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내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는 아직 공식적인 이름이 없다. 물론 교파에 가입한 적도 없다. 40여년의 세월을 그렇게 존재해 왔다. 그래서 나는 우리교회를 그냥 <우리교회>라고 부르다가 <조치원교회>라고 부르다가 한다. 우리 교인들 역시 자기네들이 40여년을 몸담고 있는 교회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고, 그 이름을 아는 이들도 없다. 교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름 먼저 지어놓고 간판 먼저 붙여놓는 것이 요즘의 세태인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교회는 아무튼 보통교회는 아니다.
우리교회는 조치원과 천안 수원 그리고 부천 이렇게 네 군데서 매주 모이고, 일년에 세 번씩 한군데서 연합으로 모여서 주의 만찬과 애찬을 나누고 그 동안의 궁금했던 소식들을 나눈다. 나는 이러한 우리 교회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반해 버릴 지경이다.
난 오랫동안 초대교회의 모습에 목말랐었다. 사람이 만든 전통이나 형식에 매이지 않는 교회, 억지가 없는 교회,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이 단순하고, 자유함이 있는 교회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나는 교회사 연구를 통해 프랑스 남부지방과 이태리에는 아직도 그러한 교회들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숫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초대교회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왔던 - 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은 나의 꿈이 되어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반드시 그 곳에 가서 그 모습을 보고 배워 오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단 회의나 모임에 일절 참여치 않고, 목회도 독립으로 하면서 하나님께서 참된 교회, 참된 목회상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를 4년이나 지난 뒤에 우연한 기회에 알게된 장로님 한분으로부터 당신이 하고 있는 교회에 부임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듣고보니 내가 하고 싶은 바로 그런 교회였다. 나는 사실 기도고 뭐고 해볼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교회였던 것이다. 그래서 3월 7일 토요일 저녁에 조치원에 가서 그 장로님을 만나 뵙고, 이틑날 아침에 모임처로 향했다.
모임처는 스레트지붕을 얹은 열댓평 정도 되어 보이는 일자형 농가였는데 본래 동네회관이던 것을 교회가 사서 그 안을 모두 터서 예배처로 사용한다고 했다. 겉으로 보아 그것이 교회당이라고 볼 만한 어떤 표식도 없었다. 지붕위에나 교회당 입구에나 십자가나 교회현판조차 내걸려 있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하자 30여명쯤 되어 보이는 교우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대부분 노인들이었지만 그들은 생기가 넘쳐흘렀다. 장로님은 나를 간단히 소개한 다음 예배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예상은 하였지만 나는 예배의 단순함에 놀랐다. 그것은 기성교단 어느 교회의 구역예배보다도 더 단순한 것 같았다. 나는 장로님의 구호(?)에서부터 놀랐다.
“찬송가 몇장 부를까요?” 장로님이 묻자 어느 한분이 “405 장요.”했다 장로님이 그 말을 받아 “예. 405장 찾으세요!...다 찾았어요?” 회중이 “예! ”하고 대답하자 “그러면 시작합니다. 시작!” 장로님의 시작구호(?)소리가 나자 일제히 찬송이 흐드러지게 울려나왔다.
예배시작을 알리는 강단의 종소리도, 웅장한 전자 오르간 소리도, 성가대원의 기원송도, 사회자의 엄숙한 기원이나 성시낭독도 없었다. 그 모든 형식에 익숙해 있던 나는 그 단조로움에 놀랐을 뿐이다.
찬송가는 박자도 곡조도 다소 엉망이었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 찬송은 목에서 만들어져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힘있게 터져나오는 찬송이었다. 어느 집사님의 기도에 뒤이어 장로님의 목사소개가 있었다.
“나는 이제 나이도 있고 힘도 없어서 더 이상 못해요. ...우리가 4년동안 기도해 왔잖아요? 이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한 종을 보내 주셨는데...” 장로님의 소개가 끝난 뒤 나는 오염되지 않은 교회를 본 것 같다는 소감을 곁들여 간단한 설교를 했다.
예배 중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헌금 시간이 없었다. 장로님의 실수로 빼먹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헌금이니 봉헌기도니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예배 끝난 뒤에 몇몇 분이 장로님에게 봉투를 드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헌금이었다.
