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신앙칼럼

고정된 이미지 해석을 버려야 한다.

작성자갈렙|작성시간17.08.24|조회수141 목록 댓글 6

어렸을 적, 길바닥을 지나다가 뱀을 만나면 어떻게해서든지 막대기나 돌을 가지고 죽여야만 속이 시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두꺼비나 개구리 같은 생물일 뿐일텐데...하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그런 행동을 하게 했을까요? 

성경이야기, 즉 주일학교에서 배운 에덴 동산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을 속이고 영원한 죄인이 되게 해준 뱀에 대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마음 속에 적개심으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이야기로 인한 불유쾌한 감정이 없다고는 할수 없습니다. 길에서 뱀을 만나면 화들짝 놀라서 피할 뿐만 아니라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일종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제 평생에 뱀을 애완동물로 기르고 싶을 때는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참으로 건강치 못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도 고정관념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뱀은 마귀다(?)

서론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신앙생활 초두에서 부터 우리는 뱀에 대한 혐오심이 길러집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죄에 빠뜨린 자는 분명 뱀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뱀이 아니고 영적인 존재인 마귀입니다. 뱀은 하나의 생물일 뿐입니다. 마귀가 뱀의 입을 빌려서 말을 한 것입니다. 

물론 그 말도 음성이었는지, 아니면 텔레파시였는지 모릅니다만, 뱀은 마귀에게 이용을 당한 가엾는 생물일 뿐인 것입니다.

상징화법으로 계시된 요한 계시록에서는 또 한번 뱀과 마귀의 관련성을 보여줍니다.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12:9)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계20:2)


이렇게 뱀에 대한 나쁜 인식 때문에 오늘 날 산야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파충류 뱀을 악한 것으로만 인식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뱀은 모두 악한 것일까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게한 불뱀은 나빴지만, 모세가 만들어 장대에 걸쳐놓은 놋뱀은 백성들의 병을 치유하고 살게 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바로 그 놋뱀처럼 자신도 그렇게 땅으로부터 들여올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경우의 뱀은 얼마나 좋은 뱀입니까?

또 모세가 바로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에 대해 담판할 때에도 지팡이를 던져서 뱀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애굽의 술객들도 뱀을 만들었지만, 모세의 뱀이 그들의 뱀을 집어 삼켰습니다.

이렇게 통쾌하게 바로를 이기게 해준 모세의 뱀도 나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파송 내 보내실 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만일 뱀이 마귀라면 이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2. 이리는 거짓선지자이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이리(늑대)로 비유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7:15)


또 예수님께서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10:12)

참목자와 거짓 목자를 대비시키는 가운데 거짓 목자를 이리로 설명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리는 기독교인들의 인식 속에선 아주 나쁜 동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나오는 이리는 항상 거짓 선지자입니까?

그러면 다음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요?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사11:6)

만일 이리가 거짓 선지자라면 어떻게 어린 양과 함께 거할 수 있겠습니까?

인류가 기다리는 파라다이스에 들어가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 맞는 말일까요?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 땐 거짓 선지자도 용과 함께 모두 불못에 들어가고난 다음에 펼쳐지는 세상입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과 거짓 선지자가 사이좋게 함께 거하신다고요? 말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리는 무조건 거짓 선지자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3.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반석은 대부분 그리스도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라"고 노래하였고(시18:2), 바울도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

분명 그리스도는 성도가 광야와 같은 세상을 여행할 때에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는 생명수를 내 주는 반석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풀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다음의 구절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출33:21)

여기에서의 반석도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너는 그리스도 위에 서 있으라?>라는 뜻이 되는데 말이 되겠습니까? 


4. 누룩은 바리새인의 교훈이다(?)

어떤 사람은 누룩은 <바리새인의 교훈>이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 때문입니다.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마16:11-12)


이 자리에서 한번 누룩을 <바리새인들의 교훈>이라고 말씀하셨다해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누룩을 나쁜 것으로만 인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넣어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눅13:21)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 는 것입니다. 

누룩의 어떤 성질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누룩은 <변화시키는 성질> 때문입니다. 

누룩이 없으면 가루는 365일을 두어도 발효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룩을 넣으면 몇 시간이면 발효가 일어나서 맛있는 빵을 만들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말씀이라는 매개체가 들어가지 아니하면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매채체가 들어가지 아니하면 천년 만년이 되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아귀다툼의 현장일 뿐이고, 지옥 자식들만 양산될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때에 세상은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누룩은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인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누룩은 바리새인의 교훈>이라는 고정관념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고정된 이미지 해석의 대가

오늘 날 한국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이단 가운데 쉰~첨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사물들에 고정된 이미지를 심어서 소위 말하는 <뜻풀이>니 <비유풀이>식 설교를 합니다. 

