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중에는 '트로이의 목마'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속에서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Kaokoon)은 그리스 군인들이 숨어 있는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 놓으면 트로이 성이 함락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이를 보고 그리스 편에 서 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크게 화를 내어, 두 말의 독이 있는 바다뱀으로 하여금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칭칭 감아 죽이게 했다. 이러한 신화 이야기 매우 인상적으로 표현한 조각 작품이 '라오콘 군상'(B.C. 150년경)이다.
'라오콘 군상'은 1506년 로마에서 발견된 헬레니즘 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당시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많으 예술가들에게 싶은 감명을 줬다고 한다. 고대 문헌에 의하면 이 작품은 세 사람의 조각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그들의 이름은 하게산드로스(Hagesandros), 아테노도로스(Athenodoros), 폴리도로스(Polydoros)로 기록되어 있다.
이 대리석 조각은 저주 받은 죽음과 힘겹게 싸우는 인간들과, 그들을 휘감으려고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여 있는 바다뱀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바담뱀 한 마리가 라오콘의 한쪽 팔에 감겨져 있고, 또 다른 바다뱀 한 마리가 라오콘과 두 아들을 한데 엮으려는 것처럼 다리로 내려와 꿈틀거리고 있다. 라오콘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온 힘을 다해 바다뱀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지만 불가능하다. 오른쪽에 있는 큰아들의 팔과 다리를 문 바다뱀은 이제 라오콘의 옆구리를 물고 있다. 왼쪽에서 또 다른 뱀에 물린 작은아들은 죽어가면서 두려움에 가득 차 아버지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내지만, 라오콘도 어찔할 도리 없이 하늘만 올려다보며 신의 자비를 바랄 뿐이다. 조각가들은 주인공인 라오콘의 고통과 절망을 강조하기 위해 성숙한 두 아들의 크기를 과감히 줄였다.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하는 자세, 한껏 뒤틀린 근육, 겉으로 드러나는 갈빗대, 바다뱀의 독으로 부어오른 노장된 혈관 등 사실주의의 모든 기법이 총동원됐다. 앞쪽에서만 봐도 라오콘의 등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앞에 그려질 정도이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라오콘의 생생할 얼굴은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의 얼굴 모델이 되기도 했다.
몸이 모든 근육과 힘줄에서 고통이 감지된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무섭게 뒤틀린 하체와 몸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는 육체를 옥죄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운명에 고통당하는 라오콘의 얼굴에는 분노의 감정조차 없다. 신이 내린 절대적인 형벌 앞에서 감히 소생을 희망할 수도 없으며, 몸부림조차도 무의미하다. 오로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감내해야 할 뿐임을 라오콘은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라오콘 군상'을 바라보는 사람도 조각 작품으로 환생한 라오콘이 지금껏 겪고 있는 고통에 가슴이 먹먹해질 따름이다.
이렇듯 라오콘과 두 아들은 사실적인 얼굴 표정과 몸의 움직임으로 육체적 고통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운명과 신에 대해 회의한다. '라오콘 군상'처럼 거대한 뱀이 인간의 몸을 강하게 조여 오면, 사람은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힘껏 뱀을 떨쳐내려 노력하게 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혈압이 오르고 땀이 비 오듯 흐르며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육체적인 동통이 격심해지면 턱이 고정되고, 이를 악물게 되며, 입술이 옆으로 당겨진다. 콧구멍이 벌어지고, 눈은 크게 부릅떠지며, 얼굴에는 충혈 현상이 나타난다. 측두부와 전두부의 정맥이 확장되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통증으로 소리를 지르게 됨과 동시에 입이 벌어진다. 전신의 근육에 힘을 주기 때문에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진다.
그리고 육체적인 아픔은 우선 피부와 근육 같은 신체의 표면에서 감지되는데, 이것을 체성통이라고 한다. 이상 자극이 내장에까지 파급되면 내장통이라 부르고, 내장의 아픔이 신경을 통해 특정한 부위의 피부나 근육에 통증으로 나타나면 관련통이라 한다. 관련통이 지속되면 감각이 없어지고 흉부의 근육에 경련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의식이 점점 희미해진다.
