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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게시판

바울의 선교여행

작성자21 박재원|작성시간06.12.10|조회수2,669 목록 댓글 0
 

바울은

 

바울은 크리스트교를 로마에 알리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크리스트 교가 세계 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던 바탕엔 크리스트교를 다른 민족과 나라에 전파하는 4차례의 전도여행이 있었다.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은 실제로 3차례로 볼 수 있고, 그 이후 예루살렘에서부터 로마에 간 것 행적까지 합해서 4번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바울은 로마에 가서 네로황제에 의해 순교하게 된다.

바울이라는 이름의 뜻은 작은 자라는 뜻이고 라틴어 이름은 Paulus, 히브리 이름은 Saul, Sau'lo"(사울로스) Saouvl(사울)=(샤울)이다.


바울의 모습

바울의 전도여행 경로

  제1차 전도여행


바울의  전도여행은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에게 대한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의 지시에 의해 시작되었다(행 13:1-3). 교회는 이 명령에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전도사로 파송하게 된다. 또한 요한 마가가 조수로 동행하였다. 이들은 먼저 구브로 섬에 건너가 섬 전체를 순회하고 그 후 소아시아에 건너가 밤빌리아의 버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을 순회하며 전도하였다. 이것이 소위 제1차 전도여행인데, 사도행전 13장, 14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왜 이 코스를 취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몇몇의 설이 있다. 바울이 이때 소아시아의 남해안을 따라 전도할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버가에서 풍토병인 말라리아에 걸리게 되어, 건조한 고원 지방인 갈라디아 지방으로 발길을 돌렸을 것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학자는 바울이 지금까지 전도한 수리아, 길리기아의 주변 지방으로 전도의 범위를 확대하는 뜻으로 이 여정을 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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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전도여행:


제1차 전도여행 이후 바울은,  전교회적인 공식 지지를 받아 이방인에 대한 전도가 더욱 확고해졌고, 이 후 바나바와 더불어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 하였다. 그런데 제1차 전도여행 도중 버가에서 일행을 버리고 도중 하차한 요한 마가를 동행하는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려 마침내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소아시아를 향하여 떠났다.

바울은 도중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났는데, 그도 일행에 가담했다. 바울은 처음에 소아시아 서쪽 에베소의 전도를 의도했지만,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므로 드로아로 내려가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밤에, 환상에 한 마게도냐 사람이 바울에게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지시했고, 바울은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고 이에 비로소 유럽의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리게 되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다녀간 지역




 제3차 전도여행:


제3차 전도는 제2차 전도여행의 연속이었다.  제2차 때 성령으로 금지되었던 소아시아 전도, 특히 에베소 전도에 전력을 집중시켰다. 바울은 일찍부터 중심적 대도시의 중요을 중시하여, 전도를 원하였으나, 이때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오랫동안의 숙원을 이루게 된 바울은 약 3년동안이 도시에 머물렀다.

그의 오랜 전도생활에서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물은 곳은 없었다. 그는 이 동안 부근의 각 도시에까지 전도를 시도했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 골로새와 히에라볼리에는 에바브라를 통하여 복음을 전했다(골 4:13). 다른 여러 도시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동역자를 보내 전도를 했을는지도 모른다.

이제 3차에 걸친 전도여행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고"(롬 15:19),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을 정도로 되었다(롬 15:23). 전도에 지칠줄 모르는 그의 눈길은 더 서쪽인 로마와, 로마 주위의 나라에로 돌려졌다. 사실 그는 "여러 해 전부터…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다"(롬 15:18-29). 그리하여 이제 여러 해 전부터의 숙원이 이루어지려는 찰라에 우선 로마 교회에 자기의 계획을 말하고, 그와 동시에 전부터 품고 있던 소신을 밝혔던 것이다. 이 기록들은 성서의 로마서에 기록되어있다..


제3차 전도여행 중 바울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오순절 전날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을 따뜻하게 맞았다. 성도는 이 명절 때문에 각처에서 모여들은 유대인으로 붐볐다.

그 중에는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고 그에게 적의를 품은 극단적인 반바울주의자들도 섞여 있었다. 팔레스틴 이외의 곳에서 로마 관헌의 제지로 바울 살해의 목적을 수행할 수 없었던 그들은 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대인들 사이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고 마시지 않는다"고 까지 맹세한 일단의 혈맹단까지 조직되어 바울의 신변에위험이 밀어닥치고 있었으므로, 그는 밤중에 로마 군대에 의해 가이사랴로 호송되어로마의 총독 벨렉스의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벨렉스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고, 그의 후임 베스도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하여" 두 사람이 다 신속한 처리를 하지 않고 바울을 2년 동안이나 옥에 가둔 채 두었으므로 그는 분연히 카이사르에게 상소하겠다고 신청했다.

이리하여 그는 백부장 율리오의 호송하에 로마로 가게 되었다.  당시 가이사랴에서 로마에의 항해에는 사도행전의 기자 누가도 동행했는데, 이 항해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27장에 매우 자세하게, 또 인상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고대의 항해기라는 점에서 보더라도 매우 귀중하고 또 흥미진진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허다한 곤란을 겪은 다음 바울 일행은 AD 60년 초봄 보디올에 도착, 거기서 기독교 교우들의 영접을 받고 마침내 로마에 입성했다. 이렇게 다년간의 숙원을 이룰 수 있었다고는 하나, 결박된 몸으로서 로마 입성이란 그도 감개무량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로마에서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되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재판의 날을 기다렸다. 로마에서는 많은 사건이 산적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의 성소가 심의될 차례가 오기까지는 실로 2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그 동안 그는 헛되이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다. 많은 동역자가 그를 만났고, 그때 집필된 골로새서나 빌레몬서의 끝에 열거되어 있는 많은 인명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빌레몬서는 이때 있었던 재미있는 한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빌립보서 1:12- 18에 의하면, 그 당시 바울은 더 적극적인 전도를 하여 비상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은 "바울이…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쳤다"고 말을 끝맺고 있다.


이후 바울을 결국 네로 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기독교가 세계로 전파되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로마의 4대 대성전 중의 하나로 사도 바울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 전형적인 바실리카식 성당인 바오르 대성당의 정면 외벽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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