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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백투 예루살렘 운동에 대하여...

작성자갈렙|작성시간15.02.27|조회수242 목록 댓글 2

<백투 예루살렘 운동>이란?


<백투 예루살렘>이란 용어는 최바울 목사님이 설립한 인터콥 선교회에서 케치프레이즈로 사용한 뒤로 부터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용어는  아마도 의미상으로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자"는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사적으로 의미를 살펴본다면 "예루살렘으로 부터 퍼져서 세계를 정복한 복음을 다시 본향인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자"란 의미가 될 것입니다.


1. 왜 이런 주장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종말에는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이 성경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종말론 운동이기도 합니다.

또한 신학적으로 교회와 이스라엘을 분리시킨다는 점에서 세대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들과 신사도운동과를 결부시켜서 신사도운동이라 매도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신사도 운동에서도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 단기 선교를 떠났던 분당 샘물교회 청년들이 반군들에 의해 납치및 희생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부터 이 선교회에 폭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 선교팀을 인터콥에서 보낸 것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어떻든 이 사건을 겪고나서 부터 인터콥 선교회는 심한 역풍을 맞아 큰 변화를 받게 됩니다.

대표 최바울 목사님은 교단과 교계의 조사를 받고, 사과문을 발표하고, 신학을 다시 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선교 방법과 태도에  변혁이 일어나게 되고, 결과 교계에서의 인식도 좋아지는 계기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11년 8월 9일에 있었던 어느 인터뷰에서 최바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백투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아젠다로 움직이는 것과는 관계 없는 것이다. 이슬람을 선교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세대주의겠는가. 결국 ‘백투예루살렘’ 용어가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으나 사용하되 잘 설명하라는 지도를 받았다. 그래서 신학적인 문제는 해결했다."


그는 이렇게 "백투 예루살렘"이라는 용어에 대한 의미를 축소시켰고, 또 세대주의 와의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보수 개혁측으로 부터는 많은 지지와 호응을 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거기에다가  2014년에는 선교경험이 풍부한 합동측 강승삼 목사님이 3대 이사장이 되면서 부터는 선교회는 그동안의 불신과 의심의 시선으로 부터 많이 벗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백투 예루살렘 운동"을 이단시하거나 문제시할 소지가 없어진 상황입니다만. 정말로 최목사님 말씀처럼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라면" -.

특별히 문제 삼을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2. 그러면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말씀하고 있는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2:6)


"전에는 내가 그들로 사로잡혀 열국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토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겔39:28)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 톰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같이 세우고..."(암9:11)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슥14: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 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때 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마24:37-39)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2-33)


역사적으로 볼 때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고, 백성들은 뿔뿔히 흩어져 열방에 유리방황하게 된 처지가 된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4일날 마침내 독립을 선포하고 국가를 회복하게 된 것을 보면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세계 각지로 부터 모여들고 있으니 정말 자기들 나라에서 만왕의 왕의 재림을 맞이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환상에 젖을 만도 합니다.


3. 이스라엘의 회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데 이것을 보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회복 예언이 육적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볼 수 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1) 왜냐하면 구약의 용어가 많은 부분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암9:11에 나오는 <다윗의 장막>이라는 말도 육신적인 이스라엘 왕국의 재건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초대교회의 설립의 의미였음을 야고보의 말을 들어서 알 수 있습니다. (행15:16)


또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말씀도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이므로 그것을 육적 이스라엘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언에 대한 용어들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수만은 없는 노릇인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이스라엘이라는 말 조차 영적인 의미로 쓰인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6:15)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모두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육적 이스라엘에게 적용할 수만은 없다고 하는 난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2)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설사 이상의 예언들이 육적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위해서 교회가 할 일이 있을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받아 들이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가서 회심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그들을 준비시켜야 예수님께서 오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빨리 그들을 회심시켜야 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듭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자들이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에 대하여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1:7)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그 나라에 대한 회복시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니 너희는 알 바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육적인 나라의 운명도 여타 나라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속세의 역사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나라인 교회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상 나라에 대한 예언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3)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안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어디까지나 조건부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 순종하면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렇지 못했을 때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예를 수없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성경에 빈번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제 조상의 집이 내 앞에서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삼상2:30)


이로 보건대, 그 분의 약속이라고 해도 이루어질 것인지, 안 이루어질 것인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와 권한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예언하셨다해서 기계적으로 반드시 성취되리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쉬운 예로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예고를 들 수 있습니다. "40일이면 불이 내려와 사를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온 백성이 회개함으로 그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연구하면서 미래를 점치는 데 이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요, 진지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만, 교회가 너무 관여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속국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스라엘은 한 때 하나님의 계시의 전달자로써 귀중하게 사용된 민족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연고- 하나님의 애당초 계획때문인지,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지- 로 인지는 몰라도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예수님을 영접해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대주의자들의 주장 처럼 그들에 대한 제사장 나라 예언의 성취가 2,000년 뒤로 연기되어진 것인지, 

아니면  언약신학자들의 주장처럼 그들에 대한 예언은 이제 물건너간 것이 되어(대체주의) 교회안에서 영적으로 누려질 것인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예언에 속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계시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의 근복적인 문제와도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다른 나라에도 선교사를 파송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이스라엘 국가에도 선교사를 파송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영접하여 우리와 같은 교회의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된다면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 일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교회와 이스라엘 관계에 대한 신학이 미정립된 상태에서는 그들에 대한 접근이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여전히 구약적 사고 방식에 머물러 있어서 신약교회와의 완전한 융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로인한 교회와의 충돌이나  교회의 이질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빨리 오시는 것 만이 최선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 믿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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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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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용아씨 | 작성시간 15.02.27 이스라엘의 영적 의미를 잘 모르니 아직도 저 육적 이스라엘로 잘 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 이네요
    마23:33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영접지 않으므로 이미 심판을 받았고 마21:43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 나라는 그들과는 상관없다는 의미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갈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2.28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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