<넌, 이 구절이 무슨 뜻인지 아니?>

그러면서 성경 이곳 저곳을 펼쳐보게 함으로써 어느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줍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교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본적이 없는 어린 신자들은 굉장히 감동을 받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엄청 많이 아는 사람같아 보이고 신령해 보이기 까지 합니다. 

사실 그것은 자기들의 주장을 잘 받아들이게 하는 기초를 다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신령한 것도 아닙니다. 

사전 외우듯이 A=B다 이런 식의 고정된 의미만 숙지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외우기 쉽도록 노래까지 만들어서 가르쳐 주는 데, 그것만 다 외워도 대단히 성경을 많이 아는 것 같이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 노래는 <성경비유풀이 노래>라고 일컬어지는데, 모두 8절까지 있습니다만, 

1절 한절만 보시겠습니다. 


<는 말씀이요,  밭은 마음과 교회, 나무는 사람이요, 가지는 제자

은 전도자요,  열매는 말씀과 성도,  는 영이요, 양식은 말씀.

누룩은 교훈이요, 그릇은 사람의 마음. 지팡이는 말씀과 사람.

저울은 마음과 행동 달아보는 말씀, 은 소멸과 심판의 말씀.>


이상에서 알 수 있듯히 성경에 나오는 자연과 사물에다가 모두 고정된 영적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고정된 의미로 해석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물에다 고정된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은 성경 해석을 화학방정식 처럼 만드는 우를 범하게 할 것입니다. 

성경해석은 단어의 고정된 이미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그 단어가 갖는 특성을 고려해서 해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책은 결코 화학서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역사와 교훈, 꿈과 환상과 비유 그리고 예언등으로 된 여러가지 형식으로 주어진 계시입니다. 

이 모두를 획일적으로 풀수 있는 만능열쇠는 없습니다. 

특히 역사와 교훈은 가급적 문자대로 풀어야지 그것을 무슨 꿈이나 비유나 환상처럼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바람은 바람이지, 항상 전쟁과 심판입니까? 무덤은 무덤이지 항상 육체이겠습니까? 


고정된 이미지에 묶이면 영적인 건강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J_카타리나 | 작성시간 17.08.26 저는 지금도 쉰~첨지 분들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분들이나 저나 나쁘긴 별반 다를 바가 없음을 아니까요.
    아마 그때도 예수사랑님이 자신이 속한 교회를 떳떳하게 말하셨다면 저는 그분을 내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도 쉰~첨지 성경비유풀이 노래를 보니 제 마음이 혹합니다. ^^;;
    성경비유풀이 글을 읽으니 욥기의 친구들의 말이 넘 내 맘 같아서 혼란스러워했던 일도 생각나고... ^^;;
  • 답댓글 작성자J_카타리나 | 작성시간 17.08.26 저는 요즘은 먹고사는 일이 급해서 아둥바둥대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 믿음에 확신이 없습니다. 요즘도 하나님께 제가 아버지 딸이 맞느냐고 묻곤 하거든요...^^;;
  • 답댓글 작성자J_카타리나 | 작성시간 17.08.26 갈렙님의 신앙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신앙이기를 기원하며 영육이 강건하기를 바랍니다. ^^*
  • 답댓글 작성자갈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8.26 J_카타리나 반갑습니다. 도대체 몇년 만이신가요? ㅎㅎㅎ
    10년도 더 됐겠네요.
    아무튼 일하시느라고 바쁘시다니 그 건강이 부럽기도 하네요.
    그런데 갑자기 예수사랑님 이야기를 하시니,,
    혹시 거기 나가시는 것 아닌가요? ㅎㅎㅎ.

    예수사랑님이 지금은 다른 아이디를 갖고 가끔 들어오십니다.
    제가 이 양반을 옛날 생각해서 잘 봐드릴려고 하다가도 실망시킬 때가 너무 많습니다.
    자기 단체 선전에 너무 열을 올립니다. 그래서 몇번 글을 삭제도 하고 그랬지요.
    아무튼 다시 뵈어서 반갑습니다.
    건강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샬롬 | 작성시간 17.08.26 J_카타리나 안녕하세요.
    신천지(새천지,이만희교)의 성경해석은 엉망이 많습니다.
    카타리나님도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승리하세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