하실 것을 보여준다. “전제”(히, ‘네세크’)는 포도주나 기름을 부어 드리는 제사이고, “화제”(히, ‘이셰’)란 표현은 ‘음식 제물 혹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라는 뜻인데 대체적으로 불로 태워서 드렸던 것으로 보인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41절) 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나누었던 말씀처럼 하나님께 편안하고 즐거운 향기란 영으로 드려지는 제사라는 의미이다. 결국 하나님께 영으로 드려지는 제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드러나는 제사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42-43절). 하나님께서 번제단, 곧 ‘미즈베아흐’로 하나님의 죽음의 자리에서 이스라엘과 만나신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번제단은 단순히 이스라엘(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하고 제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제물로 바쳐진 어린 양이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죽음을 걸고 만나신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43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온전히 드러났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영광은 십자가이다. 결국 제사의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다. 창세기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5-9)

 

사람의 죄악이 “항상”(히, ‘콜 욤’) 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항상 악한 상태의 죄인 중에서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가 있었으니 노아였다.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의인이요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었는가?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히셨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니 비로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매일의 번제를 드려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고 제사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한다는 차원이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죄인 됨을 먼저 아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히 10:1-7)

 

이 말씀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씀한다.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날마다 동물을 잡아 제사하는 것으로는 죄를 없이 하지 못하므로 온전하게 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한마디로 제사와 예물은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3절)이고 동시에 “한 몸을 예비”(5절)하신 것, 곧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는 의미이다. 죄를 기억한다는 것은 사람의 모든 가능성, 율법을 문자로 행함을 부인한다는 뜻이다. 심판을 받아야 할 죄를 우리에게 묻지 않으시고 죄 없는 어린 양에게 물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44절). 성막과 기물들은 어린 양의 피를 뿌림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거룩은 예표요 상징이다. 실제로 그것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야훼 하나님이시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규례대로 제사를 하는 행위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의가 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그 어떤 선한 행동이 있고 착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죄악일 뿐이다. 그것을 이스라엘은 제사로 확인하여야 했었다. 제사로 확인하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이 언약의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신 방식이 매일의 제사였다. 결국 하나님께서 매일의 번제를 말씀하신 것은 제사를 기뻐하시기 때문이 아니다. 속죄소의 보좌에서 뛰쳐나와 친히 죽음으로 언약을 성취하시겠다는 것을 번제단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매일의 번제가 있는 번제단은 이스라엘이 볼 수 있는 언약궤요 속죄소였다. 거기서 이스라엘과 만나고 말씀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번제단을 통해 죽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만나고 말씀하시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라는 말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합류되어 하나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하나 되는 것이다(롬 6:3-5).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된 자요 성도에게 매일의 번제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것이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45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46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45-46절). 이 말씀은 언약 용어이다(레 26:12, 렘 7:23, 겔 37:23). 성막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33)

 

결국 성막(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 말씀을 “임마누엘”(마 1:23)로 성취하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제사가 아니었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1-12)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야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제사를 잘 행하느냐가 아니며 제물을 얼마나 아름다운 것으로 드리느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새기는 것인데 곧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고(히 3:1),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말이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다는 의미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2026062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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