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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게시판

Re:[보충]콜로세움과 건축기법

작성자홍지혜49|작성시간05.11.30|조회수2,888 목록 댓글 0



5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하고 거대한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 제국의 군사적, 정치적 실권을 표현한다. 


로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의 유적지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콜로세움이란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콜로사레(Colossale)에서, 또 하나는 경기장 옆에 네로 황제가 세운 높이 30m의 거대한 금도금 상 콜로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바로 그것인데 전자의 설이 유력하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 및 지중해 전체를 지배하였던 고대 서양 최대의 제국 로마는 자신들의 정치적, 국가적 강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대규모 건축물을 적극 건설하였고 형태위주의 조각적 건축을 추구했던 그리스와는 달리, 로마는 공간위주의 대규모 건축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어떠한 고층건물에 눈에 익었다 하더라도 콜로세움 앞에선 그 거대함에 압도당하고 만다. 그만큼 콜로세움은 ‘영원한 도시’ 로마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콜로세움은 최대 지름188 m, 최소 지름 156 m, 둘레 527 m, 높이 57 m의 4층으로 된 타원형 건물인데, 1층은 도리아식 주범, 2층은 이오니아식 주범, 3층은 코린트식의 둥근기둥으로 각각의 아치가 장식되어 있다. 이것들은 고대 그리스 건축의 기둥을 활용한 것으로

 

도리아식은 가장 오래된 주범 양식으로 고대 이집트의 16각 석주에서 유래한 양식으로   가장 단순한 양식으로 직선적이고 장중하고 남성적이며 착시현상 교정을 위한 배흘림 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이오니아식은 소용돌이 형상의 주두가 특징적이며, 우아하고 경쾌한 곡선을 사용하여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코린트식은 주두를 아칸더스  나뭇잎 형상으로 장식하여 세 가지 주범양식 중 가장 장식적이고 화려하며 복잡하다. 4층을 제외하고 원기둥과 원기둥 사이에는 아치가 있고, 2층과 3층에는 조상(彫像)이 놓여 있다. 내부는 긴지름 86m, 짧은지름 54m의 아레나(투기장)를 중심으로 카베아(관객석)가 방사상으로 배치되어 있고, 칸칸마다 나누어진 맹수들의 우리 위에 나무로 바닥을 만들어 지상과 지하를 분리시켰는데 지하의 방에는 맹수뿐만 아니라 검투사, 사형수들이 갇혀 있었다. 이 경기장은 지하의 대기실 및 천막 지붕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당시 주된 건축재료는 대리석이었다. 하지만 대리석은 너무 값이 비싸 귀족의 저택에서나 사용되었다. 일반인은 돌이나 벽돌로 만족했다. 그렇다고 해서 콜로세움 같은 대형 축조물을 돌과 벽돌로 쌓을 수는 없었다. 우선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적인 데 있었다. 2만~3만명에 이르는 노동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수천 명의 숙련 기술자를 확보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아치형 통로와 원형의 관중석을 설치하는 일은 벽돌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다행히 이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콘크리트 공법 이었다. 콘크리트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인이 피라미드를 축조하면서  돌과 돌 사이를 때우는 접착제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로마인은 이미 이집트를 다녀왔기에 그걸 자신의 눈으로 보고 익힌 바 있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건축기술의 보조적 지위에 머물던 콘크리트를 개량하여 이른바 ‘로마식 콘크리트’를 개발했고, 또 건축의 주재료로 격상시켰다. 콘크리트는 서기 72년에 시작된 콜로세움 공사에 대대적으로 사용되어 빛을 발했다. 콘크리트 시대는 그렇게 열렸던 것이다. 로마식 콘크리트는 ‘포졸란(pozzolan)’이라 부르는 화산회(火山恢)와 석회석을 2대 1의 비율로 섞되 여기에 물을 전체의 15~20%가 되도록 하여 만든 것이다. 때로는 물대신 동물의 기름이나 석류의 열매즙, 피 등을 쓰기도 했다. 화산회는 폼페이를 잿더미로 만든 베수비오 화산에서 나온 것을 썼다. 콘크리트로 벽을 쌓고 지붕을 덮었으나 목재는 전혀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강도는 현대의 것에 뒤지지 않아 다양하게 쓰였고 ‘건축의 혁명’이라 일컫는 볼트(궁륭)와 반구형의 돔으로도 강점을 발휘했다.

 

 

콘크리트 공법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이런 대형 공적 공간이 과연 지어질 수 있었을까. 오랜 세월 속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콘크리트의 위력이 크게 느껴진다.


자료출처:네이버검색, 도시와 건축 강의 프린트물,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건축의 역사(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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