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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7대불가사의] 2.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작성자윤상훈84|작성시간06.04.14|조회수243 목록 댓글 0
<아르테미스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은 처녀와 정절,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인 아르테미스를 모시기 위해 에페수스 사람들이 범국민적으로 건설한 신전으로 기원전 6세기 중엽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 때 부터 세우기 시작하여 120년이 걸려 완성되었다.

신전은 높이 20미터 정도로 백색의 대리석을 깎아, 127개의 기둥을 이오니아 식으로 세우고 지붕을 이어 만들어졌다.

이것이 세워지고 난 후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이곳을 방문하여 보고 이집트의 피라미드, 모에리스에 있는 라비린토스 등 세계적인 걸작에 전혀 손색이 없는, 위대한 걸작으로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원전 356년 10월,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자가 후세에까지도 유명해질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고의적으로 이 신전에 불을 질렀다.
신전이 불타버리자 디나크라테스는 재건에 바로 착수했는데 이때 에페수스에 살고 있는 여인들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 등의 귀금속을 팔았고, 각지의 왕들은 기둥을 기증하기도 하였다.

특히 아시아로 원정을 떠나던 알렉산더 대왕은 완성 중이던 이 신전에 마음이 빼앗겨 자기의 이름으로 이 신전을 세워준다면 모든 비용을 대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방의 신전을 에베소에 세울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에페수스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 복구 사업을 국가적인 대사업으로 삼고, 그 당시 가장 훌륭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2배나 더 크고 빼어난 신전으로 만들려고 했다.
 <사냥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

에페수스인들은 파르테논 신전이 높이 10미터 대리석 기둥을 58개 사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높이 18미터짜리 기둥을 127개 사용하였고 길이나 폭도 파르테논 신전의 두배 정도로 만들었다.
건축 자재는 가장 순도가 높은 백색 대리석만을 사용했으며 대리석 계단을 사방으로 내서 중앙의 홀로 올라가게 만들었다.

이 신전이 기원전 250년 경에 완성되자, 곧바로 전세계에 그 규모와 화려함이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에페수스시는 아르테미스 신전과 더불어 시가지의 건축물들이 대부분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던 성벽으로도 유명하여 관광 명소가 되었다.
에페수스 항구에는 관광객들을 태운 배들과 교역을 위한 상인들로 넘쳤다.

그런데 화려한 신전이 세워지고 영화를 누리게 된 에페수스시에 기독교의 물결이 밀려들어 왔다.
우상 숭배를 금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눈에는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는 자신들의 교의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것이었다.

요한 계시록 제 2장은 에페수스 교회에 보내는 경고의 편지로 첫사랑을 버린 것을 반성하고 처음 하던 일을 다시 하지 않으면 등경을 그 자리에서 치워버리겠다고 적고 있다.
사도 바울도 이곳에서 우상 숭배를 하지 말 것을 권유하면서 에페수스 사람들과 있었던 충돌에 대하여 적고 있다.

형상화된 신의 이미지를 숭상했던 문화와 내면의 신성을 표현하려고 했던 문화가 서로 마찰을 일으켰으나 아르테미스 신전은 건재했고 기독교는 소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파되어 갔다. 기독교도와의 충돌에서도 에페수스 사람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고수하였다.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그러나 신전은 기원 후 260~268년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해온 고트인들에 의해 약탈되었고, 이때의 방화로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후 신전은 채석장이 되어버렸고 부숴진 지붕이나 원기둥 등은 건축재료로 쓰기 위해 운반해 갔다.

사람들은 신전의 잔해들을 주으려고 이곳으로 왔다. 신전에 서 있는 돌이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폐허 위로는 먼지와 흙이 쌓이게 되었고, 마침내 땅 밑으로 깊숙히 들어가게 되자 그 마을 사람들도 신전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는 사람들이 없게 되버렸다.



