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규(徐元奎)
■제자의 생애1
1. 본명 상의(相儀), 자(字) 자준(子俊)
2. 본관 이천(利川)
3. 부(父) 서경문(徐慶聞)의 장남(양자)
4. 한약방 경영
5. 을묘(乙卯 : 前 16, 1855)년 출생 을해(乙亥 : 65, 1935)년 6월 17일, 81세로 작고.
묘지(墓地) :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任實郡 館村面)
■입도
1.계묘(癸卯 : 33, 1903)년 1월 , 49세. 전라북도 전주부 서천교(西川橋) 사거리 약방(藥房)
■생애2
당시에 저주부에서 가장 큰 한약건재상을 운영하였는데 약방의 규모가
약령시장이 끝나면 시장의 남은 약재를 모두 약방의 창고에 보관할 정도로
컸다고 한다. 이 약방이 위치한 곳이 정읍쪽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고개인
용머리고개를 넘어서 서천교를 지나면 커다란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사거리 근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 곳이 금산면 동곡약방과 태인, 정읍사이의 교통의 요지이고 번화가여서 상제님께서 오가시는 길에 많이 들르신
것으로 추정되며, 계묘(癸卯 : 33, 1903)년 상제님의 9년 천지공사 전반기에 당시 전주부에살던 김병욱, 김윤찬 제자가 상제님께서 약방에 머무실 때
서원규 제자와 함께 상제님을 추종하기 시작한 곳이다. 장효순의 난 때 잠시 머무시기도 했으며 김병욱 제자가 친일파로 몰려 화를 당할 때 같이 머무시면서 화를 끌러 주시기도 한 곳이다. 서원규 제자는 이사를 많이 다녔으며 이곳 저곳에 많은 땅을 사 두고 소작을 주고 도조를 받았다고 하며 그 규모가 7~8백 석 정도되는 갑부였다. 또 그의 나이 40대에 일생에 크게 죄지은 것이 있어서 보상을 해야겠다고하며 그의 누이의 주선으로 구이면(九耳面)에 있는
백석거리의 땅을 떼어 주면서 당시에 다 쓰러져 가는
모악산 대원사를 중수하였다. 부인 김씨(金氏)와의 사이에 4남 3녀를 두었다. 장손(長孫)인 익봉(益奉)을 백남신 제자 친가 셋째 동생의 딸인 옥주(玉朱)와 혼인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