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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원규(徐元奎)종도분이십니다

작성자하늘사랑|작성시간15.11.19|조회수97 목록 댓글 0

                     서원규(徐元奎)

 

■제자의 생애1

1. 본명 상의(相儀), 자(字) 자준(子俊)

2. 본관 이천(利川)

3. 부(父) 서경문(徐慶聞)의 장남(양자)

4. 한약방 경영

5. 을묘(乙卯 : 前 16, 1855)년 출생  을해(乙亥 : 65, 1935)년 6월  17일, 81세로 작고.   

묘지(墓地) :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任實郡 館村面)

 

■입도

1.계묘(癸卯 :   33, 1903)년 1월 , 49세. 전라북도 전주부 서천교(西川橋) 사거리 약방(藥房)

 

■생애2

당시에 저주부에서 가장 큰 한약건재상을 운영하였는데 약방의 규모가

약령시장이  끝나면 시장의 남은 약재를 모두 약방의 창고에 보관할 정도로

컸다고 한다. 이 약방이  위치한 곳이  정읍쪽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고개인

용머리고개를  넘어서 서천교를  지나면 커다란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사거리 근방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  곳이 금산면 동곡약방과 태인,  정읍사이의 교통의  요지이고 번화가여서  상제님께서 오가시는 길에 많이  들르신

 것으로 추정되며,  계묘(癸卯 :   33, 1903)년 상제님의 9년 천지공사 전반기에 당시 전주부에살던  김병욱, 김윤찬  제자가 상제님께서  약방에 머무실 때

서원규 제자와 함께 상제님을 추종하기 시작한 곳이다. 장효순의 난 때  잠시 머무시기도 했으며 김병욱 제자가 친일파로 몰려 화를  당할 때 같이 머무시면서 화를 끌러 주시기도 한 곳이다. 서원규 제자는 이사를  많이 다녔으며 이곳 저곳에 많은 땅을 사 두고 소작을 주고 도조를 받았다고 하며 그 규모가 7~8백 석  정도되는 갑부였다. 또 그의  나이 40대에 일생에 크게 죄지은 것이 있어서 보상을 해야겠다고하며  그의 누이의  주선으로 구이면(九耳面)에  있는

백석거리의 땅을  떼어 주면서 당시에  다 쓰러져 가는

모악산 대원사를 중수하였다. 부인 김씨(金氏)와의  사이에 4남 3녀를  두었다. 장손(長孫)인 익봉(益奉)을  백남신 제자 친가  셋째 동생의 딸인 옥주(玉朱)와 혼인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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