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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해전 vs 명량해전

작성자18 안재충|작성시간05.12.09|조회수2,637 목록 댓글 0



살라미스 해전도



명량대첩 [불멸의 이순신]

기원전 480년 9월 23일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그리스 연합함대는 대형 3단 노선 800척으로 이루어진 페르시아한대를 살라미스 해협에서 괴멸하였다. 대략 2배가 넘는 함대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하여 테미스토클레스는 '해협'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이용했다. 움직임이 둔한 대형 함선인 페르시아의 3단 노선은 좁은 해협의 빠른 물살에 서로 뒤영켰고, 이 기회를 틈타 이물(배의 앞머리)이 단단한 그리스 함선이 돌진, 페르시아 함선의 밑둥을 들이받았다. 해협의 좁은 공간과 빠른 물살을 이용해 극적으로 얻어낸 살라미스에서의 승리는 약 2000년이 지나 한반도 남해 울돌목(명량 해협)에서 이순신이 얻은 명량대첩으로 부활했다. 아마도 테미스토클레스를 '아터네의 이순신'으로 이순신을 '조선의 테미스토클레스'라고 부르는 까닭은 두 해전의 유사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쯤에서 이순신의 울돌목 해전을 살펴보면

조일전쟁이 한창이던 1597년 9월 16일, 지난 칠천량 해전의 참패를 겨우면한 13척의 판옥선이 이순신의 지휘아래 평균 폭 500m, 길이 2km인 울돌목에서 일본함대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순신이 맞서 싸울 일본 함대의 수는 그의 함대와 비교하면 무려 10배가 넘는 133척, 이순신이 좁디좁은 물길, 울돌목을 그의 사활을 건 '최후의 전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것"이라는 단호한 의지와 함께 한 이순신의 선택은 테미시토클레스보다 훨씬더 치밀했다.

 

우선 이순신은 전라도까지 최단거리로 진격하려던 일본함대의 의도를 꿰뚤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울돌목의 유리한 위치를 점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순신은 일본 함선이 바닥이 판옥선처럼 평저선이 아니라 끝이 뾰족해 깊이 침수하는 첨저선이기 때문에 암초가 많고 수심이 얕은 울돌목을 전장으로 선택했다. 그는 또한 울돌목은 그 물살이 거셀 뿐만 아니라 하루 4차례나 조류가 바뀌는 곳임을 감안하여 그 조류가 바뀌는 시점을 정확히 알고 그를 이용할 수 있는 조선 수군에게 승산이 있음을 확신했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조선의 판옥선은 단 한척도 피해를 입지 않은 반면, 일본의 함선 31척이 격침되고 온전한 상태로 도주한 함선이 단 10척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시대를 뛰어넘어 두 해전을 비교한다느는 것이 무리는 있지만, 이순신의 명량 해전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살라미스 해전에 결코 뒤지지않는, 아니 그를 능가하는 해전이었다. 그리스가 살라미스 해전을 통해 전세를 순식간에 역전시켰듯이, 12척의 함선으로 그 10배가 넘는 함대를 쳐부순 명량대첩을 계기로 조선은 조일전쟁의 주도권을 재탈환하여 전쟁에서의 최종적인 승리를 얻게되었다.

자료출처 : 문화와 문화의 만남, 최병욱외 4명, 강원대학 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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