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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섬기라는 말씀인가? 섬기지 말란 말씀인가?

작성자갈렙|작성시간19.11.24|조회수618 목록 댓글 0

섬기라는 말씀인가?  섬기지 말란 말씀인가?


성경에 보면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구절들이 종종 눈에 띄는 데, 다음 구절도 그들중 하나입니다.


마4:10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행17:25 "(하나님께서는) ...또 무엇이 부족한 것 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앞절에서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했는데, 

뒷절에서는 "하나님은...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인가요? 섬길 필요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이런 경우가 또 있습니다.


롬12:11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마20:28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요..."


앞절에서는 '섬기라'고 하시고,

뒷절에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시니... 

도대체 예수님을 섬겨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이러한 구절들 때문에 어떤 신자들은 하나님은 단순히 탐구와 묵상의 대상으로만 삼고, 공중예배나 봉사에 대해서는 등한시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옳은 태도냐 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섬김>이란 말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있어야될 줄 믿습니다. 

<섬김>이란 말이 원어로 보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마4:10에 나오는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의 동사원형은 [라트류오]입니다.

그러나 행17:25에 나오는 "(하나님을) 섬김"이란 말의 동사원형은 [데라퓨오]입니다.

"섬기라"고 하는 말과 "섬기지 말라"는 말이 이렇게 원어상으로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또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롬12:11에 나오는 "(그리스도를) 섬기라"의 동사원형은 [둘류오]입니다.

그러나 마20:28의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의 동사원형은 [디아코네오]입니다.

앞의 "섬기라"의 동사원형과 뒤의 "섬김'의 동사원형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동사들의 쓰임새를 꼼꼼히 찾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1. [라트류오]

이 말은 마4:10, 행13:2, 롬1:9, 히10:11, 계7:15, ...등에서 보듯이 대부분 하나님을 섬기는 데, 쓰여진 용어입니다. 천재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천군천사와 온 만물로 부터도 예배와 찬송을 받으시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예배해야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때에도 이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길지니라."

마귀는 창조주가 아니므로 <섬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연히 섬김의 대상입니다. 


2. [둘류오]

이 말은 눅15:29,  롬12:11, 롬14:18, 엡6:7, 골3:24,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아들이 아비를, 성도가 주님을, 또는 종이 주인을 섬기라는 데 주로 사용된 말입니다. 

인간의 상하관계에서의 섬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류오]는 "종노릇하다", "예속하다"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한 성도의 일로써 이런 단어를 쓴 것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며 따르라는 말인 것입니다.


3. [디아코네오]

이 말은 마20:28, 고전15:31, 고후9:1, 몬1:13, 히6:10...등에서 볼 수 있듯이, 성도간의 친교와 봉사, 특히 물질등의 공급을 의미하는 데 많이 쓰여졌습니다. 

이 말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형제가 형제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데라퓨오]는 마12:10, 막6:5, 눅6:7, 요5:10, 행4:14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고치다. 건강을 회복하다, 돌보다 등의 의미로 쓰인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섬김>으로 번역된 것은 행17:25가 유일한데, 절대로 어울리는 단어가 아닙니다. 

KJV도 <worship>이라고 번역하였고, NASB도 <serve>라고 번역한 것은 실수인 것입니다.

그 말이 <섬김>, worship으로 번역됨으로 인해 마치 하나님을 <섬기지말라>는 뉴앙스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어에 충실하고자 했다면 <care(돌보다)>정도로 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돌봄>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은 돌봄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만물을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아덴 사람들은 아마도 자기들의 우상신 앞에 먹을 것을 차려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황당한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돌봄(데라퓨오)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돌보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드린다거나 옷을 해 입힌다거나 음식을 만들어서 갖다가 바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제물을 바친 것은 하나님을 돌보는 의미에서 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죄사함과 헌신을 위한 인간의 희생이었던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17:25를 정확히 번역하려면, "하나님은 돌봄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요."라고 해야 합니다.

섬김을 받는 분이 아니요라고 하면 자칫 하나님께 예배도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섬김도 그렇습니다. 

위의 [디아코네오]는 대부분 물질적인 섬김을 의미하므로 정확히 번역을 하려면, "나는 (물질적) 섬김이나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물질적으로) 섬기고, 또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노라."라고 번역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육신으로 모든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목숨(혼)까지 속죄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오해해서 "그리스도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니, 섬길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실상 예수님이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 물질적 섬김을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에게 식사를 대접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재산으로 섬기신 분들도 많았던 것입니다.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8:3)


이러한 섬김을 예수님은 만류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과 존경으로 하는 행위를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섬김을 받지 않겠다는 말씀이 아니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그러한 섬김이나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 목숨을 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결론>

이상으로써 신약에 나오는 <섬김>에 대한 구절들을 살펴보았는데, 그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섬김>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을 섬기는 것(라투류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르고 순종하는 섬김(둘류오)도 당연한 것이고, 형제들 사이에 친교와 도움을 주고 받는 섬김(디아코네오)도 필요한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약한 형제를 돌보아주는 섬김(데라퓨오)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예배나 섬김의 행위를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위입니다. 


출처: 요르단강 카페. 글쓴이/갈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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