발굴 및 현재

<아르테미스 신전의 이오니아식 기둥의 바닥 드럼>

과거에 우람한 상선과 함대를 맞이했던 에페수스는 약간의 주민들만이 살아가는 늪지로 변해있었다.

마을의 어떤 곳이 과거에 아름다움과 영광을 가져다주었던 신전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다가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 J.T.와트가 대영 박물관의 원조를 받아 11년동안 고생하다가 지하 7m 지점에서 대신전을 발굴했다.

와트는 과거의 역사서와 지리서, 철학서를 가지고 이를 고증하였고, 신전에서 발굴한 건축용 석재, 기둥, 조각을 토대로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꽤 정확하게 신전의 본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었다.

로마의 남쪽 25 km에 위치한 아리키아 부근 네미 호숫가에 있는 디아나 네모렌시스는 가장 유명한 신역(神域)으로서, 이곳에서는 디아나가 여성의 수호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로마의 유명한 디아나 신전은 아벤티누스 언덕에 있다.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제우스와 레토 사이의 딸이다. 그녀는 쌍둥이 남매인 아폴론보다 조금 먼저 태어나서는 곧바로 어머니의 해산을 도왔다.

이 여신은 아주 어릴 때 이미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평생 처녀로 지내게 해 달라고 요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 여신은 항상 활과 화살통을 지니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항상 많은 요정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이 요정들 역시 여신과 마찬가지로 순결을 지켜야 했다. 이를 어길 경우 여신은 용서하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강간을 당한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르카디아 지방의 요정 칼리스토의 아름다움에 반한 제우스는 아르테미스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그녀 앞에 나타나 스스럼없이 그녀를 안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칼리스토는 무심코 그 포옹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제우스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그녀를 겁탈하였다. 이 짧은 사랑에서 아이가 생겼다.

달이 차서 배가 불러오자 아르테미스는 모든 것을 눈치챘다. 여신은 화를 참지 못하고 칼리스토를 활로 쏘아 죽였다.
그러자 다급해진 제우스는 칼리스토를 곰으로 변하게 하여 하늘로 끌어 올렸다.
그녀는 하늘에 올라가서 '곰' 별자리가 되었고, 그녀의 아들 '아르카스'는 '아르카스'족의 조상이 되었다.

미남 사냥꾼 '오리온(Orion)'은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아르테미스의 질투를 불러 일으켜 여신의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일설에는 오리온이 아르테미스와 함께 사냥하다가 갑자기 욕정을 느껴 여신에게 덤벼들자 여신이 전갈을 불러내어 오리온의 발뒤꿈치를 물어 죽게 했다고도 한다. 오리온은 죽은 후에 하늘로 올라가 '오리온' 별자리가 되었다.

아르테미스는 처녀 사냥꾼으로 산과 들에서 사슴을 쫓는 활의 명수라고 하며, 그의 화살은 산욕(産褥)을 치르는 여자를 고통없이 그 자리에서 죽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처녀의 수호신으로서, 순결 정절의 상징이었다.

<사슴이 된 악타이온>
그녀는 골짜기에서 활을 메고 수렵을 다니다가 지치면 샘에 와서 반짝이는 물에다 청순한 처녀의 몸을 씻곤 했는데 어느날 그녀가 목욕을 마치고 몸단장을 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악타이온이 이 모습을 보자 그를 사슴으로 만들어 동료 사냥꾼들이 이끌고 왔던 개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목숨이 끊어지게 했다고 전해진다.

아폴론이 태양의 신인 데 반하여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으로 생각되었는데, 이는 월신(月神) 셀레네, 헤카테와 동일화되었기 때문이며, 아르테미스라는 이름도 그리스계(系)가 아니고 옛 선주민족(先住民族)의 신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아르테미스는 비록 올림포스의 열두신에 속하지만 생애의 대부분을 올림포스 궁전에 머물기보다는 숲이나 산, 계곡에서 들판에서 사냥을 하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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