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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교회사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 대하여

작성자갈렙|작성시간23.01.26|조회수43 목록 댓글 0

수님에게는 여러 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6:3)

이 구절만 놓고 보더라도 적어도 남동생이 네명이 되고, 또 여동생들도 두명 이상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중에 야고보라는 동생(아마 바로 밑의 동생)은 기독교사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초대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이 야고보에 대해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같은 인물의 인물이 여럿 있었으므로 <의인 야고보>라고 불리웠던 야고보는 주님의 시대로부터 사도들과 함께 교회의 통치를 맡고 있었다. 

이 사도는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졌었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았으며, 생명이 있는 음식을 삼가했다. 또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으며,  기름을 바르지 않았고, 또 목욕도 하지 않았다. 오직 야고보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는 결코 털옷을 입지 않고 베옷을 입었다.

 

그는 홀로 성전에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종종 무릎을 꿇고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쉬지않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마치 낙타의 발처럼 딱딱해졌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그에 대해 선포한 것과 같이 그는 지극히 경건했기 때문에 의인, 또는 오블리아스(Oblias, 또는 Zaddick, Ozleam)이라고 불리웠다.

오블리아스란 공의와 백성의 보호를 의미를 의미한다.>

 

이처럼 경건한 그의 태도는 예수님에게도 인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영지주의 서적이라고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도마 복음서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누구의 인도를 받아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주님께서 저희를 떠나시리라는 것을 아나이다. 누가 저희 지도자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어디 있든지 너희는 의로운자 야고보에게로 가야 하나니, 하늘과 땅이 그를 위해 존재하게 되었느니라.”

<도마복음 12항>

 

과연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사도들은 그를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지도자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유세비우스는 그의 책에서 예루살렘 교회 감독계보에서 그를 제1대 감독으로 기록했습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엄성옥역.  은성출판사간. P585)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 교회 초대감독이었음을 여러번 언급했습니다.

 

또 <기독교사> (/케니스 레토레트. 윤두혁역. 생명의 말씀사간)에서도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 감독이었음을 여러번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James)가 저들의 공동체(예루살렘교회를 의미함/필자)의 수반(首班)이 됐다. 적어도 에수님께서 공중사역을 하시던 얼마 동안 불신자로 있었던 야고보는 아마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특별히 나타나심으로 길 가던 도중 어디에선가 주님을 믿게 되었다, "(p130)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드로와 15일간 같이 있었고, 또한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도 만났다."(p138)

 

"예루살렘 교회의 제1세대 동안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교회의 책임자로 여김을 받았지만, 감독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p199)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대표로 있던 예루살렘 교회가 바로 그렇게 되려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상 초기 전설에 의하면 그가 유대사람들에게 높은 존경을 받았다고 언명되어 있다."(p207)

 

"단성론자들의 한 큰 분파인 그의 집단에게 적용되었던 야곱파(the Jacobite)라는 말은 그에 대한 추억을 길이 보존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참된 교회 집단, 곧 예수님의 아우인 야고보의 신앙의 관리자들이라는 주장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 였다."(p433)

 

이로보아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지도자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누가는 초대 예루살렘의 사도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행15:13)

할례와 율법준수 문제를 의논하고 난 뒤 베드로의 제안이 있었고, 그 뒤에 야고보가 결론적인 말을 한 뒤에 만장 일치로 가결된 것을 볼 때, 우리는 야고보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편지하면서 이 때의 일을  이렇게 말합니다.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믈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들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2:9)

여기서 말하는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임에 틀림 없습니다. 대야고보라고 불리웠던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이미 헤롯에 의해 순교를 당한 뒤였기 때문입니다.(행12:2)

 

얼마후 주님의 형제 야고보도 마침내 순교의 제물로 사라지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유세비우스는 그 때의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였기 때문에 베스도는 그를 로마로 압송하였다. 따라서 자신이 높은 덫으로 그를 잡으려는 희망이 좌절된 유대인들은 당시 사도들에 의해 예루살렘 감독에 임명되었던 주의 형제 야고보를 공격하였다.

그들이 야고보에게 가한 조처들은 다음과 같았다. 

그들은 야고보를 공공 장소로 데리고 가면서 그에게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를 부인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단호한 목소리로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말하였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고백했다.

덕이 많고 경건하여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의롭다고 여겨지는 이사람의 증언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그들은 당시 무정부 상태로 야기된 파격적인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살해했다. 왜냐하면 이 무렵 유대의 총독 베스도가 사망하여 이 지방에는 총독이나 수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는 성전의 익면에서 밀려 떨어져 곤봉에 맞아 죽었다.>(p122)

 

야고보의 죽음에 대한 더 자세한 진술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야고보의 입을 통하여 그 기세를 꺾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때는 유월절을 지키려고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운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야고보에게 다음과 같이 간청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기대하여 그를 좇음으로 빗나가고 있습니다. 부디 그들을 제지하여 주십시요. "

그러면서 큰 소리로 백성들에게 선포해 달라고 높은 곳으로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이 간청했습니다.

"오, 그대 의인이여, 우리는 모두 당신을 믿습니다. 백성들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좇아 잘못된 길로 가면서 우리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문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왜, 당신들은 나에게 인자이신 예수에 관해 묻습니까? 그는 지금 하늘 나라에서 전능자의 오른편에 앉아 게시며,  장차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확신을 얻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쳤습니다.

 

일이 잘못된 것을 알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야고보가 있는 곳으로 쫓아 올라가서 그를 땅 아래로 밀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야고보가 죽지 않고, 오히려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주 하나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의 하는 행위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으며, 한 피륙업자가 가죽을 두들겨 펴는 데 사용하는 곤봉을 가지고 가서 야고보를 두들겨 패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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