그러므로 헌금은 정규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매일요일 마다 드리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년 내내 한 번도 안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었다. 예배는 설교 후 광고와 함께 끝났다. 모두들 반가워했고, 즐거워했다.
내가 그 교회에서 위임을 받은 것은 그 후로부터 3주후, 나는 위임이 있을 것이라는 장로님 말씀을 듣고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했으나 여늬 예배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강단벽에 위임식이라는 글자 하나 써 붙이지 않았고 예배 후 특별한 연회나 기념 촬영 하나 없었다. 다만 예배 중에서 장로님은 나를 일으켜 세운 뒤 교우들을 향해 “이 목사님을 이제 우리 교회 위임목사님으로 세우는 것인데...괜찮죠?”하고 물었고, 교우들은 일제히“예!”하고 대답한 것이 전부였다. 어떤 집사님이 나에게 귀뜀해 주었다. 장로님의 완강한 거부로 40여년이나 봉직한 장로님에게 그 흔한 공로패 하나 만들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초대교회를 보았다. 구태여 비싼 비행기 타고 멀리 프랑스니 이태리니 갈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내가 찾던 그 순수함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초대교회가 바로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교회는 꾸미는 것을 싫어한다. 무슨 의식이나 정해진 절차가 거의 없다.
예배도 말씀과 찬양과 기도외에는 다른 순서가 없다. 거기에서 힘을 얻어 세상에 나가서 서로 사랑하면서 승리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교회는 매주 두세번씩 그렇게 모이면서 40여년을 그렇게 지내온 것이다. 그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외로운 투쟁을 하면서...
나는 물론 우리 교회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소 모자란 부분이 있겠지만 적어도 순수함 만은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우리교회를 자랑스럽게 본다. 우리 말에 <지나친 것은 모자람 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주님을 섬기는 정성도 지나치므로써 잘못되는 것 보다는 다소 모자란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자란 것은 보충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아침 이슬같이 그 순수함을 머금고 있는 우리 교회- 오염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과연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지...주님께 기도할 뿐이다.
*14년 전에 쓴 글을 어쩌다가 발견하게 되어 올려 봅니다. 지금은 처음 이 당시와는 많이 다릅니다. 교회 이름도 지어 붙였고, 모임처도 한 군데로 줄었고, 신도수도 많이 줄었습니다. 모임처가 그 유명한 <세종시>에 있거든요. 언제 사라질 지 모른답니다. ㅎㅎㅎ
생각나시면 기도해 주세요.
그런데 글 가장 자리가 짤려서 올라간 것 같은데 수정하는 방법을 모르겠네요. 혹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고딕체도 해제시키려고 해도 안되네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니 양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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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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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시온의 대로 작성시간 11.12.23 행정도시가 완성되면 인구가 늘어 날 것이니까 걱정 안하셔도 되겠군요. 신도시가 들어 서면서 대형화된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메리 크리스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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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혜로 사는 사람 작성시간 12.02.07 음~! 교회 부임(?) 하는 과정은 다른 부분이 있지만 장로님이 시무하셨고 그냥 한번에 결정되었고 노인들만 계시고 ...하는 부분에는 현재 우리 교회와 거의 같군요. 부임(?)한 후에는 제가 소속된 교단에 속하게되고 지원받고 하는 부분부터는 좀 다름니다만 .... 그래도 좀 자유롭게 하는 부분은 또 비슷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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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갈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2.07 ㅎㅎㅎ. 여러가지가 저와 많이 비슷하시군요. 섬진강으로 언제 놀러가야 할텐데...시간내기가 여의치 않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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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감사감사 작성시간 14.03.14 이글을 이제서야 보았네요. 저희 교회하고 같군요. 저는 제가 사는 가정집이 교회 장소라는 것 외에는 거의 같군요.너무 반갑습니다.언제 한번 들려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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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갈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3.14 반갑습니다. 저 글을 17년 전에 써서 뉴스엔조이에 올렸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지금은 그 모습은 이제 사라지고, 그 건물만 아직 빈집으로 남아 있습니다. 세종시에서 언제 헐어버릴지 모릅니다.
추억이 깃든 건물인데...
세종시 근처로 오실일 있으면 연락주십시요. 어쩌면 제가 먼저 찾아뵐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