이상의 내용이 격심한 육체적인 고통을 받았을 때 사람의 얼굴과 몸에 나타나는 변화이다. 라오콘의 얼굴과 몸에서도 그러한 변화들은 모두 드러나 있다. 아마도 '라오콘 군상'은 조각가들이 많은 연구와 관찰로 생동감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라오콘'에 대한 작품 연구는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미술가들에 의해서 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스페인의 종교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도 잠시 로마에 머무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지 '라오콘'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라오콘'(1610)에서 나신인 남자 세 명이 바다뱀 두 마리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세 남자 중 두 명은 이미 바다뱀의 공격을 받고 땅에 쓰러져 있다. 그 뒤로 펼쳐져 있는 원경은 트로이가 아니라 톨레도의 모습이다. 그레코가 톨레도를 트로이로 상상하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남자가 라오콘인데, 그는 왼손으로 바다뱀의 몸통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그것의 머리를 잡아채면서 공격을 피하고 있다. 그림으로 그려진 바다뱀이 그다지 크지 않아 라오콘의 건장한 체격으로 수비게 그것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의 가장 왼쪽에 있는 라오콘의 큰아들도 바다뱀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는 바다뱀의 꼬리와 몸통을 그러쥐고 있을 뿐 혀가 날름거리는 머리를 잡지 못해 물리기 직전의 상태에 있다. 라오콘의 옆에 쓰러져 있는 작은아들은 이미 바다뱀의 공격을 받고 죽은 듯 꼼짝도 않는다.
그림의 가장 오른쪽에는 두 명인지 세 명인지 분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서 있는데, 나신으로 서서 바다뱀의 공격을 받고 있는 라오콘 부자(父子)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렇게 나체로 그려진 사람은 모두 죄인을 의미한다. 종교화가인 그레코의 시각으로 볼 때는 비밀을 누설한 자도 죄인이요, 이를 방관한 사람들도 모두 죄인이다. 그래서 모든 죄인은 라오콘처럼 죗값을 치르기 위해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엘 그레코의 '라오콘'은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일까. 분명 라오콘과 두 아들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데도, 그레코의 그림에는 바다뱀의 공격을 받는 고통이 전연 표현되어 있지 않다. 단지 '트로이의 목마'에 나오는 라오콘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즉 그레코는 자신의 그림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렇듯 같은 주제를 갖고도 화가나 조각가가 무엇을 중점적으로 나타냈는지에 따라 그 표현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라오콘'은 인간의 육체적 고통의 극한과 뱀독이 인체에 침투했을 때 나타나는 의학적인 증상을 표현하는 데 조금도 흠 잡을 수 없는 완벽한 주제이다.
뱀에게 물렸을 때 우리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좀더 실감 나게 감상하기 위해 오귀스트 장 바티스트 클레싱게르(Augeste JeanBaptiste Clesinger, 1814~83)의 조각 작품 '뱀에 물린 여자'(1847)를 소개한다.
'뱀에 물린 여자'는 독뱀 중에서 신경독을 함유한 뱀에 물린 듯 하다. 독뱀에는 신경독을 함유한 뱀과 혈액독을 함유한 뱀이 있는 데, 혈액독은 혈관 내피세포나 조직세포의 효소를 파괴하고 혈액을 용혈시키며, 신경독은 신경의 기능 장애를 일으킨다.
우리 몸에 일어나는 경련은 신경 분포 및 동통과 관련이 있다. 근육과 뼈의 외부를 감싸고 있는 근막이나 골막에도 신경의 말단이 분포하므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도한 근육에 의해 움직이는 관절은 근육에 분포하는 신경에 지배 받기 때문에 관절에도 근육의 긴축이 나타난다. 그렇게 경련이 일어서 우리의 몸은 '뱀에 물린 여자'처럼 뒤틀리게 된다.
'뱀에 물린 여자'는 사람의 몸에 뱀독이 들어왔을 때 일어나는 경련의 기전과 양상을 조금의 모순도 없이 표현해 내고 있다.
▽ 하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 [라오콘 군상] B.C. 150년경, 대리석, 바티칸 미술관, 로마 ▽▽ 엘 그레코, [라오콘] 1610, 캔버스에 유채, 극립 미술관, 워싱턴 ▽▽▽ 오귀스트 장 바티스트 클레싱게르 [뱀에 물린 여자] 1847, 대리석, 오르세 미술관, 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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