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문화재
-어디를 가면 좋을까요?
꽁꼬르드 광장과 더불어 프랑스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 그곳은 바로 개선문입니다. 베르사유궁전만큼이나 유명한 이곳에 대해 알아볼까요?
◎ 개선문 Arc de Triomphe

12개의 대로가 방사상으로 뻗은 샤를 드골 에뜨왈 광장 한 가운데에는 프랑스 역사 영광의 상징물인 “개선문”이 우뚝 서있습니다. 이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1805년에 있었던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연합군과 싸워 이긴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로마의 개선문을 본 따 지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공사 기간만 3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정작 나폴레옹 자신은 생전에 완성을 보지 못하고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고 맙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파리 시민들에 의해 나폴레옹의 관이 개선문을 통과해 앵발리드로 향했다고 하네요. 이후 빅토르 위고의 장례행렬과 제 1차 세계대전의 승전 퍼레이드가 이 문을 지나갔고, 1944년 8월에는 이 자리에서 드골이 파리 해방 선언을 했다고 합니다. 1920년 이래로 1차 대전에서 전사한 무명 용사의 시신이 중앙 아치의 밑에 묻혀졌는데, 매일 저녁 6시 30분에는 이들을 기리기 위한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를 간직한 만큼 개선문은 프랑스의 주요 국가 행사가 열리는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 여행의 TIP!
프랑스 역사의 영광을 고스란히 지닌 개선문까지는 지하도를 이용해서 가야하는데, 높이50m , 너비 45m의 거대한 개선문의 벽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승전 부조를 비롯하여 전쟁에서 공을 세운 600여 장군의 이름이 아름아름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특히 라 마르세이예즈 La Marseillaise(프랑소와 루드의 작품) 라는 지원군의 출정 조각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하네요.
엘리베이터 계단을 이용해 개선문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옥상 전망대는 상젤리제 거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전망대 바로 아래층에는 작은 미술관이 있어 건축 과정을 설명하는 자료를 볼 수 있으며, 기념품점이 있다고 하니 빼먹지 말아야 할 것 같네요.
● 여행의 정보
▶ 가는 길 : 메트로 1, 2, 6선을 타고 샤를 드골 광장 역에서 하차하면 됩니다.
▶ 관람 시간 및 관람요금 :
4월 1일 ~ 9월30일 : 10:00~23:00
10월 1일 ~ 3월 31일 : 10:00~22:30
공휴일은 휴무
일반 : ? 7.0
학생 : ? 4.5
▶ 개선문과 그 주위를 둘러싼 샤를 드골 광장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샹젤리제를 비롯해 12개의 대로가 이 곳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 광장이 에뜨왈(etoile : 별, 방사형의) 광장으로도 불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하네요.
▶ 샹젤리제 거리는?

샹젤리제 거리 Avenue Champs Elysees 는 프랑스는 물론 세계를 대표하는 패션과 유행의 거리로 유명합니다. 샹젤리제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낙원을 의미하는 엘리제와 들판을 뜻하는 샹을 합쳐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16세기 조경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르 노트르 Le Notre가 늪지대를 정비해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거리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개선문이 있는 에뜨왈 광장에서 꽁꼬르드 광장까지 똑바로 뻗은 길이 1.8km의 대로를 따라 항공사, 은행, 극장, 노천 카페, 서점. 맥도날드 등이 들어서 있다고 합니다.
▶ 아우스터리츠 전투 (Battle of Austerlitz)는 어떤 전투였을까요?

제 3차 유럽 동맹전쟁의 첫 번째 전투인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나폴레옹이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전투 중에 하나였습니다. 6만 8,000명의 나폴레옹군이 명목상 쿠투조프 장군의 지휘하에 있는 9만여 명의 러시아-오스트리아 동맹군을 물리쳤습니다. 이 전투의 패배로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와 평화협정(프레스부르크 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전투는 프랑스가 11월 13일 빈을 공략하고서 러시아-오스트리아 동맹군을 모라비아(지금의 체크 슬라프코프우브르나)로 몰아넣은 뒤, 모라비아의 아우스터리츠 근처에서 벌어졌습니다. 전쟁터로 달려온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쿠투조프가 갖고 있던 최고 지휘권을 사실상 박탈했습니다. 동맹군은 아우스터리츠 서쪽에서 나폴레옹과 싸우기로 결정하고, 나폴레옹이 함정으로 비워놓은 프라첸 고원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동맹군은 프랑스군을 빈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약 4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프랑스군의 오른쪽(남쪽)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1만 500명의 병사로 이루어진 루이 다부원수의 프랑스 군단이 이 공격에 끈질기게 저항하고 나폴레옹군의 북쪽 측면을 공격한 동맹군의 보조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는 동안, 나폴레옹은 니콜라 술트 원수에게 2만 명의 보병을 주어 프라첸 고원 위에 고립되어 있는 동맹군의 허약한 중심부를 격파하게 했습니다.
술트는 고원을 점령한 다음, 나폴레옹이 예비병력 중에서 보내준 2만 5,000명의 증원군과 함께 고원을 되찾으려는 동맹군의 공격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동맹군은 곧 둘로 분열되어 고원 북쪽과 남쪽에서 격렬한 공격과 추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동맹군은 1만 5,000명의 사상자를 냈고, 1만 1,000명이 포로로 붙잡혔으며, 나머지 패잔병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9,000명의 병사를 잃었다고 하네요. 이틀 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는 전쟁을 중단하기로 동의하고 알렉산드르 1세가 군대를 이끌고 러시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주선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