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속 성경 한 말씀] 5.대영광송: 루카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작성자daria작성시간16.12.30조회수253 목록 댓글 0신자들이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새로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자기성찰과 고백하는 참회 이후에, 오로지 주님의 자비를 통해서 주님이 베푸는 잔치, 곧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요한 4,24)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 자비송의 가장 알맞은 해설은 대영광송이라 할 수 있다.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 어떤 분이고 우리는 무엇을 청해야 하며 어떻게 찬미 드려야 하는 지를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리아 Gloria ” 또는 “천사 찬미가 Hymnus Angelicus”라고도 불리는 대영광송은 성령 안에 모인 교회가 하느님 아버지와 어린양을 찬양하고 간청하는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찬미가이다.
언제 누가 작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초기교회시기에 리듬이나 운율을 신경 쓰지 않고 시편이나 성서 찬가를 본뜬 “창작 찬미가들 Psalmi idiotici”이 많이 출현했는데 대영광송도 이 찬미가들 중에 하나라고 여겨진다.
동방과 셀틱, 그리고 갈리아 수도회 성무일도의 아침기도에 불렀다.
서방교회에서는 4세기 중엽의 성 힐라리오 시대에 사용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초기에는 ‘떼데움 Te Deum’ 처럼 축제 찬미가로 부르다가 4세기 중엽에 미사에 들어갔지만 오직 교황이 집전하는 성탄미사에만 사용되었다. 그 후 차츰 주교집전미사에도 사용되었지만 성탄과 부활 주일 외에는 부르지 않았다.
교황 심마쿠스(498-514)는 이 성가를 주일과 순교자 축일까지 확장하여 부르도록 하였고, 7세기의 ‘그레고리오 성사집’에 따르면 사제집전미사에는 오직 부활주일에만 허용했다가 나중에 새 사제의 첫 미사에도 부르게 하였다.
11세기 말경이 되어서야 주일, 축일 등 일반미사에까지 확대되어 부르게 되었다.
대영광송은 전통적인 문헌으로 그리스어와 시리아어 그리고 라틴어 등 세 언어로 전해졌는데, 그 구조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사본은 380년경에 기록된 ‘사도헌장’에 들어 있는 데, 아리아니즘 영향으로 그리스도가 성부께 종속되어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그리스도께 드리는 찬미가 있는 두번째 부분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원본에 필사자가 수정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시리아어 사본은 5세기경에 네스토리아 전례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어 본문으로 신약성서 필사본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수록되어 있는 대영광송은 현행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거의 같다.
라틴어 번역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본문은 690년경에 기록된 뱅골의 대송집에 나타나며, 현행 대영광송과 별 차이가 없다.
삼위일체에 대한 찬미가인 대영광송은 시편, 성서 찬가 등을 닮은 전형적인 찬미가 Hymnus이다. 그 구조와 형식이 ‘테데움’의 전반부와 비슷하며, 네 부분 곧 천사의 노래, 하느님 찬양, 그리스도 찬양, 그리고 영광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루카 2,14의 천사의 노래로 시작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천사의 노래를 아침 찬미가로 부르며 하루를 시작하였고, 저녁에는 시편 112,1의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로 찬미가를 시작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천사의 노래는 이사 6,3의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천상노래로 간주되어 자주 찬미가의 도입부에 인용되었다.
이 찬미가에 대해서 시리아의 에프렘 교부는 이렇게 해석을 한다. “평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을 때 천사들은 선포했지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낮은 존재들이 높은 존재들로부터 평화를 내려 받았을 때, 그들은 ‘땅에 영광, 하늘에 평화’(루카 19,38 참조)라고 외쳤습니다.
신성이 내려오시어 인성의 옷을 입으셨을 때, 천사들은 ‘땅에 평화’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인성이 신성과 하나 되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고자 하늘로 오르시려 할 때, 젖먹이들이 그분 앞에서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마태 21,9 참조)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사도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평화를 이루시려 신성이 인성을 취하시면서 성부의 사랑을 이 세상에 드러내시는 구원의 신비가 시작되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고 평화를 이루려고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봉헌하셨다.
그런데 왜 아직도 평화가 세상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을까? 하느님만을 탓할 것인가? 아직 우리가 평화 자체이신 예수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지 못해서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찬미가는 가장 대표적인 축제찬미가이다. 그래서 주일, 대축일, 축일 및 지역의 성대한 축제일에 노래하거나 왼다.
지역의 성대한 축제란 보편 전례력으로는 기념일이나 평일에 속하지만 교구나 본당에서 지내는 고유 축제 곧 수호성인축일이나 본당설립기념일 등을 말한다.
천사의 노래로 시작하는 대영광송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찬미와 찬양을 드리며 성자를 통한 평화가 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정착하기를 기원하며 바칠 때 그 의미가 더욱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